생각보다 키가 크다. 그에 대한 자료를 찾다 발견한 ‘아나운서계 최고의 몸매’라는 수식어에 ‘설마?’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막상 만나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 그런 평을 듣는 건 꼭 기분 나쁜 일만은 아닐 게다.
올 초 그녀는 9년 넘게 진행해오던 KBS2 을 그만뒀다. 얼마 전부터는 TV조선
얼굴의 이미지가 수더분해서 그런지, 키 큰지 잘 모르더라고요. 실제로 보면 다르다는 말 많이 들어요.(실제 키는 172cm이다.)
그런 건 칭찬이에요.(웃음)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제가 방송 처음 시작할 때 (그 당시 KBS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을 맡았고, 데뷔 2년 차에 이미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을 진행했어요. 그러다보니 한동안 나이에 비해 노숙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예능을 시작해 타깃 연령대가 점점 낮아졌죠. 이렇게 생긴 얼굴이 갖는 장점이 있나봐요. 또 다른 이유는 기본적으로 보이는 직업에서 오는 긴장감 때문이겠죠. 오랫동안 쭉 이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의 제 얼굴에 만족하는 편이에요.
메이크업의 힘이죠.(웃음) 메이크업한 저를 보면 이 일도 행복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주부들도 중요한 모임 있을 땐 모처럼 꾸미고 나가잖아요. 저는 매일매일 여러 손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요.
체중 관리는 특별히 안 해요. 운동은 꾸준히 하는 편이지만 아주 바지런한 편은 아니고요.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날이 괜찮으면 산에 자주 가요. 집이 여의도에 있는데 평소엔 동네의 걷기 좋은 코스를 따라 산책을 해요. 공원 한 바퀴 돌면 1.5km거든요. 저녁 때 네 바퀴 정도 편안하게 돌면 기분 전환도 되고요. 가까이에 있는 공간을 잘 활용하는 편이에요.
저도 어제 동네를 뛰었는데, 나이 때문인지 헉헉거리게 되더라고요.
남편이 체격이 큰 편인데,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 전에는 저를 끌고 올라갔는데 요즘엔 한참 있다 올라와요.(웃음) 그런 모습을 보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요. 저도 마흔 중반 접어들면서는 체력이 뚝 떨어지는 걸 느껴서 살짝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여기서 더 노력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했는데 요즘 다시 회복이 되더라고요. 사이클이 있는 것 같아요.
크게는 아니어도 나름대로 조금씩은 바꾸는데 정은아 하면 이런 스타일이라고 기억하는 것 같아요. 신참 때 한 대선배 PD가 그러더라고요. “자꾸 변화를 주지 마라. 정은아가 누군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정은아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 때까지는 적당한 걸 찾은 다음, 그걸 쭉 고집해라.” 지금은 정은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크게 벗어나는 건 많은 분들이 불편해할 것 같고요. 그런 얘기는 후배들 만나도 가끔 해주는 말이에요. “너의 이미지, 그림 하나는 만들어라”라고요.
무대 위의 지휘자
정은아는 최근 TV조선
새로운 걸 시작하면 (이야기할 만한) 좋은 소스가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을 땐 무슨 얘기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오늘은 좋은 핑계가 생겨서 하게 됐네요. 아주 중요한 지면을 주신다기에.(웃음)
사실 최근에 한 매체와 인터뷰를 했어요. 그 매체에 대한 신뢰가 있었는데, 나중에 기사 보고 좀 놀랐어요. ‘떼토크’란 단어가 있는 거예요. 그것도 따옴표 안에 마치 제가 한 말처럼. 전 절대 떼토크란 말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제 입으로 말하지도 않아요. 그런 단어를 기사 안에 녹여냈다는 데 너무 놀랐죠.
트렌드, 뭐 그런 건가요? 근데 말과 글은 약간 차이가 있잖아요. 어쨌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어가 왜곡되는 건 작은 걸 수도 있지만, 생각이 왜곡될 수도 있잖아요.
종편을 보면서 많이 놀라고 있어요. 종편의 환경이 (공중파 수준만큼 오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작 환경이나 수준, 열정이나 기대치가 공중파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 우리 진짜 대단하다’ 싶었죠.
단독 MC는 처음인가요?
고정 프로그램의 단독 MC를 맡은 건 거의 처음이에요. 재미있어요. 출연자, 방청객, PD, MC,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게 아무리 잘해도 2백을 만들 순 없는 거거든요. 1백을 만드는 거잖아요. 1백 안에서 MC들이 시간과 영향력을 적당히 분배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조정하는 역할인 거죠. 이번에 단독 MC로 진행해보니까, 마치 현장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프로듀서가 만들어놓은 재료를 가지고 제가 무대 위에 올라 지휘를 하는 거잖아요. 여기서도 저는 합의 1백을 만들어내는 역할이에요. 중심 잘 잡고, 출연진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끌어내서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거죠. 그 일이 참 재미있어요. 여전히 흥미롭고요. 열정이 살아 있죠.
