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

10812
우리 집 비밀번호
집 열쇠 잃어버렸다고
바꿔 버린 우리 집 대문 비밀번호
아빠 생일 10월
엄마 생일 8월
내 생일 12월
잊지 말라고 새로 정한 우리 집 비밀 번호

10812
우리 집 비밀번호
절대로 잊지 않을 자신 있는데
이상하지?
자꾸만 엄마, 아빠 얼굴을 잊을 것만 같다

10812
우리 집 비밀번호
열심히 꼭꼭 눌러 대문을 열어 봐도
반겨 주는 가족 하나 없는
언제나 어두컴컴한 우리 집
비밀번호 소리만 윙윙 울리는 우리 집.

―이송현(1977~ )

모든 것이 비밀번호로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 이름과 얼굴은 잊어버려도 괜찮지만 비밀번호를 모르면 큰일 나는 시대가 되었다. 비밀번호는 이제 꼭꼭 잠긴 비밀의 문을 여는 마법의 열쇠가 되었다.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새로 정한 비밀번호, 아이가 잊지 않기 위해 외우고 또 외웠을 비밀번호, 그러나 그 비밀번호를 눌러 대문을 열어보아도 집에는 가족이 없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비밀번호가 아니다. "오, 어서 오렴" 하고 반갑게 맞아줄 가족들의 목소리다. 가족의 반가운 목소리 대신 아이의 귀에 비밀번호 소리만 윙윙 울리는 집,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 대신 비밀번호만 기억되는 시대는 어쩐지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