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구 절반 시대'에 진입하게 된 주된 요인의 하나가 '의식 변화'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태어나는 여자아이 100명당 남자아이 비율이 110.2명(자연 출생비는 105~106명 선)에 이를 정도로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다. 그런데 2005년 남아 선호 사상이 담겨 있는 호주제(戶主制)가 전격 폐지되고, 남녀평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차차 변하면서 출생 성비가 105.7명까지 떨어졌다. 특정 성(性)을 선호하는 사람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이제는 오히려 젊은 층 사이에서는 여아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것도 여성 인구 비율이 높아진 이유다. 2011년 현재 여성의 기대 수명(올해 태어난 아이가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은 84.5년으로 남성(77.6년)보다 6.9년 길다. 남녀 기대 수명의 차이는 1990년 8.2년, 2000년 7.3년보다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살기 때문에 여성 인구 비율은 앞으로도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60세 이상 연령층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대학 진학률, 여성이 남성 추월
단순히 여성 인구가 수적으로만 많아지는 게 아니라 여성들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교육'이다. 2009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처음으로 앞섰다. 이후 격차는 점차 벌어져 올해는 여성의 진학률(74.3%)이 남성(68.6%)보다 5.7%포인트나 높다. 교육받은 여성들은 각계각층에 활발히 진출했다. 사법고시 합격생 중 여성 비율은 2000년 18.9%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41.7%까지 급증했다.
'남성 중심 사회'가 '남녀 균형 사회'로 바뀌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거대한 흐름이다. 미국에선 여성 노동인구가 전체의 절반(49.9%)에 이르고, 미국과 유럽 대학 학위의 60%를 여성이 따는 상황이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10년 신년호에서 "지난 50년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혁명적 변화의 하나가 여성의 권리 강화(empowerment)"라고 지적했다.
◇여성 대통령 나왔어도 여성들의 유리 천장은 여전히 높아
우리나라 여성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등교육을 많이 받은 세대인데도 사회에 진출해 일하는 비율은 49.9%(2012년 통계청 자료)로 OECD 국가 중 최하 수준이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이미 남성을 추월해 OECD 최고 수준인데도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성(73.3%)보다 23.4%포인트나 낮다. 배운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여성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경력 단절'이다. 취업을 했다가도 결혼하고 임신, 출산을 하는 30~34세가 되면 일을 그만두는 비율이 높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다.
전 세계가 여성의 잠재력에 주목하며 여성이 주도하는 경제, 나아가 여성이 주도하는 사회를 의미하는 '우머노믹스(womanomics)'로 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까지 나왔지만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여성들이 '고위 관리직'에 못 가게 막는 '유리 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국내 10대 그룹의 여성 직원 비율은 20.3%인데, 여성 임원 비율은 1.5%에 그친다. 여성가족부 박난숙 여성정책과장은 "기업 관리직, 국회의원, 정부위원회 등 의사 결정직에 여성이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미 트랩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앞으로 과제
전 세계적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이 일을 하면서 자기 능력을 발휘해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OECD는 최근 발간한 '성별 격차 해소 보고서'에서 "한국 노동시장에서 남녀 참여 격차를 지금 상태로 유지하면 2030년까지 1인당 GDP 성장률이 연평균 2.5%지만 격차를 50% 줄이면 성장률 3%를, 격차를 완전히 없애면 3.4%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주재선 박사는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발목 잡혀 직장을 그만두는 '마미 트랩(mommy trap·엄마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