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의 배우 유경아

탤런트 유경아(40)는 너무 쉽게 스타가 됐다. 어린 시절 수줍음을 타던 성격을 고치고자 우연히 참가한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서 진·선·미를 제치고 여왕이 된 순간부터다. 당시 심사위원인 드라마 PD의 권유로 열한 살에 하이틴 스타의 등용문으로 통한 MBC TV '호랑이 선생님'에 합류했다. 이후 '푸른계절'(1988), '울밑에선 봉선화'(1990) 등에서도 주연했다.

빨리 얻은 인기만큼 잃는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자유'다. 엄격한 부모와 대중의 시선 때문에 일탈은 꿈꿀 수 없었다. "스스로 답답했던 것 같다. 컵 밖으로 나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으면 좋았을 걸…. 또 잠시 방황을 해도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어릴 때 경험했어야 하는데 인기로 인해 나 스스로를 가둬뒀다"는 것이다.

'떴다하면 주연'이었던 만큼 연예계의 치열함도 몰랐다. 욕심 많은 친구들의 시기와 질투를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가 느껴졌다. 평소 "탤런트 같지 않다는 말을 가장 좋아했다"는 유경아는 평범한 사람의 삶을 갈망했다. 결국 1991년 KBS 드라마 '맥랑 시대'를 끝으로 미국 유학을 선택하며 연예계를 떠났다.

"학창시절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때는 반장도 하고 공부도 잘했거든요.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 학교생활에 소홀해졌어요. 그게 싫어서 평일에도 새벽 5~6시까지 촬영하면 무조건 다음날 학교에 가서 졸았어요." 유경아는 유학 당시 "다시는 연예계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탤런트 유경아라는 꼬리표를 떼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전화번호도 싹 바꾸고 떠났어요. 하지만 3년이 안 가더라고요. 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여자 직업으로서 자신을 가꾸면서 일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인 것 같다'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셨죠."

높은 인기를 뒤로하고 떠난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다. 함께 활동했던 배우들이 스타가 돼 있는 것도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마음먹고 들어간 매니지먼트사와의 관계도 완만치 않았다. 그래도 데뷔 후 처음 조연을 맡은 MBC TV '짝'(1996)은 견딜만했다.

2009년 SBS TV '자명고'를 찍을 때는 "정말 내가 이 바닥에서 아무런 존재가 아니구나 싶었다"고 절망하게 됐다. 고정출연이던 역할은 3~4회 분량의 특별출연으로 밀렸다. 하지만 더 참기 힘든 건 자신을 따르던 후배의 대우였다. "제가 잘나갈 땐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친구였어요. 그런데 첫 연습을 갔더니 인사도 안 하고 아예 저를 못 본 척 하는 거예요. 저보다 잘 나가게 되니. 사람 많은 곳에서 저를 안다는 것 자체를 수치로 느꼈나 봐요. 그날 술도 못하는 제가 야채볶음 곱창과 소주를 한 병 사와서 혼자 마셨죠."

"다시는,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려 했어요"라는 유경아는 2011년 SBS TV '내일이 오면'의 제의를 받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진혁 PD의 연락을 받고 홍정은·미란 자매의 신작인 SBS TV '주군의 태양' 3회에 귀신으로 특별출연했다. 자신의 돈을 보고 결혼한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교통사고가 나 죽게 되는 역할이다.

유경아는 "귀신도 처음이고 죽는 역할도 처음이었어요. 많이 힘들었지만 너무 재밌었어요"라며 웃었다. "귀신분장을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주로 밤 촬영이라 시민들이 놀랄까봐 얼굴을 가리고 다녔어요. 화장실 가기도 죄송스러워서 물도 못 마셨죠. 식사도 누가 사다주면 대기실에서 먹고 그랬어요. 평생 가도 한 번 못해볼 귀신 역할이었죠"라며 만족해했다.

"현장에 오랜만에 가면 어색한데 '주군의 태양'은 먼저 더 챙겨주고 전용의자도 내주시고 선배 대접을 많이 받았어요. 이동식 에어컨도 제 앞으로 놔 주시고. 한 달 동안 촬영했지만 정말 계속 찍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죠. 이제는 일을 정말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3~4개월 전부터 월요일마다 미혼모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던 친구들이 이제는 먼저 말을 걸고 인사를 한다. 엊그제는 음식까지 권했다.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이제는 제가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유경아는 "오랜만에 연기를 시작한 만큼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며 "못된 시누이나 아이 엄마도 좋을 것 같다"고 바랐다. "하면서 느는 게 연기인 것 같아요. 또 이제는 나이가 들면서 묻어나오는 연륜의 느낌을 알 것 같아요.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연기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힘들게 연기를 다시 시작한 만큼 백발이 될 때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얼굴만 봐도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연기자'가 되는 게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