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바닥 안에 구름이 가득하다. 구름 끝에 빅토리아풍의 웅장한 저택과 나무 덤불이 환영(幻影)처럼 서 있다. 구름 위를 헤매는 남자의 뒷모습. 초현실주의 회화처럼 몽롱한 이 작품은 미국 사진가 제리 율스만(Uelsmann·79)의 1989년작 '무제'다.
율스만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사진가. 합성사진은 예술이 아니라고 여겼던 1960년대, 사진이 현실만을 반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포토 몽타주 기법을 이용해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있는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창출해 냈다.
어도비(Adobe)사의 포토샵은 그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걸로 알려져 있다. 이 사진은 작가의 꿈속 장면. 집, 구름, 손, 인물 등의 구성요소는 모두 다른 필름에 담겨 있던 것으로, 율스만은 이를 한 장의 종이에 인화해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인간의 손이 어떤 언어보다 즉각적이고 강력한 소통 도구라고 믿었고, 반세기 이상 '손'이라는 소재에 몰두했다.
24일까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넷이서 하나'에 율스만 작품 70여점이 나왔다. 율스만의 부인인 매기 테일러(52), 주명덕(73), 강운구(72)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02)418-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