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매달 130만원을 버는 김모(67·서울 중구)씨는 현재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못 받고 있다. 소득 인정액을 계산할 때 근로소득에서 45만원을 빼주는데도 소득액이 기준(월 83만원)을 넘기 때문이다. 김씨는 "사글세 방에 혼자 사는 경비가 월 130만원을 번다고 우리나라 상위 30%의 고소득 노인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집 판 돈 3억원(소득 인정액 월 71만6666원)을 은행에 넣어두고 서울 강남의 큰아들 집에 사는 할머니는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부(富)의 상징인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에 사는 노인 1037명 중 4.5%(47명)가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타워팰리스 사모님은 기초노령연금을 받는데 경비원은 못 받는 구조다.
종업원 2명을 두고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모(66)씨 부부도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식당 매출이 연간 8000만원을 넘는데 소요 경비 등을 제하고 월 사업 소득 58만원으로 인정받는다. 아파트(2억원)와 예금, 자동차 등 재산을 다 합쳐도 월 소득 인정액은 119만원에 불과해 기초노령연금 대상에 든 것이다. 반면 김씨의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월급이 140만원으로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없다.
자영업자는 필요 경비를 모두 뺀 나머지를 사업소득으로 인정해주는 반면 월급 받는 사람들은 세금 떼기 전에 받는 총액을 소득으로 계산하는 구조 때문이다.
◇소득 하위 70%의 문제점
현재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최고 월 9만6800원씩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대로 기초노령연금이 내년 7월부터 기초연금으로 바뀌고 금액도 최고 20만원으로 늘어난다. 당초엔 모든 노인에게 주려고 했다가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자 현재 국민행복연금위원회가 기초연금 지급안을 새로 짜고 있다. 기초노령연금과 비슷하게 소득 하위 70~80% 노인에게 지급하는 쪽으로 의견이 점점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초노령연금을 보면 소득 하위 70%라는 기준조차 일하는 노인들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부자 노인들에게는 관대하게 설계돼 있는 등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생계비를 벌기 위해 부부가 함께 일하면 기초노령연금을 타기가 힘들게 돼 있다. 이모(67·경기 성남)씨 부부는 각각 회사 건물 경비원과 청소부로 일해 월 120만원, 90만원을 번다. 이씨 부부는 근로소득에서 각각 45만원씩 도합 90만원을 빼줘 소득 인정액이 월 120만원으로 평가됐다. 주택(1억1000만원)을 합쳐 소득을 따져 보니 부부 가구의 선정 기준액을 초과했다. 성남시 관계자는 "노후에 일하는 노인은 대부분 빈곤층인데 이들이 정작 기초노령연금 대상에서 탈락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노인이 있는 가구의 기초노령연금 수령 실태를 조사한 결과 소득 상위 10%에 해당하는 가구에서 2명 중 1명꼴(54.2%), 상위 11~20% 가구에서도 10명 중 6명꼴(59.5%)로 기초노령연금을 타고 있었다. 같이 사는 가족의 소득은 보지 않고 노인 개인의 재산·소득만을 기준으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도시·농촌 간 형평성 논란도
앞으로 기초연금의 모델이 될 현재의 기초노령연금은 ‘소득 하위 70% 복지’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구조는 크게 ‘5개 함정’에 빠져 있다. ①대도시·중소도시·농촌 간의 공제 차이 ②근로자와 자영업자에게 인정해주는 소득 범위의 차이 ③생계형 맞벌이 노인들에 대한 배려 부족 ④함께 사는 가족의 재산 무시 ⑤연금 소득의 공제 혜택 제외 등으로 인해 불공정한 기초노령연금이 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서울 등 대도시는 재산에서 빼주는 기본 재산 공제액이 1억800만원인데, 중소도시는 6800만원, 농촌 지역은 5800만원으로 차이가 난다. 강원도 철원에 사는 김모(70)씨 부부는 소득은 없고 집과 논밭(공시지가 4억원)이 있다.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액수(142만5000원)가 선정 기준액을 넘어 탈락했다. 그런데 서울 사는 그의 친구는 더 비싼 아파트(4억2000만원)에 사는데도 연금을 탄다. 농촌 지역은 재산 공제액이 적어 같은 4억원 재산가라도 서울에 살면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농촌에 살면 못 받는다.
심지어 서울 근교 도시인 과천·용인·성남 등은 중소 도시로 간주되기 때문에 재산 공제액이 적어 기초연금 타기가 서울보다 어렵다. 서울은 전체 노인의 절반(50.6%)이 기초노령연금을 타는데 과천은 10명 중 3명만 받는다(용인은 42.9%, 성남은 48.7%). 과천시청 관계자는 “과천은 집값이나 생활비 수준이 서울과 엇비슷한데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보훈·국민연금 수령자에게는 공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재검토해야 할 문제다. 외국에서 보훈연금은 대부분 전액이나 일부를 공제해주고, 국민연금도 감액해 주는 나라가 많다.
◇"70% 기준도 재검토해야"
그래서 현재 국민행복연금위가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소득 하위 70~80% 기준’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재원을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노인 부부 가구는 소득 인정액이 월 132만8000원을 넘지 않으면 기초노령연금을 탄다. 소득 하위 70% 기준을 유지할 경우 이 기준액이 2020년이면 199만원(2010년 불변 가격), 2030년이면 326만원으로 점점 더 높아진다. 소득 인정액 326만원은 재산으로 환산하면 9억원에 해당한다. 부유한 노인들에게 돈을 보태주려고 그보다 소득이 적은 젊은 세대들이 내는 세금을 엄청나게 쏟아붓는 불공정한 사회 구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인 가구 재산이 늘어나는 바람에 전체 노인의 70%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주려고 소득 기준액을 매년 높여왔다”고 말했다. 최병호 보건사회연구원장은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70~80% 식으로 정해버리면 그 숫자를 인위적으로 맞추느라 사회적 낭비가 커진다”며 “최저생계비의 150%(1인 가구 월 85만원)나 중위 소득의 50%(월 84만원) 이하처럼 일정 소득을 기준으로 정해야 연금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초연금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 한 65세 이상 노인세대에게 매월 일정액을 세금으로 지급하려는 제도다. 현재는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 월 최고 9만6800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는데, 대상과 액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