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는 이렇게 시작된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가에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한 병사가 야자수 열매를 칼로 잘라 벌컥벌컥 마신다.
잠시 후 그 병사는 모래사장에서 벌거벗은 여자의 모래조각상을 만들고 있는 다른 병사들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던 병사는 갑자기 사람 크기로 길게 누운 조각상 위로 자신의 몸을 포갠 뒤 미친 듯이 성행위를 하기 시작한다.
주변의 다른 병사들이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지만 그는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노골적인 시늉을 한다.
성에 차지 않자 결국 그는 바다를 향해 자위행위까지 벌인다.
충격적인 첫 장면을 선사한 그 병사의 이름은 '프레디(호아킨 피닉스)'. 그렇다. 그는 지극히 본능에 충실한 짐승 같은 인간이다.
그에게 삶의 목적이나 방향 따위는 없다. 짐승처럼 구부정한 모습으로 알코올에 의존한 채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랭케스터(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란 인물이 나타난다.
랭케스터는 인간 심리연구를 통해 고통을 치유하고자 하는 '코즈'연합회의 마스터다.
프레디와 반대로 그는 오로지 이성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의 가르침을 들어보자.
그는 자신을 따르는 회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동물이 아닙니다. 동물의 왕국의 일원이 아닙니다. 그것들보다 위에 있습니다. 짐승이 아닌 영으로서 존재하죠. 당신은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단순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손쉽게 성취됩니다. 우리는 모든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충동을 그만두고, 타고난 완벽함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 너무도 달랐던 탓일까. 프레디와 랭케스터는 호기심에 첫눈에 끌리게 되고, 일자리를 얻는 대신 자신의 연구와 관련해 실험대상이 되어달라는 랭케스터의 제안을 프레디는 받아들이게 된다.
프레디는 랭케스터를 자신의 마스터로 받든다.
이성(理性)과 본능(本能)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성질이지만 인간에게 있어 둘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본능을 넘어 이성이 존재함으로서 인간은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며 본능을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좀 더 위대해지기 위해 인간은 본능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지금도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남들에게 본능을 들킨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대신 인간은 이성을 토대로 종교, 철학, 과학 등 수많은 사상과 학문들의 발전을 이룩해냈다.
그렇게 인간에게 있어 이성과 본능은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다.
사이가 좋지 않다지만 사실은 에서 랭케스터와 프레디의 관계처럼 이성은 늘 본능의 마스터(주인) 행세를 해왔다.
그렇지 않은가. 이성은 떳떳하지만 본능은 부끄럽다. 부끄럽기 때문에 나서기 힘들다. 당연히 이성이 본능을 이끌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 이성은 과연 본능의 주인일까.
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둘은 종속관계가 아닌 '애증관계'라고 제시한다.
프레디는 자신의 마스터가 완벽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함께 지내면서 그도 결국 지극히 불완전한 한 명의 인간임을 점점 깨달아 간다.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장담했던 랭케스터도 반대의견에 불같이 화를 냈고, 장소만 다를 뿐 그 역시 욕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프레디는 마스터를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을 조금씩 알아갔지만 랭케스터는 그러지 못했다.
끝까지 본능 위에 올라서서 주인행세를 하고자 했던 것.
하지만 그런 랭케스터를 프레디는 결코 미워하지 않았다. 조금 실망했을 뿐이었다.
그건 랭케스터도 마찬가지. 그도 프레디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자존심 때문에 강한 척 한다.
어쩌면 그도 인간은 결코 본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랭케스터는 프레디를 보내면서 "자넬 가둘 수는 없겠지"라고 말한다.
인간은 이겨내지도 못할 본능 앞에서 늘 아닌 척 해왔다.
그래서 마스터를 자처했던 랭케스터는 남들 앞에서 본능과 감정을 초월하는 척하는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상징한다.
하지만 아닌 척 하는 것도 지치기 마련. 랭케스터도 사실은 본능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프레디의 '자유'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애증관계가 맞다. 그렇게 인간의 이성은 본능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해왔다.
헤어지기 전 끝까지 주인행세를 하는 랭케스터를 향해 프레디가 흘린 마지막 한 방울의 눈물처럼 눈물겹다.
서로 사랑하지만 남들 앞에서는 함께 할 수 없는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애증관계라지만 '비트겐슈타인'같은 철학자는 "본능은 첫 번째이고, 이성은 두 번째"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서 그럴까. 마스터와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 그를 쳐다보는 프레디의 표정은 한편으로는 마치 먼 길 떠나는 철없는 자식을 바라보는 듯했다. 집 떠난 이성은 여전히 철이 없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대부분 참을 수 없는 본능에 기인한다. 완벽한 인간이 되려 하지만 결국 본능 앞에서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랭케스터는 선천적으로 마스터가 될 수 없었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완벽'은 인간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하지만 그 얘기는 곧 불완전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생리(生理)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서로 사랑을 하고, 돕고, 의지한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눈물도 흘린다.
어쩌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은 진정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까.
7월11일 개봉. 상영시간 13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