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딸 수 없는 건 없다. 뭘 딸건지 말해라. 거기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속칭 '딸키'를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어 지난달 28일 찾은 세운상가. 한 열쇠집 주인에게서 이틀전과 다른 답이 돌아왔다.
취재진은 26일 세운상가 일대 열쇠집 6군데를 돌며 실제 '딸키'를 파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만능키가 있느냐"고 물었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그런 것 취급 안한다"며 손사레를 쳤다.
28일 작전을 바꿔 다른 취재진이 '꾼' 행세를 하며 "그것도 하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두 군데에서 "해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세운상가에서 '딸키'가 유통되고 있고 단속 등을 우려해 '꾼'을 상대로 은밀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한 가게 주인은 "가격이 어느 정도냐"는 물음에 "뭘 딸 건지 알아야 거기에 맞춰 액수가 달라진다"며 "(경찰에) 불고 그러지 않을테니 뭘 딸건지 말해보라"며 비밀보장을 약속하기까지 했다.
250cc 이하 오토바이면 기종에 관계없이 시동을 걸 수 있는 속칭 '딸키'를 이용한 오토바이 절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6일 전주에서는 '딸키'로 다른 사람의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 타고 달아난 A군(16)이 경찰에 붙잡혔다.
또 같은달 14일 대구에서도 '딸키'를 이용해 430만원 상당의 오토바이 5대를 훔친 혐의로 B군(16) 등 2명이 검거됐다.
앞서 지난달 13일에는 딸키를 이용해 340만원 상당의 오토바이 2대를 훔쳐 경기도 군포에서 서울 한강변까지 떼를 지어 폭주한 고등학생 C군(17) 등 10대 9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딸키'를 이용한 오토바이 절도 범죄의 경우 범죄자 대부분이 10대이고 절도한 오토바이가 폭주, 날치기 등 2차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커 '딸키 오토바이 절도'는 쉽게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오토바이를 얻기 위해 '딸키'를 이용해 오토바이를 훔친다든지 하는 절도와 비행도 문제지만 훔친 오토바이를 조직적으로 판매한다든지 그걸 이용해 날치기, 들치기 등 범죄를 저지르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세운상가에서는 오토바이 절도의 주범인 '딸키'가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었다. 한 열쇠집 주인은 "밑(상가)에 (딸키를 만들어 줄) 아는 애들도 많다"는 말까지 했다.
'딸키 오토바이 절도' 피해자 채모씨(22)는 세운상가에서 '딸키'를 만들어 준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까지 학생들이 잘 아는 바이크샵 사장님한테 '딸키'를 빌려서 절도를 저지르는 줄만 알았는데 전문적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있다니 충격"이라며 "경찰 등이 당연히 단속을 벌여 '딸키'를 못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동호회 회원 전모씨(28)도 "대개 매니아들 사이에서 바이크 선진국을 일본으로 칭하는데 일본은 바이크 절도나 관련사고에 대해 법령 등이 굉장히 많다"며 "'딸키'로 인한 오토바이 절도를 막을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딸키를 만들어 준다'는 자체는 범죄 사실이 아니라 단속이 힘들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딸키'를 이용한 오토바이 절도에 대한 변변한 사건 통계조차도 없다.
한 경찰 관계자는 "세운상가에서 그런 키를 만들어 준다는데 대해 아직 들어 본 바가 없다"며 "범죄에 사용될 소지가 있다는 판단 아래 키를 만들어줬다면 절도 방조 혐의를 적용할 수 있겠지만 '만들어줬다'는 자체가 범죄가 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세운상가 관할 혜화경찰서 관계자도 "만들어준 딸키가 범죄에 사용됐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딸키가 범행에 이용됐다는 정황이 드러나야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딸키 관련)앞으로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염건령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 총포 도검 화약류 등 단속법에 따라 사제 총기 제작을 단속하는 것처럼 범죄 목적이나 범죄 목적으로 사용가능한 만능키 등 제품에 대해서는 금지품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염 연구위원은 "만능키나 지금 미국에서 자동차 절도에 많이 쓰이고 있는 만능 무선 자동차 키 등 절도에 쓰일 수 있는 물건들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모법을 만들고 경찰청 시행령 등 개정을 통해 금지품 제조에 대해 단속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