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낙엽들 그 사이로~'
올해도 더위가 한풀 꺾일 즈음 라디오 프로들은 가을의 전령사로 이 노래를 내보낼 것이다. 좋은 노래는 누가 언제 불렀는지 따지지 않고 음악 자체로 사랑받는다는 걸 보여온 고은희·이정란의 '사랑해요'다.
'사랑해요'가 때 이른 가을 엽서처럼 새로 단장해 이 여름을 찾는다. 이정란(49)이 새 파트너 이윤선(46)과 28년 만에 새로 녹음해 다음 달 EP(미니 앨범)를 발표하는 것. 둘은 파주포크페스티벌(9월 7~8일·임진각 평화누리 야외 공연장) 등 다양한 무대에 오른다.
이정란·이윤선은 고은희와 함께 홍익대 노래 동아리 '뚜라미' 출신이라는 점에서 음악적 혈연관계다. 그들의 인큐베이터인 서울 홍익대 뚜라미실에서 지난 20일 둘을 만났다. 빛바랜 악보와 통기타, 까마득한 후배들을 신기한 듯 보던 두 사람이 막 녹음한 2013년판 '사랑해요'를 들려줬다. "어때요? 홍대 필(feel) 좀 나죠? 향수만을 달래는 음악이 돼선 안 된다고 다짐했거든요. 중장년층의 음악이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걸 꼭 깨보고 싶었죠."(이정란)
신시사이저의 다채로운 효과음과 묵직한 일렉기타로 보컬의 하모니를 뒷받침한 1985년 노래와 달리 2013년 버전은 어쿠스틱 기타와 절제된 피아노 반주가 곁들여져 한결 수수하고 쿨한 느낌. 새 음반에는 '사랑해요'를 비롯, '4월과5월'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등불'과 신곡 2곡 등 총 4곡이 실린다.
85년 '고은희·이정란' 하모니가 20대라고 믿기 어려운 원숙함이었다면, 지금의 '이정란·이윤선' 화음은 쉰을 앞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청명함이다.
"사람 몸 중 목소리가 제일 늦게 늙는다잖아요. 원곡에선 은희 언니가 메인 멜로디를, 정란 언니가 고음 하모니를 넣었는데 이번엔 정란 언니가 은희 언니 파트를, 제가 정란 언니 부분을 맡았어요. 함께 입맞추니 뚜라미 필(feel)이 나오더라고요. 하하."
'사랑해요'로 화음을 맞췄던 보컬들의 인생 궤적엔 풋풋했던 음악 동네 풍경도 그려져 있다. 83학번 동기 고은희·이정란은 소속 동아리 '뚜라미'로 84 MBC 대학가요제 결선까지 진출했고, 이들의 가창력을 눈여겨본 지구레코드가 대학가요제 이듬해인 85년 둘이 부른 뚜라미 창작곡들을 모아 '대학가의 노래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내놨다.
앨범은 발매 직후 제목처럼 대학가에서 인기몰이를 했다. 한국음반산업협회 관계자는 "아마추어 출신으로 별다른 홍보 활동 없이 판매액이 히트 기준치인 10만 장을 훌쩍 넘겨 가요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앨범"이라고 했다.
고은희가 결혼 후 미국에 사는 동안 솔로 앨범 몇 장을 더 낸 이정란은 복음 성가 가수와 공연 기획자로 활동해왔다. 그 둘의 3년 후배 이윤선은 MBC 합창단을 거쳐 코러스 뮤지션과 가수 매니저로 활동해왔고, '백설공주'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여주인공 한국어 더빙 가창자로 활동했고, 보험설계사로 변신해 지금은 보험사 부지점장이다. 2000년대 초 교회에서 재회해 교회 특송 무대 등으로 '끼'를 되살려온 두 사람이 '가요 음반까지 내자'고 의기투합했다.
"젊을 때는 가수로 성공하자는 오기로 똘똘 뭉쳐 있었어요. 가수만이 음악의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편해지고 일이 즐거워졌죠. 그때 음악의 도(道)를 맛본 것 같아요"(이윤선), "억지와 부담을 훨훨 떨친 자유로움, 그게 포크 음악의 모토잖아요. 이제부터 무대에서 그 자유를 관객과 나눠야죠."(이정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