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면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까.’
일에는 일정한 순서와 절차가 있고 때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급할지라도 차근차근 순서에 의해 일을 처리해야 함을 뜻하는 우리말 속담이다.
야구라는 운동도 1, 2, 3루와 본루를 차례로 밟아야 하고, 1번부터 9번까지 타순을 지켜 공격해야 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지만, 사람이 급하다 보면 일의 순서를 하나하나 따질 겨를 없이 건너뛰고 마는 경우가 생기는 수도 있다. 또한 공 하나만 있으면 다 되는 운동이 아니라 배트와 글러브 여기에 보호장비까지 두루 갖춰 들다 보니 이에 대한 보완까지, 준비해 둘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래서 규칙으로 돌발 상황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장황한 글로써 대처법을 따로 마련해 놓고 있지만, 가끔 그 틈새를 파고드는 선수들의 우발적(?) 행동 앞에 판정관들의 머리 속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데, 이런저런 사연을 담은 선수들의 ‘글러브 던지기’도 그 중의 하나이다.
야수의 글러브 던지기 첫 번째 사연.
지난 7월 9일 롯데와의 경기(목동구장)에서 8회초 롯데 황재균의 투수 앞 땅볼을 잡아 여유 있게 송구하려다, 타구가 글러브 사이에 끼어 빠지지 않자 급한 마음에 글러브를 1루를 향해 통째로 집어 던진 넥센 한현희의 과감한(?) 플레이는 당일 저녁 스포츠 소식의 톱 이슈로 다루어졌을 만큼, 커다란 화제를 몰고 왔는데, 사실 선수의 글러브 송구는 규칙에 설명이 들어있지 않는 내용이다.
아주 오래 전, 선동렬(당시 해태)이 공이 박힌 글러브 전체를 1루수에게 토스해 타자주자를 아웃시킨 전례도 있고, 2010년 두산의 2루수 고영민이 타구가 끼어버린 글러브를 통째로 2루쪽으로 던져 1루주자를 포스아웃시키려 했던 기억도 있지만, 어쨌건 현행 야구규칙에는 야수의 글러브째 송구에 관해서는 이러저러한 법조문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물론 공이 박혀있는 글러브를 야수가 손이나 미트 또는 글러브로 잡으면 정상적으로 공을 잡은 것과 동일한 상황으로 간주, 주자의 루 도착시점과의 선후관계를 따져 아웃과 세이프를 판별해 내고는 있지만, 가지를 뻗자면 글러브 송구는 해석이 대단히 복잡해질 수도 있다.
공이 들어있는 글러브를 잡는 야수가 손이나 미트로 잡지 않고, 축구의 골키퍼가 공을 잡듯 팔로 안아서 잡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도 있고, 1루수가 미트로 글러브를 잡아냈지만 시각적으로 공은 미트 바깥쪽으로 완전히 삐쳐 나와 있는 그림을 상상해 볼 수 도 있다.
아직 정답이 어떤 것인지 공증을 받지 않은 상태이고, 위와 같은 가정의 상황들을 과연 정규의 포구로 볼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사람마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규정을 마련함에 있어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공이 일단 글러브에 박힌 순간, 그 글러브는 공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공이 글러브에 박혀 정지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곧 공과 글러브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으로 바꿔 해석된다. 공이 끼어있는 글러브를 야수가 정상적으로 받아낼 경우, 이를 정규의 포구로 인정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한편 이날 투수 한현희의 글러브 송구는 거리가 너무 먼데다 방향이 다소 치우치는 바람에 타자주자를 잡아내지 못해 투수 자신의 악송구성 실책으로 기록되었지만, 야구적으로 볼 때 이는 투수의 불가항력적인 돌발상황으로 해석해 실책보다는 타자의 안타쪽으로 판단하는 것이 좀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타구 자체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투수가 잡아낸 뒤의 후속상황이 정상적인 플레이를 가져갈 수 없는 상태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현희가 1루쪽으로 뛰어가며 최대한 거리를 좁힌 상황에서 글러브를 잘못 던진 것이라면 실책으로도 기록이 가능할 수 있다.
야수의 글러브 던지기 두 번째 사연은 타구를 잡기 위한 목적으로 글러브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지난 7월 3일 메이저리그 LA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는 6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조시 러틀리지(콜로라도 로키스)의 번트타구가 투수 마운드와 1루수 사이로 구르자, 이를 쫓아가다 급한 마음에 글러브를 빼내어 타구쪽으로 집어 던진 후 맨손으로 공을 잡아 타자주자를 1루에서 잡아내는 장면을 연출한 적이 있었다.
이후 콜로라도 측에서 즉각적으로 커쇼의 글러브 던지기 행위가 반칙행위에 해당된다며 이의제기를 하고 나섰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날 커쇼가 행한 플레이를 반칙행위로 볼 수 있는지의 판단기준 골자는 글러브가 타구에 닿았는지 아닌지가 핵심이다. 혹자는 커쇼가 고의적으로 타구를 맞추려고 던진 것이 아니었기에 규칙위반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았다고 풀이했지만, 고의인지 아닌지의 선수의도 자체는 하등 상관이 없다. 정말로 커쇼가 타구를 글러브로 맞추어 세우려고 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타구에 맞지 않았다면 반칙행위는 소멸된다.
물론 던진 글러브가 타구에 닿았다면 규칙에 따라 타자에게는 3개루의 안전진루권이 부여된다. 만약 타구가 아니라 야수의 송구에 대고 글러브를 던져 닿게 했다면 공격측 주자들에게 공히 2개루가 주어진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3루타가 아니라 3개루이다. 과거 야구규칙집에는 3루타가 주어진다 라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그 본 뜻은 타자주자에게 3개루의 안전진루권을 부여한다 라는 뜻으로, 오역을 주의해야 한다.
가령 커쇼의 손을 벗어난 글러브가 타구에 닿아 심판원이 조시 러틀리지(콜로라도)의 3루 점유를 인정했다면, 이때는 내야안타와 동시에 타자주자의 2루와 3루 진루는 원인제공을 한 커쇼의 실책으로 기록된다. 물론 2루타성 타구에 글러브를 던져 닿게 했다면 2루타와 실책(3루진루)을 함께 기록하면 된다.
타구가 워낙 강해 잡는 과정에서 타구의 힘으로 글러브가 손에서 빠졌다면? 이때는 공수 모두 정상적인 플레이로 인정된다.
마지막으로 야수가 글러브를 벗어 던지는 좀 특별한(?) 사연은 불만표출 목적이다.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에 불만을 표출하다 퇴장당하며 글러브를 마운드에 내팽개치는 장면도 그렇고, 더 던지고 싶었지만 코칭스탭이 강제로 공을 빼앗자 마운드를 내려가며 덕아웃쪽으로 글러브를 집어 던지는 과격한 감정표현도 글러브를 용도 변경한 사례에 속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를 긴장 속에 몰아넣었던 글러브(미트) 던지기 한 장면이 떠오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포수 강민호가 퇴장당하며 덕아웃 벽에 세차게 집어 던졌던 미트 집어 던지기 장면이다. 한 방이면 역전패할 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정신적으로 한국팀을 하나로 집중시키고, 결과적으로 상대팀 쿠바의 좋은 흐름을 흩뜨려 놓았던 강민호의 속칭 ‘99마일’ 미트 집어 던지기는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 생각해도 글러브를 던져 가장 효과를 본 최고의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한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