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는 참 믿기 어려운, 차마 말로 옮길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금기를 뛰어넘는 사랑도 그 중 하나다. 말 못할 것들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다. 옛사람들이 신화에 그것을 투영했고, 소설과 영화라는 픽션이 이를 풀어내고 있는 이유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환자들의 근친상간 고백을 처음에는 망상으로 여겼다. 그러다가 그리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추출해낸다. 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서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뜻하는 이 단어는 이제는 상식이 됐다.
22일 개봉하는 호주·프랑스 합작 영화 ‘투 마더스’는 근친상간은 아니지만 ‘근친상간이다시피한’ 복잡한 관계를 그렸다. 이모나 다름없는 어머니들의 가장 친한 친구와 각각 애인이 된 두 청년의 이야기다. 더 충격적인 것인 실화가 바탕이라는 점이다. 원작은 2007년 노벨문학상을 탄 영국 여성작가 도리스 레싱(94)이 2003년 발표한 단편집의 표제작 ‘더 그랜드마더스’(할머니들)다.
레싱은 하퍼콜린스 출판사와 인터뷰에서 “두 소년의 친구인 한 남자가 해준 이야기”라고 밝혔다. “이 남자는 연상의 여성들을 사귀고 싶었으나 항상 거절당해온지라 그들을 무척 부러워하고 있었다”며 “보통 나이든 여성들이 젊은 남자들을 유혹한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젊은이들이 이들에게 먼저 접근하게 마련이고, 관계를 끝내고자 하는 것도 도덕적 관습을 지키고자 하는 나이든 여성 쪽인 것이 대부분”이라고 짚었다. 오래 전, 10여년 간에 걸친 이들의 관계를 레싱에게 거듭 얘기해준 이 남자는 “그들이 몹시 행복해보였다”고 묘사했는데, 이러한 관점이 소설을 쓰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치밀하게 인간심리를 파고드는 도리스 레싱의 문체가 이 스토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하더라도 영상에서는 더욱 직접적이 되면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연출을 맡은 여성감독 안느 퐁텐(54·영어식으로 ‘앤 폰테인’이라고도 불리는)은 이 영화가 추해 보이지 않도록 온갖 힘을 다한 듯하다. 오드리 토투(35)를 주인공으로한 ‘코코 샤넬’(2009)로 명성을 얻은 이 룩셈부르크 출신 프랑스 감독은 우선 로케이션과 캐스팅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낙원 같은 배경에 신처럼 완벽한 외모의 인물들을 밀어 넣어 불륜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잔뜩 치장했다. (‘불륜’의 의미가 가정이 있는 사람과의 사랑으로 축소되긴 했지만, 사실 윤리를 거스르는 행태는 보다 광범위하다)
늙은 작가의 여고생에 대한 사랑을 그린, 박범신(67) 원작 ‘은교’(감독 정지우·2012)가 나이든 배우 대신 젊은 박해일(36)을 노인으로 분장시키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시각화된 ‘노추’를 어느 정도 무마시키려 한 것과 같다.
안느 퐁텐 감독은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에덴동산과 같은 순수와 관능이 뒤섞여 있는 장소’를 찾고자 했고, 호주의 수도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 주 실 록스와 셀리 비치 등에서 촬영했다. 푸른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너른 해변은 이들 네 사람만의 파라다이스가 됐다. 여자 주인공들로는 20대 뺨치는 비키니 몸매와 금발의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호주의 나오미 와츠(45)와 미국의 로빈 라이트(47), 이들의 아들로는 ‘이클립스’(2010)에 뱀파이어 중 하나로 나온 호주의 자비에르 새뮤얼(30)과 호주 영화 ‘애니멀 킹덤’(2010)으로 주목받은 제임스 프레체빌(22)을 캐스팅했다.