단독 MC니까 아무래도 제작진과 협의를 많이 하는 편이겠죠?
이전에도 저는 제작진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생각에서, 미팅도 자주하고 제 의견도 적극적으로 개진해왔어요. MC는 전체를 보잖아요. 방청객은 지금 재밌어 하나, 출연자 중 누구는 소외되지 않았나 하는 것들을 100% 풀가동해서 신경 쓰기 때문에 여러분이 보는 것보다 굉장히 많은 것들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동시다발적인 상황이 끝나고 합이 딱 맞으면 만족감이 굉장히 커요. 그래서 저는 제작진, 작가, PD와도 얘기를 많이 하려고 해요. 출연자의 바람 역시 시청자들에게 잘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기 싫은 이야기도 시켜야겠지만, 우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풀어나감으로써 이야기를 잘 진행시키고 싶어요. 제가 너무 원론적인 얘기를 하나요?(웃음) (출연진을) 다 만족시킬 순 없지만 어느 정도 만족하고 간다면 손님 대접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시청자들의 수준도 전보다 높아졌죠.
요즘 들어 ‘시청자가 원하는 게 뭐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요. 예전엔 제가 참 좋은 시절에 방송했던 것 같아요. 그땐 어떤 이야기를 해도 특별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는데, 요즘엔 정보든 이야기든 너무 많은 홍수 속에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니즈가 훨씬 세분화돼 있어요. 저희보다 앞서가는 것 같아요. 그걸 잘 따라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임감이 더 커진 거겠죠.
그전에도 열심히 했는데….(웃음) 즐거운 책임감이 아닌가 싶어요.
다시 한 번 함께 진행해보고픈 사람, 한선교 선배
분초 단위로 트렌드가 바뀌는 방송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정은아는 요즘 고민이 많다. 그런 그녀와 과거로 돌아가봤다. 임성훈, 한선교, 이계진, 김승현, 이상벽…. 그녀와 함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이들 선배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1990년 1월 1일에 아나운서가 돼서 4월에 을 시작했어요. 아나운서실에서는 반대했는데, 제작진이 원한 걸로 알고 있어요. 누구 집 딸이다, 하는 소문까지 났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어디 국가기관에 근무한다는 소문도 있었고요. 저희 아버지는 정말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었는데 말이죠. 어쨌든 그렇게 생방송을 처음 시작했고, 칭찬받았어요.
‘이게 기회다, 잘해야지’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잘 못했을 것 같아요. 다행히 준비가 됐을 때 기회가 왔다는 생각도 들어요. 2년간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진 게 저한테는 큰 경험이자 준비기간이었던 거예요. 제작진 입장에서는 이렇게 여러 번 떨어지고 겨우 붙은 아이인데 뭐라도 할 거다, 란 생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결국은 위기나 좌절의 순간이 기회를 만드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게 아주 적절히 맞아떨어진 경우고요.
그 떨림이 정말 좋았어요. 두려움으로 떨리는 게 아니라 신나서 떨리는 거 있잖아요.(웃음) 아나운서실에서 정말 다 서서 봤다니까요. 생방송이고 중요한 프로그램이라 (신입은) 안 된다고 다 반대한 거예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룰루랄라 간 다음, “안녕하세요 정은아입니다!” 한 거죠. 그때부터 아주 좋아했어요. 방송 끝나고 “쟤는 뭐냐?” 그랬대요. 이런 기억을 떠올려보니까 전 참 행복한 방송인이네요. 어떻게 이 일을 이렇게 좋아하며 여기까지 왔을까요?(웃음)
제가 처음 방송을 시작한 1990년대에는, 공중파가 모든 걸 다 말할 수 있는 주요 매체였어요. 근데 지금처럼 뉴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시류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저희도 고민을 많이 해요. 각자의 색깔, 롤이 있는 건데 그걸 시대에 맞춰 그때마다 바꿔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요. 아직 답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은, 저다운 색깔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자는 거예요. 제가 완전히 탈바꿈한다는 건 제 차별화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예능, 그러니까 인포테인먼트라는 것도 처음 문을 열었어요. 정보와 예능이 같이 가는 프로그램으로 거의 초반에 시작된 <21세기 위원회> MC를 맡았는데, 지금은 더 많은 MC, 아나운서들이 예능에 나가고 있잖아요. MC의 역할이 자신의 라이프 자체를 방송 재료로 쓰면서 저렇게 노출하는 식으로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중심을 잡으면서 만들어가야 하는 건지…. 그냥 개인적인 고민이에요.
