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박정선 기자] 개그맨 도대웅은 MBC 코미디언실에서 이제야 막 막내를 벗어난 풋풋한 신인이다. 여럿이서 함께 한 인터뷰를 제외하고 단독 인터뷰는 처음이라는 그는 긴장한 듯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몇 마디의 말을 오고가자 언제 긴장했냐는 듯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귀여운 외모와 장난기 가득한 입담이 마치 전교에서 제일 웃긴 10대 소년을 떠올리게 했다.
인터뷰 전 그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도대웅 이름 세 글자를 검색했다. 개그맨이라는 직업에도 불구하고 블로그 곳곳에는 그의 사진과 함께 ‘잘생겼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어찌 된 것이냐 놀리듯 물으니 “화면발”이라며 쑥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는 “이제는 맹승지에게로 다 옮겨갔다”며 불평을 늘어놓아 웃음을 자아냈다.
“아마 그런 검색어를 똑같은 팬들이 계속 올리시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무한도전’ 이후 그런 글들을 올려주시는 거 같은데, 이젠 (맹)승지에게로 다 옮겨 갔죠. 아무래도 개그맨이다 보니 그런 칭찬이 너무 감사해요. 뭐 그래도 아직은 웃기다라는 말을 더 듣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도 있어요.”
‘코미디가 빠지다’(이하 ‘코빠’)는 최근 대거 코너 개편을 겪었다. 아직 시청률 면에서 큰 변화는 없었지만, 개편 이후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진 것만 해도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MBC의 코미디를 살려내고자 모인 개그맨들의 피와 땀이 이뤄낸 성과였다.
“야심차게 새 코너를 만들기 위해 노력이 많았어요. 합숙을 한 팀도 있었죠. 18개 코너를 새롭게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6개 코너가 무대에 올라갈 수 있었어요. 일주일 내내 ‘코빠’를 살려보기 위해 모두가 ‘해 보자’해서 새 코너가 나온 거죠. 진짜 고생 많았어요. 다들 ‘코빠’만 보고 달려가는 거예요. 아이디어를 짤 때는 정말 스트레스가 많은데, 무대에 올라가는 그 순간의 희열 때문에 그 고생을 놓을 수가 없어요.”
새 코너는 그야말로 생고생 덕분에 만들어졌다. 김정욱 예능1국장부터 ‘코빠’의 김명진 PD까지 코미디를 살리기 위해 힘썼다. 그리고 일단 이슈화를 시킨 뒤 시청자들을 사로잡겠다는 게 도대웅의 생각이었다.
“제가 맡은 코너인 ‘B급 언어’는 좀 센 코너예요. 그냥 듣고 있으면 욕만 들린다고 누군가 드러더라고요. 그래도 세게 가보자 해서 이슈화를 시키고 싶었어요. ‘코빠’ 팀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살자고 하는 거라서 다 같이 노력 중이죠. 김정욱 국장님이나 김명진 감독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제 MBC는 코미디만 살면 된다.’예요. 두 분 다 코미디를 정말 좋아하시는데, 국장님 같은 경우는 아버님처럼 저희를 돌봐 주시죠. 사실 국장님 정도 되면 코미디언실에 안 오셔도 상관없잖아요. 근데 저희 1기 선배부터 저희같은 막내들까지 다 아실 정도로 애정이 많으세요. 감독님은 국장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분이고요.”
‘코빠’는 이러나저러나 아픔이 많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몇 년간이나 건재한 KBS ‘개그콘서트’와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던 SBS ‘웃찾사’ 이후 후발주자로 시작했다. 이전 프로그램명을 바꿔 가며 재기를 노렸지만 연이어 실패, 현재의 ‘코빠’가 됐다. ‘코빠’로서는 대중의 외면을 받고 시작한 입장에서 절대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었다.
“예전엔 ‘하하하’라는 프로그램 명으로 녹화를 했었어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역시 MBC는 안 웃기다’는 말을 들었죠. 그러다 차차 피드백이 조금씩 오더라고요. 그래도 MBC 코미디에 관한 인식이 있으니까 힘들긴 합니다. ‘개그콘서트’가 부럽긴 하죠. 일주일 내내 고생했는데 시청자들이 안 보면 속상하긴 하잖아요.”
도대웅은 1984년생으로 올해 서른이다. 지난 2012년 개그맨 공채로 MBC에 들어온 그는 학창시절부터 개그맨을 꿈꾸다 대학로에서 오랜 공연장 생활을 했다. 대학로에서 만난 손헌수, 황제성 등의 개그맨 선배들이 그를 MBC로 이끌어준 장본인이었다.
