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조선총독부가 4~5세기의 고분으로 알려진 경주 금관총을 발굴했을 때 환두대도(環頭大刀·고리자루 큰칼)가 나왔다. 90여년 세월이 흐른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이 녹을 제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1년이 흘렀고, 드디어 녹에 묻혀 있던 글자 4자(字)가 실체를 드러냈다. 그것은 뜻밖에도 '이사지왕( 斯智王)'이란 글자였다.
신라에서 군주의 칭호는 거서간(居西干)→차차웅(次次雄)→이사금(尼斯今)→마립간(麻立干)을 거쳐 서기 503년 지증왕 때 비로소 '왕(王)'이라는 칭호를 쓰기 시작했고('삼국사기' 기록), 이와 함께 고대국가의 기틀이 갖춰졌다는 것이 교과서의 기술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인 4~5세기부터 이미 '왕(이사지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새롭게 열린 것이다. 신라 무덤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왕명(王名)이자, 신라의 고대국가 확립 연대를 앞당기게 될 수도 있는 단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3일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의 하나로 금관총 출토 환두대도를 보존 처리하면서 이 글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중앙박물관 홍진근 학예연구관은 "명문의 선이 워낙 가늘어서 식별이 어려운 데다 녹으로 덮여 있어서 지난 90여년간 아무도 글자를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환두대도의 칼집 끝 부분 앞면에서는 ' 斯智王(이사지왕)', 뒷면에는 '十(십)'이란 글자가 확인됐다. 자루와 만나는 칼집 윗부분에는 ' (이=爾)'자가 있었다. 6세기 이전 마립간 시대(서기 356~500년)의 신라 최고 지배층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에서 왕 이름이 처음 드러난 것이다. '왕'이라는 칭호는 1989년 발견된 포항 냉수리 신라비에도 등장하지만, 이 비석의 건립 연대는 지증왕이 왕 칭호를 쓰기 시작한 해인 503년이었다.
그러나 박물관 측은 아직 '이사지왕'이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금석문에 나오지 않는 인명이기 때문이다. '마립간' 칭호를 썼던 내물·실성·눌지·자비·소지왕 중 한 명의 별칭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신라에선 고위 귀족도 왕으로 불렸다'는 일각의 학설에 따라 왕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금관(국보 87호) 같은 위세품이 함께 출토된 점으로 볼 때 왕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