어디에서도 자기 역할을 하니까, 놀라울 따름이죠. 키커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또 MC들 입장에서는 정말 든든하고요. 저는 조형기 선배랑 방송을 워낙 같이 많이해서 서로 눈만 마주쳐도 알아요. 여기 잘 진행되고 있나요? 하고 눈만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게 있어요.
손범수 씨가 제 동기예요. 범수 씨가 변화해서 잘 나간다기보다는, 남자들은 늦게 되는 부분도 있고 나름대로 그 기간 동안 절치부심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엔 어린 여자 MC와 경력 있는 선배들이 함께 방송하는 게 당연한 거였기 때문에, 동기끼리 방송할 일이 거의 없었어요.
네. 그리고 임성훈 선배님이 저 데뷔할 때 1년 정도 같이 했고요.
다 다르죠. 배운 것도 다르고 저와 인간적인 거리감도 다 다른데, 신기한 게 같이 일했던 분들과는 지금도 막역하고, 오라버니 같아요. 김승현, 한선교, 조형기 선배의 경우는 저와 오랫동안 진행을 했고, 선배들끼리도 연배가 다 비슷비슷해요. 그분들끼리도 친구고, 저와도 가끔 운동을 하거나 자리를 따로 마련해서 만나기도 해요. 한 선배는 자주 보지는 못하고 연락만 가끔 해요. 임성훈 선배에게는 뭐랄까, 깔끔하고 단정한 진행 능력을 많이 배웠어요. 한선교 선배는 굉장히 날카롭고 예리한 부분이 있어요. 한 선배가 악역을 많이 담당했고, 그럼 저는 상대적으로 역할이 달라지는데 그런 면에서 호흡이 잘 맞았어요. 김승현 선배는 방송이든 뭐든 배려, 그 자체예요. 조형기 선배는 정말, 말의 귀재죠. 같은 말을 스무 번 해도 스무 번 다 새로울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재능이거든요. 또 어떤 에피소드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 이재룡 씨는 정말 건강하고 착한 분이어서 같이 진행하면서 굉장히 마음이 편했어요.
신인 때 을 1년 정도 같이 했어요. 그리고 이계진 선배랑 을 시작했고, 그다음 이상벽 선배가 들어왔고요. 아, 이상벽 선배. 이상벽 선배도 대단한 분이죠. 본인도 목숨 걸고 방송한다고 하니까요. 그땐 제가 어릴 때여서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어요. 근데 이제 보니 정말 놀라운 것 같아요. 늘 최선을 다하고 일에 욕심도 많으세요. 그래서 제가 오랫동안 관찰했던 기억이 나요.
뭐 굳이.(웃음) 근데 방송계를 떠났으니까 가끔 한선교 선배는 생각이 나요. 한선교 선배와의 호흡은 아주 색다른 것이어서 생각이 날 때가 있어요.
자주는 못 해요.
절 굉장히 잘 알기 때문에.(웃음) 안 할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저는 이 일을 현업으로 하는 제가 마음에 들어요. 방송이라는 일이 아직 저를 행복하고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방송인으로서 포지션이 마음에 들고, 더 좋은 진행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어요.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새로운 일을 할 때는 그것에 대한 확고한 자기신념과 준비, 열정이 있어야지, 변신을 위한 도구로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차,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녀는 최근 10년 가까이 진행해온 KBS 에서 하차했다. 정확히 말하면 녹화 마지막 날 하차 통보를 받았다. “송별회는 나중에 해도 돼요”라고 말하는 후배들 앞에서, 정은아는 가장 호쾌하게 마지막 방송 녹화를 마무리했다. 물론 송별회도 함께.
뭘 그렇게들 궁금해할까요? 많은 분들이 얘기를 하는데 ‘아, 이 이렇게 사랑받았던 프로그램이구나’ 하는 생각은 해요.(웃음) 저는 어떤 프로든 시작할 땐 당연히 설레고 마무리할 땐 아쉬워요. 아름다운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같이 일한 수많은 동료들이 있으니까요. (녹화 마지막 날) 후배 PD들이 참 미안해하는 모습을 봤어요. “선배님이 오늘 녹화 안 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하기에, “왜? 그게 무슨 말이야. 잘 마무리해야지!” 하고 송별회까지 잘 마무리했어요.