“중 3때부터 개그맨이 꿈이었어요. 사실 공부는 아예 안하는 편이었고,(웃음) 군대를 갔다와서 그 꿈을 굳혔죠. 제대하자마자 SBS 아카데미에 갔어요. 거기서 황제성 선배님을 만났고, 대학로가서 공연장 생활을 하면서 공채 시험을 계속 봤어요. 시험은 10번 정도 본 것 같아요. 대학로 생활은 6년 정도 했죠. 거기서 우연히 MBC에서 개그를 할 기회를 얻었고, 특채로 활동하면서 공채 시험을 준비해서 붙었어요. 참, 당시에 같이 뽑힌 동기 중에 한 명이 계약하러 안 왔더라고요, 얼굴도 모르지만 지금 혹시 연락이 되면 보고 싶네요.(웃음)”
그는 지난 5월 방송된 ‘무한도전-술래잡기’에 출연하며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그의 활약은 도대웅 본인이나 제작진이 기대했던 것보다 눈부셨다. 단순히 키가 작아서 갖게 된 기회였지만, 그는 ‘간다간다 뿅간다’ 특집까지 출연하며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무한도전’은 목요일 녹환데, 수요일 밤에 연락이 왔어요. 처음엔 그냥 산초 역할이라고 연락이 와서 무작정 열심히 했죠. 김태호 PD님이 산초 역할이 있다고 저희 감독님께 추천을 해달라셔서 몇 명이 뽑혔는데, 그냥 제가 키가 제일 작아서 출연하게 됐어요. 제가 하하 형보다 2cm 작아요(웃음). ‘무한도전’ 자체가 어떻게 돌아갈지를 모르는 프로그램이에요. 작가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시니까요. 녹화를 하면서 좀 알겠더라고요. 녹화하면서 정말 많이 뛰었어요. 노량진에서 동작까지 뛰었어요. 너무 뛰어서 카메라가 못 따라와서 방송 안된 장면도 많은 거예요.”
‘무한도전’ 출연 이후로 그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그는 이번 계기로 그야말로 ‘무도의 힘’을 느끼게 됐다. 이젠 길을 가다보면 그를 향해 ‘조력자다’라는 말이 들려온다. 그는 최근 ‘무한도전’에 출연한 후 집중된 맹승지에 대한 관심에 살짝 질투를 하기도 했다.
“당시에 저도 ‘무한도전’을 보고 있었는데, 휴대폰이 난리가 났어요. ‘무도의 힘’이란 게 정말 무섭더라고요. 그리고 기사를 찾아 봤는데, 싸이 콘서트 때문에 아쉽게 검색어 2위를 했더라고요. 기사를 보고 있자니 정말 꿈 같았어요. 기분도 엄청 좋았죠. 어느 날 MBC에 촬영을 하러 왔는데 ‘어, 조력자다. 귀여워요.’이러시더라고요. 감사하긴 한데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웃음). 근데 승지가 저 다음으로 빵 터졌어요. 저는 피드백이 12시간도 안 왔는데, 걔는 이틀 동안 왔더라고요. 이 것 때문에 놀림도 좀 받았어요(웃음).
도대웅은 ‘무한도전’에서 당대 최고의 방송인들과 녹화를 함께 했다. 유재석, 박명수를 비롯해 고수들만 모였다는 ‘무한도전’ 녹화는 신인인 그로서 특별할 수밖에 없는 기회였다. 그에게 살짝 유재석과 박명수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도대웅은 마치 우연히 연예인을 본 자랑을 하는 아이처럼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유재석 선배님은 연예인이죠. 박명수 선배님은 아무래도 MBC에서 매일 마주치는 분이다보니 친근한 분이고요. 박명수 선배님은 저희가 막내 기수 때 퇴근도 못하고 있으면 회식 시켜주신다 그러고 저희 데리고 나와주시던 선배예요. ‘간다간다 뿅간다’에서 제가 박명수 선배님한테 막말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러고 ‘똑바로 해. 이 XX야’라고 문자가 왔어요. 선배님 입장에서는 애정 섞인 덕담 문자라고 할까요?(웃음) 진짜 못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그러신다는 걸 알죠. 유재석 선배님 같은 경우는 그날 처음 봤는데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녹화를 들어갔는데, 바로 ‘대웅이구나’ 이러시면서 편하게 해주셨죠. 2번째 봤을 때도 이름을 계속 기억해주셨고요. 녹화에 들어가면 정말 편하게 해 주세요.”
도대웅이 꿈 꾸는 삶은 그야말로 코미디를 위한 삶이었다. 그리고 그는 예능과 코미디를 모두 잘하고자 하는 욕심쟁이였다.
“저는 코미디로 쭉 갔으면 좋겠어요. 마흔, 쉰까지도 코미디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코미디적으로 인정받는 개그맨이 되고 싶어요. 예능도 좋죠. 토크쇼보다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을 하면 되게 잘 할 거 같아요. 한 마디로 죽는 날까지 웃기면서 죽고 싶어요. 마지막 죽기 전엔 웃긴 멘트 하나 말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최규한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