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전선하 기자] 영화 ‘설국열차’(감독 송강호)가 흥행 질주 중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은유로 읽히는 영화는 묵직한 질문을 던짐에도 봉준호 감독을 사랑하는 영화팬들의 발걸음을 연일 극장가로 이끌고 있다. 영화팬들이 아니더라도 1년에 한두 번 극장가를 찾을 정도로 영화 관람이 드문 관객들에게조차 ‘설국열차’는 꼭 봐야 할 작품 리스트에 오를 정도라 하니 봉준호 감독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짐작할 만 하다.

‘봉준호 브랜드’에 대한 이 같은 믿음은 감독 외에 그가 선택한 배우들에게까지도 연장선상에 있다. 그 중 고아성, 그는 봉준호 감독이 지난 2006년 영화 ‘괴물’에서 기용한 이후 7년 만에 다시 손을 잡은 봉준호 사단의 일원이다. 첫 스크린 데뷔작에서 평단과 관객 모두를 만족시킨 ‘괴물’로 인상적인 신고식을 치른 고아성은 이번 ‘설국열차’를 통해 국내 관객뿐만 아니라 167개국 해외 영화팬들에게도 배우로서 자신의 얼굴을 보이게 된다. 스물한 살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임에도 필모그래피가 굵직굵직한 고아성, 그녀에게 운이 따르는 걸까. 이번 영화에서 열차에서 태어나고 자란 ‘트레인 베이비’ 요나 역을 맡은 고아성에게 흥행질주 중인 ‘설국열차’에 올라탄 기분을 물었다.

◆ 요나가 트림을 하는 건
 
"흥행이유요? 봉준호 감독님 때문이죠. '설국열차'의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 중 제일가는 슈퍼스타는 감독님이세요."

고아성은 ‘설국열차’에 대한 숱한 화제의 공을 봉준호 감독에게 돌린다. 그러면서 “편하게 고생시킬 수 있는 배우가 나 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며 7년 만에 봉준호 호(號)에 다시 올라탄 특별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고아성이 연기한 요나라는 인물은 영화 속 앞으로만 돌진하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와는 달리 아빠 남궁민수(송강호)와 함께 옆을 볼 줄 아는 유이한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 부녀는 영화 속 여타 꼬리칸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도드라진 모습으로 영화의 결말을 위해 달려간다. 봉준호 감독은 고아성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영화 ‘몽상가들’의 에바 그린과 ‘비틀쥬스’의 위노나 라이더를 추천했다.

“인물의 설정 자체가 기차에서 태어나고 자란 걸로 돼 있다 보니 요나에게 있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일이란 분명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요나가 징벌방에 갇힌 채 등장하는 모습에 대해 사람들은 그 공간이 답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요나에게 있어 세상의 전부는 기차라는 공간이기 때문에 전혀 좁지 않게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등장하자마자 하품을 하고 꺽 하고 트림을 건 편함을 드러내는 행동이에요.”

영화 속 닫힌 곳 너머를 보는 투시력 또한 이 같은 설정에서 기인하는 요나의 독특함이다.

“기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땅에서 살다가 열차에 올라탄 사람보다 요나는 청각에 있어 뛰어나요. 기차가 운행하는 동안 나는 필연적인 소음이 요나에게는 그저 일반적인, 신경 쓰일 만한 수준이 아니고, 그러다 보니 남다른 청력으로 문 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유추하는 거죠. 원래 시나리오 초고에는 ‘I see sound’라는 대사가 있었어요. 소리를 보는 아이가 요나인 거죠. 창 밖에서 눈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듣는 게 요나라는 인물이에요.

트레인 베이비라는 설정은 낯설지만 고아성은 의외로 이를 연기하기 위해 생활에 기반을 두고 그 위에서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말한다.

“‘최후의 툰드라’라는 다큐멘터리에 보면 야말족이라는 유목민이 나와요. 시베리아에 사는 떠돌이 에스키모족인데, 교육과 학습이 전혀 안 된 꼬마들의 모습에서 요나가 가야 할 길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어요. 짐승과 가축을 사냥해 입에 붉은기를 묻혀가며 피를 맛있게 마시는 모습에서 ‘이런 게 바로 요나구나’ 했죠. 또 주변에 있는 어린 꼬마들을 보면 호기심에서 곤충의 사지를 찢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죄책감 없는 순수가 요나가 가진 어떤 모습일 거라고 상상했어요.”

◆ '괴물'의 행운을 알게 된 지금
 
고아성은 '설국열차'가 뚜껑을 연 언론시사회 당시 인상적인 발언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데뷔작으로 '괴물'을 만난 건 불행에 가까웠다는 그의 말은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이 배우가 짓눌렸을 작품의 무게를 연상케 하며 고통을 짐작케 했지만 오해가 있다는 게 고아성의 말이다.

“그 말을 한 걸 지금은 후회해요. 불행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극단적으로 받아들일지는 몰랐으니까요. 단지 마이너스였다는 의미였어요. 다른 작품들을 하다가 ‘괴물’을 만났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가볍게 한 적이 있거든요. 배우 생활 하면서 찾아오기 드문 순간들이 ‘괴물’ 때 많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어려서 모르고 지나간 게 아쉽다는 뜻이었어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은 또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어요. ‘괴물’ 때와 같은 일들은 드물게 일어나지만 인생에 한 번 뿐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답니다.”

고아성에 대한 관심은 한결 예뻐진 외모 덕을 본 것도 있다. 한 포털사이트 쇼케이스를 통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고아성은 ‘괴물’의 앳된 여중생티를 완전히 벗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오랜만에 나와서 예쁘게 봐주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빨리 컸다, 잘 컸다 하시기도 하는데 저는 매일 거울을 보니까 어디가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거든요.”

예뻐진 외모는 단순히 겉모습 외에 고아성이 풍기는 성숙한 분위기의 영향을 더 많이 본 듯 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조근조근 한 말투로 작품에 대한 애정과, 스물한 살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지만 단단한 각오가 엿보이는 배우의 길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다. 잠시 나누는 대화에서도 고아성이 지향하는 길은 스타가 아닌 배우의 대로라는 걸 짐작케 했다.

“지금은 작품을 홍보하는 기간이니까 나를 드러내지만 평소에는 저를 거의 안 드려내려고 일부로라도 노력하는 편이예요. 친한 사람들의 작품 시사회에 갈 때도 포토월에 서는 일은 없어요. 차분하고 조용히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다행히 그런 환경이 조성돼 있어요. 조금만 노력하면 되고 충분히 선택 가능한 영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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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