아, 그런 이야기는 저랑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일을 할 땐 최선을 다하지만 떠나보내고 나면 별로 뒤돌아보는 타입이 아니에요. 사실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못한다, 잘한다가 없는 것 같아요. 다 다른 거죠. 근데 뭐… 어떻게 더 잘하겠어요.(웃음) 농담이에요.
종편 같은 매체가 많이 등장해서 흐름이 바뀌니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쉰을 앞두고 있으니까 ‘내 인생의 다음 스텝은 어떻게 가야 할까’ 진지하게 자문하고 있어요. 답을 알고,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랬던가? 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 생긴 거죠. 매우 일 중심적으로 살아왔으니까요.
이 나이에 ‘늙는다’고 했다가는 꾸중 들을 것 같아요. 최근 나이 여든에 도보여행을 하면서 전국을 걷는 어르신들을 뵀어요. 언제 처음 시작했느냐고 여쭤보니까 예순일곱 살에 시작하셨대요. 나는 아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요즘 제가 아주 즐겁게 하는 일 중 하나가 국립국악원에서 매달 하는 토크 콘서트 이에요. 한 달에 한번 게스트를 초대하는데 승효상 선생, 박재동 화백, 그리고 손석희 선배도 JTBC 사장 된 직후에 한 번 나왔어요. 그분들이 40분 동안 3백 명의 관객 앞에 앉아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해요. 공연이고 토크 콘서트니까 저도 인생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봐요. 사는 건 뭘까요? 정말 잘 사는 건 뭘까요? 결국 그분들도 답은 모르겠다고 해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제가 선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현역 방송인 중에 저보다 경력 많은 분들은 많지 않으니까요. 근데 인생에서는 정말 많은 선배들이 이 세상에 있는 거예요. 그분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제가 방송을 통해 얻는 이야기가 정말 귀한 공부구나 느껴요.
아직은 여러분한테 묻고 있는 과정이에요. 뒤늦게 대학원도 다니고 있고요. 저는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모범생이랄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하라고 하면 그만큼 하고, 그것에서 만족하고, 그다음 스텝을 알려주면 그렇게 갔어요. 네모반듯한 삶을 산 거죠. 일에서도 별 꺾임 없이 20여 년을 쭉 왔으니까 답을 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패러다임으로 가면 인생은 끝까지 잘 가게 될 거다, 라고 생각했는데.(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저는 아이가 없어서, 제 개인적인 발전을 많이 생각하며 살았어요. 제게는 일이 매우 중요했고요. 모든 일엔 부침이 있게 마련이지만, 뒤늦게 을 내려놓았고 올해가 돼서야 을 내려놓았어요. 시작부터 수월했던 편이라 그간 의문이 없었는데, 때가 되면 내려놓고, 내려놓는 마음이 생기고, 그다음을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제게 주어진 시간은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에요.
순탄한 방송 생활에 뒤늦게 고비가 왔네요.
‘많은 분들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딛고 일어나셨지?’라는 물음이 새삼스럽게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도 묻고 관심은 가졌지만, 내가 정말 가슴으로 진심으로 그분들한테 물었나? 하는 반성이 들면서 새삼스럽게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웃음) 또 하나, 모든 답이 미래에 있는 게 아니라 오늘 이 순간에 있구나.(하는 걸 느껴요.) 예전에 산을 어떤 느낌으로 다녔냐면요, 정복한다는 느낌으로 올라가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어요. 요즘에는 올라갈 때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의 꽃도 보고 나무도 봐요. 선배들은 그게 나이가 드는 거래요.(웃음) 그러면서 올라가는 속도도 조절하고, 여유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이제 한 학기 남겨두고 있는데 잘 마무리해야죠. 저 원래 배우는 거 좋아해요. 늘 좋은 강의 있으면 들으러 다니고 하는데 마침 시간이 나기도 했고, 필드에서는 이론적으로 어떻게 설명할까 궁금해서 갔어요.
그게 무엇이든 칭찬해준 어머니
‘성공한 아나운서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기술적인 노력, 본능적인 애정, 그리고 어머니의 칭찬에서 얻은 자신감이라고 답한다. 삼 남매 중 맏이인 그녀는 어린 시절 유난히 길었던 밥상머리 대화를 기억한다. 이를 통해 묻고 듣는 본능적 습관이 채워졌다. 결국 가정, 그리고 부모의 가르침일까.
연락은 자주 하죠. 근데 인연이라는 게 방송사안의 인연이기 때문에, 나오면 자주 만나게 되질 않아요. 동기라고 해서 꼭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요. 가끔 사적으로 보는 건 원종배 아나운서나 김병찬 아나운서 정도예요. 금희 씨와는 멀리 있지만 서로 응원하는 사이죠. 오래전에 같이 시험 봤다 떨어진 인연도 있고, 시작부터 수월치 않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서로 응원하는 마음이 있어요.
