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신문지에 그리던 중에서 나는 나를 발견한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自身)'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이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으로 가득차다."

1967년 10월 13일 뉴욕에 있던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1913 ~1974·사진)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김환기는 매일 두 번 일기를 썼다. 한 번은 그림으로, 다른 한 번은 글자로. 30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리는 'Works on Paper: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에 김환기의 종이 작품(Oil on paper) 63점이 소개된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미국 뉴욕에 머물던 시절 김환기는 매일 집으로 배달되던 뉴욕타임스 신문지에 일기를 쓰듯 선명하고 화사한 그림을 그렸다. 이때의 종이 작업은 그가 만년에 그린‘점화(點畵)’의 밑거름이 됐다. 1970년작‘Untitled 5-VIII-70’(왼쪽 그림)과 1970년대 작품‘무제’(오른쪽 그림).

신문지에 일기 쓰듯 그린 그림

작품은 꼭 가까이서 봐야만 한다. 점, 선, 면이 조합된 기하학적 형상 뒤로 종이에 인쇄된 글씨가 언뜻언뜻 비쳐 보인다. 검정 글씨로 또렷하게 박힌 'Female Wanted', 'IBM SUPERVISOR' 같은 구인 광고, 뉴욕타임스 제호(題號) 등이 그림과 어우러져 모던하고 세련된 조형미를 획득한다. 가로 37㎝, 세로 58㎝의 화면 크기가 친근하다. 뉴욕 시절 캔버스 살 돈이 없었던 김환기는 폐지로 버려지는 신문지에 눈을 돌렸다. 매일 집으로 배달된 뉴욕타임스에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 쓰듯 작업했다.

"1960년대 뉴욕타임스는 지질(紙質)이 오늘보다 훨씬 좋았다. 하도 종이가 좋아서 신문지에 유채를 시도한 김환기는 종이가 포함한 기름과 유채가 혼합되어 빛깔에 윤기가 돌고 꼭 다리미질한 것과도 같은 텍스처가 나오는 것이 재미난다면서 한동안 종이에 유채작업에 몰두했다." 아내 김향안(1916~2004) 여사의 회고다.

트레이드마크 點畵도 종이 작업서 나와

가난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택한 종이 작업은 김환기에게 리넨 캔버스에서 면 캔버스로 가는 도중 거쳐야만 했던 일종의 '매체 실험'이기도 했다. 처음엔 신문지로 시작했던 김환기는 나중엔 한지, 보드지, 갱지, 공책과 포장지 등 다양한 종이로 확장했다. 그는 종이의 질감에 매혹됐다. 종이가 머금은 맑고 투명한 액체가 화면에서 서서히 새나오거나 뿜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즐겼다. 그는 이후 캔버스 작업에서도 그 느낌을 유지한다.

김환기 추상화의 트레이드마크인 '점화(點�)'도 종이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는 1967년 1월 2일 일기에 "Oil on paper를 캔버스에 옮겨서 완성. 이해의 첫 작품인 셈. 선(線)인가? 점(點)인가? 선보다는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 고 썼다.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엄밀히 말하면 캔버스 그림을 위한 에스키스(esquisse·밑그림)다. 그러나 구성의 엄밀함과 색채의 맑고 산뜻함은 캔버스 그림 못지않다. 우리가 김환기를 대가(大家)라 칭하는 것은 일기 쓰듯 슥슥 그려낸 작품에서도 완벽함과 품격이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시는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맞아 꾸며졌다. 지난해 초 탄생 99주년을 맞아 갤러리현대가 준비했던 대규모 회고전의 후속이다. 전자책과 스마트폰의 시대에도 종이의 힘을 믿는 관객에게 권하고 싶다. 전시는 광주시립미술관으로 옮겨 8월 28일부터 9월 22일까지 계속된다. (02) 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