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수단의 유목민 마을. 아이의 빨갛게 부어오른 발바닥 속에서 희고 가는 물체가 나온다. 지렁이처럼 보이는 이 생명체의 몸뚱이는 끊어지지도 않고 계속 꼬물거리며 나오고, 아이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이 괴물은 메디나충, 기생충의 하나다.

이어 경남의 한 계곡에서 사마귀 뱃속을 야금야금 파먹으며 반(半)주검으로 만들어버리는 연가시가 화면에 등장한다. 번식 장소인 물로 이동하기 위해 좀비 사마귀를 투신자살시킨 후 배를 뚫고 길고 시커먼 몸체를 드러낸 수십·수백마리의 암수 연가시들이 짝짓기를 위해 몸을 실타래처럼 뭉친 모습은 사교(邪敎)집단의 난교(亂交) 의식 같다.

22~25일 방송된 EBS TV 다큐프라임 '기생'에서 보인 이 장면들은 100% 리얼리티였다. 구미호와 늑대인간이 떠난 안방극장에 납량물 역할을 톡톡히 하며 '메디나충'과 '연가시'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2위까지 올랐다. 25일 서울 도곡동 EBS에서 만난 연출자 박성웅 PD는 "우리가 늘 박멸 대상으로 여기던 기생충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는데, 시청자 반응이 이렇게 열렬할 줄 몰랐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25일 편집실에서 작업 중인 박성웅 PD의 모니터에 사람의 생살을 뚫고 나온 메디나충이 잡혔다. 그는“이 기생충 한 마리를 사람 몸 밖으로 완전히 빼내는 데 보름이나 걸린다”고 말했다.

"97년 입사 후 주로 과학 프로를 맡아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2004년 기생충의 생존 능력을 파헤친 칼 짐머의 저서 '기생충 제국'을 읽은 뒤 이들을 꼭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저도 어렸을 때 회충약을 먹은 뒤 변 속에서 꼬물거리는 벌레를 보고 기겁한 적이 있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기생충은 그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잖아요."

그는 지난 1년 반 동안 제작팀과 국내와 아프리카·유럽·미국·남미 등 지구촌을 누볐다.

"연가시가 뚫고 나오기 직전의 '좀비 사마귀 자살 현장'을 찾아 헤매다 지칠 무렵, 경남 진주 경상대에서 연가시 논문을 쓰는 학생을 알게 돼 함께 채집 현장을 다니다 화면에 담을 수 있었죠."

사람 발의 생살을 뚫고 나오는 몸길이 최장 2m의 메디나충을 화면에 담기 위해 남수단 수도 주바에서 자동차를 16시간 타고 유목민 마을로 들어갔다. "메디나충은 1차 숙주 물벼룩이 든 물을 마실 때 사람 몸으로 들어가 키 높이만큼 자라는 거죠. 집에서 물 긷고 음식 만드는 여자와 아이들에게 주로 발생해요. 벌레가 생살을 뚫고 나올 때 아이가 고통에 몸부림칠 땐 저도 마음이 아팠죠. 촬영은 촬영대로 해야 하니…."

흔히 '이 기생충 같은…'하며 박멸의 대상 취급당하는 기생충, 하지만 이 다큐에 담긴 기생충의 세계는 여느 생물의 치열한 삶과 다르지 않다. 종족 확산 목적으로 자신들이 기생한 개구리나 개미의 몸뚱이를 기괴하게 바꿔 새에게 잡아먹히게 하는가 하면, 자신의 알을 정성껏 돌보게 하기 위해 수컷 게를 암컷으로 바꿔버린다. 이어 기생충의 침입에 맞서 생존하려는 인간 등 숙주들의 치열한 노력, 그리고 기생충을 이용한 해충 구제 등 대결을 넘어 공존으로 향하는 현장까지 담았다.

박 PD는 파나마 정글에서 개미에게 물려 6개월 동안 가려움증에 시달렸는가 하면, 악명 높은 체체파리에게 자신의 팔을 내주고 직접 피 빨리는 장면을 찍기도 했다. 그가 기생충에 대해 내린 결론은 '좋다고 보긴 어렵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은 존재.'

"인간과 기생충은 끊임없이 경쟁을 해왔어요. 긴 안목으로 봤을 때 기생충은 진화의 파트너입니다. 앞으로도 같이 갈 것이고, 같이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