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엄마 아빠가 와도 부담 느끼지 않고 잘할 수 있다고 해 경기장에 왔죠. 정말 감격스럽네요."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박인비(25)가 24일 미국 아칸소주 피나클 골프장에서 끝난 월마트 NW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연장전 끝에 역전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 박건규(52)씨와 어머니 김성자(50)씨는 가슴 뭉클한 표정이었다.

2009년 박인비가 심한 슬럼프에 빠지자, 아버지 건규씨는 딸의 캐디를 자청해 국내 대회에 출전했다. 사진은 2009년 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 넵스마스터피스 대회에서 준우승할 때 박건규(왼쪽)씨와 박인비의 모습.

지난 4월 우승자가 가족, 캐디와 함께 연못에 빠지는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박인비가 우승할 때 직접 응원하고 싶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리적 부담에 예민한 딸의 만류로 비행기 티켓을 취소했었다. 하지만 이날은 온 가족이 대회가 끝나자마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가 선수와 캐디, 가족들을 위해 마련한 비행기를 타고 US여자오픈이 열리는 뉴욕주 사우샘프턴으로 이동했다. 박인비는 27일 개막하는 US여자오픈에서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에 도전한다.

아버지 박씨는 박인비에게 골프의 '첫 스승'이다. 페트병(PET) 용기 포장재를 제작하는 기업을 운영하던 박씨는 젊은 시절 골프를 접했다. 가업(家業)을 물려준 부친 박병준(81)씨에게 배운 그의 골프 실력은 젊은 시절 언더파 스코어를 자주 기록할 만큼 수준급. 어머니 김씨 역시 박인비를 임신한 채 골프를 즐길 정도였다.

박인비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처음엔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이 전환점이 됐다. 부부는 모처럼 관심을 보이는 딸에게 골프를 제대로 가르쳐보고 싶었다. 아버지 박씨는 "지나치게 강훈련을 하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골프의 기초를 탄탄히 익히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박건규씨는 박인비를 중1 때 데이비드 레드베터, 부치 하먼 등 쟁쟁한 코치들에게 보냈다.

"당시 폴라 크리머와 모건 프레셀 등 쟁쟁한 유망주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이었죠. 아무래도 미국 선수가 우승하기를 바라는 분위기 속에서 인비가 힘들게 싸웠지요."

부모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로 우승할 때만 해도 박인비가 순탄하게 성장할 줄 알았다. 하지만 드라이버 샷에 고질적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찾아온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박씨는 "연습장에선 그렇게 잘 치던 딸이 라운드를 돌고 나면 온몸을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회상했다. 급기야 박인비는 2009년, "골프를 그만두고 싶다"고까지 했다. 골프가 딸을 불행에 빠트린 것 같았다. 이후 아버지는 캐디를 자청해 국내 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그때 속상한 마음을 생각하면 오늘 같은 날이 정말 꿈만 같다"고 했다. 당시 박인비는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2011년부터는 남기협(약혼자)씨와 함께 스윙을 고쳐 나가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박씨는 작년 2월 LPGA 투어 혼다 클래식이 끝나던 날 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제 스윙을 어떻게 할지 감을 잡았어요." 그때부터 상승 곡선을 그린 박인비는 골프 '여제(女帝)'가 됐다. 올해 4월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박인비는 아버지에게 "골프를 가르쳐주셔서 고맙다"고 말했다. 박씨는 "딸이 행복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