일반화해서 말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요즘은 정말 다양한 아나운서들이 많거든요. 일단 말은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건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감각이 필요하니까요. 균형감각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죠. 시간의 분배라는 대단히 동물적인 균형, 기승전결에 대한 균형감각 등이요. 단순한 감각일 수도 있지만 크게는 논리적인 어떤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균형감각은 타고난 것일 수도, 훈련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어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주인공이고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거니까요. 또 하나는 성장욕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지속적으로 자기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계속 뭔가를 담아내기 힘들거든요.
저희 어머니가 좀 독특한 분이에요. 저희 집이 삼 남매인데, 어머니가 세 아이의 특징을 하나씩 잡아서 칭찬을 해주었어요. 예를 들면 막내는 몸이 약해서 학교를 자주 못 갔는데, 너는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한 거죠. 지금 마흔 중반인데도 여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웃음) 비판보다는 칭찬을 해준 어머니 밑에서 자란 덕분에 많은 사람들 앞에 설 때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얘는 인물은 참 없지만,(웃음) 뭘 하나 하면 끝까지 해”라든가 “여기서는 쭈뼛거리는데 앞에 세워놓으면 잘한다”라는 것들이요. (결국은 칭찬이라) 저도 모르게 자신감으로 남게 된 것 같아요. 결국 자신감과 자기긍정이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요즘 청년들은 일찍 한 번씩 꺾이잖아요. 그럴 때 자기에 대한 소중함, 긍정이라는 무기가 있으면 일어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을 보면 어렸을 때 정신적으로 학대당하거나 칭찬받지 못한 경우가 있더라고요. 또 하나, 대화를 많이 했어요. 아버지는 항상 저한테 맏이로서 “네 의견은 어떠니?”를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도 선생님께 궁금한 게 있으면 당연히 여쭤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히 제시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인지 성적표를 받아보면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으나, 매우 비판적임’ 이런 게 초등학교 때부터 있는 거예요. 비판적인 게 뭐지? 어떤 선생님들은 그게 불편했을 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제 생각을 말하고 어른들하고 이야기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어요. 또 한 가지, 끈기는 있는 것 같아요. 단순한 일이라도 책상 앞에 열 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 있어요. 전 제가 잘 나이 들어갈 것 같아요. 그 자신감의 이유 중 하나는 공부하는 걸 좋아해요.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게 굉장히 재밌어요.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책 한 권을 읽는 기분이에요. 지금도 이렇게 다 보고 있어요.(웃음) 공부 유전자가 있는 것 같아요. 공부를 잘한다는 게 아니라, 궁금한 게 많아요.
중학교 때 저 때문에 방송반이 만들어졌어요. 선생님이 국어 시간에 시를 읽어보라고 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시는 저렇게 읽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그 국어 선생님이 다음 학기에 방송반을 만드셨죠. 제가 저희 중학교 방송반의 첫 번째 아나운서였어요. 고등학교 가서는 특별활동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방송반만 성적 제한이 있는 거예요. 뭔데 방송반이 성적 제한이 있어? 그랬는데 거기서도 결국 그 일을 하게 됐죠. 마이크 앞의 좁은 공간이 정말 설레고 좋더라고요. 수업 끝나면 방송실 가서 살고 그랬어요. 결국 부모님들한테 말씀드리고 싶은 건, 많은 경험에 노출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요즘 부모들은 스펙에 도움이 되도록 자녀들에게 할 일을 딱 정해주잖아요. 체험조차도 계획된 체험 안에서 끝내버리고요. 근데 어디서 어떤 재능이 발견될지 모르는 거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제가 아나운서가 될 거라고 생각 못 했을 거예요. 다만 저희는 말의 훈련, 예를 들면 ‘다르다, 틀리다’를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구별해주셨어요. 그래서 저희 삼 남매는 어디 가면 다 아나운서냐고 물어요.(웃음) 그런 말의 훈련이라든가 대화 같은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밥상머리 대화도 굉장히 길었고요.
사실 저는 기자를 준비하고 있었고 방송 아나운서가 될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마치 미스코리아처럼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시험을 보러 갔다가 최종까지 올라갔어요. 카메라 테스트를 하는데, 심사위원들이 모니터로 절 보고 있다는 게 순간 굉장히 짜릿했어요. 그게 부끄럽거나 낯설거나 위축되는 게 아니라요. 그래서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기억이 나요. 그렇게 매력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