촉촉한 푸른 눈망울이 매력적인 섬세한 미녀 나오미 와츠는 남편을 잃은 후 외로움을 견디는 릴 역을 맡아 감성적 연기를 보여주며, 짧은 머리의 로빈 라이트는 주말부부가 된 후 어린시절부터 단짝이었던 릴의 아들 이안에게 빠져드는 로즈 역으로 지적인 외모처럼 보다 이성적인 면모를 연기한다. 이안 역을 맡은 자비에르 사무엘은 릴을 닮은 미모의 금발 청년으로 보다 순수한 애정을 지니고 있으며, 로즈의 아들 톰 역의 제임스 프레체빌은 갈색 고수머리와 우뚝한 콧날로 다비드 상을 닮은 강건한 외모로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극중 릴과 로즈의 “우리가 만든 작품 맞아?”, “아름다운 젊은 신 같아”, “신과 같은 아우라를 지녔지”라는 대화처럼 푸른 파도를 가르는 서핑을 하는 두 젊은이의 모습은 그들이 뿜어내는 싱싱한 에너지만으로도 눈이 부실 지경이다. 중년 여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그때가 더 예뻤지만 지금이 더 매력적이지”라고 자위하고, 거울을 보며 얼굴의 주름살을 슬퍼한다든지, 젊은 연인에게 더 이상 누드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는 등 어느 여인이라도 지닐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그때문에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선망으로 어린 남자에게 빠져든다는 나름의 설득력도 확보한다. 그러나 이들 여우는 실제로는 군살하나 없는 몸매에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며 비현실감을 배가시킨다.
먼저 이 엄청난 도발을 시작한 것은 어느덧 10대 후반이 된 이안이다. 이 영화의 원제 ‘흠모하다(Adore)’처럼 로즈의 집에 자신의 방을 두고 가족처럼 지내던 그는 로즈에게 연모의 정을 나타내고, 이들의 관계를 눈치 챈 톰이 반항심에 릴을 찾으면서 이들은 얽히고설킨 관계가 된다. 로즈의 남편 해럴드(벤 멘델슨)가 소외감을 느껴 가족을 떠나게 될 정도로 이들은 단단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들만의 세상에서는 세대를 이은 우정과 가족 간의 사랑, 이성간의 애정이 4명을 통해 완벽하게 이뤄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금단을 넘었다는 공범의식과 타인의 시선을 피해 비밀을 지키고자 하는 공동의 불안이 폐쇄적 결속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겠다.
남들이 보면 절친한 가족들처럼 보일 것이고, 릴과 로즈가 레즈비언 관계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면서 이들은 이웃한 두 집만이 살고 있는 외딴 바닷가에서 그들만의 천국을 구가한다. 감독이 의도했듯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과 이브처럼, 수치심을 알기 전의 인류처럼 관습과 도덕을 벗어던진 채 행복감을 만끽한다. 끝없는 바다 위 부표처럼 띄워놓은 나무 데크에서 이들 네 사람이 나란히 누워있는 장면은 고립된 섬 같은 곳에서만 이들의 관계가 용인 내지 유지될 수 있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감독은 어떻게 결말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관객들을 희롱이라도 하듯 계속 이야기를 쥐었다 놨다 한다.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이 잘 된 관객이라면 조마조마하겠지만, 다소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면 좀 약이 오르기도 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묻을 것인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까발릴 것인가. 결국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는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킨다. ‘막장’이라고 손가락질 하긴 쉽겠지만, 누군들 그러한 유혹에 맞닥뜨려 보지 않고 이들에게 무작정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하지만 훗날 이들 가족과 관련되는 또다른 등장인물들처럼 역겨움을 느끼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일단 이 영화는 시원한 풍경이 연이어 나오면서 여름용 영화로는 제격이다. 근육질의 몸매로 격정적 호르몬을 뿜어대는 젊은 남우들의 나신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요기가 된다. 감독이 여성인만큼 나른하면서도 부드럽게 연출된 베드신은 여성 관객들의 취향에 맞아떨어진다.
어찌됐든 ‘은교’를 보고 나오며 괜히 젊은 여성들에게 말을 걸어 보는 늙은이들처럼 추태는 부리지 말자. 원작자 도리스 레싱의 통찰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노희경(47) 작가가 드라마 ‘거짓말’에서 윤여정(66)의 입을 빌려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은 거야. 길가다 교통사고처럼 아무랑이나 부딪힐 수 있는 게 사랑이야”라고 했지만, 교통사고 나라고 나서서 나자빠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