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담장 뛰어내리는 멧돼지

멧돼지들이 도심에 나타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수확기에 접어들면 농작물을 먹기 위해 농부들이 땀을 흘려 가꿔놓은 밭을 파헤쳐 피해를 주더니, 최근에는 도심 한복판에 자주 출몰하면서 시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멧돼지는 그동안 겨울철에 먹이가 부족해 산을 내려왔지만 최근에는 번식기가 끝난 6~8월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과정에서 도심 지역에 빈번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먹이를 찾아 계속 이동하는 멧돼지의 습성과 마땅한 천적이 없어 개체 수가 증가해 먹이 경쟁이 심해짐에 따라 도심에 자주 출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발견 지점이 점차 도심으로 가까워지고 있어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도심에 출몰한 멧돼지들은 도심 시설과 문화재 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로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멧돼지들의 빈번한 도심 출몰이 자칫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된다.

지난 12일 오전 6시45분께 서울 종로구 부암동 북악산 인근 능금마을에 멧돼지가 출몰해 3시간 여 만에 사살됐다.

경찰은 이날 오전 마을 내 비닐하우스 인근에 설치한 올무에 멧돼지가 걸렸다는 신고를 받고 야생동물관리협회와 함께 출동해 멧돼지를 사살했다.

경찰 관계자는 "능금마을은 평소에도 멧돼지 출현이 잦은 곳"이라며 "인적이 드문 곳이라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부암동 인근 주택가에는 멧돼지가 자주 출몰해 농작물 피해를 입자 주민들이 올무를 설치해 놨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대낮에 서울 도심 창덕궁에 멧돼지가 나타났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멧돼지를 잡기 위해 1시간 가량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9일 오후 12시30분께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에 멧돼지 1마리가 출현했다.

경찰은 '창덕궁에 멧돼지가 출연했다'는 관리사무소 측 신고를 받고 멧돼지 포획 작업에 착수했다. 수색 1시간 만인 오후 1시30분께 멧돼지를 발견해 사살했다.

사살된 멧돼지는 몸길이 120cm, 몸무게 150kg에 육박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 중앙고등학교 운동장에 출몰했던 멧돼지와 같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지역 멧돼지 출현은 56건으로 2008년 15건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멧돼지의 도심 출현이 잦아지면서 소방당국은 마취총을 준비했지만 큰 멧돼지에게는 별 소용이 없어 대부분 사살을 한다. ·

서대문소방서 관계자는 "덩치가 큰 멧돼지의 경우 표피가 워낙 두꺼워 마취총 바늘이 들어가지 않거나 부러지기도 한다"며 "도심에 출몰한 멧돼지들을 사살하는 일은 안타깝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포획이나 사살을 하는 방법으로는 멧돼지의 도심 출몰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까지 멧돼지의 도심 출현을 막을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멧돼지들의 활동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규모의 서식지를 제공하고 관리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야생생물관리협회 관계자는 "별다른 천적이 없는 멧돼지들이 개체수가 늘어가 먹이를 찾기 위해 도심에 자주 출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멧돼지들의 활동성을 보장할 수 있는 서식지 제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멧돼지 습성이나 생활환경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단순 포획이나 사살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멧돼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한 적절한 개체수와 생활환경, 습성 등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