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번역가 이미도(52)는 영화 번역의 전설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극장에서 외국 영화를 보고 나면 꼭 올라가는 자막이 '번역 이미도'. 서른둘이던 1993년 영화 '세 가지 색' 시리즈로 외화 번역을 시작해 꼬박 20년간 미국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영화사인 월트디즈니·드림웍스·픽사 등에서 직접 번역을 의뢰받으며 액션·애니메이션 영화 500여편을 우리말로 풀었다.

그가 최근 자기계발서 '똑똑한 식스팩'(도서출판 디자인하우스)을 냈다. "외화 번역가 이미도가 갑자기 웬 자기계발서?"라며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그는 "정확히 말하면 '자기발견서'"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누군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먼저 알면 자기계발은 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미(美)’자가 들어간 이름 탓에 여자일 거란 오해를 받았지만 이미도는‘40개월간 공군에서 복무한 남자’다. 그는“좋아하는 일을 하라(Do what you love!)”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대답과 나이키의 광고 문구“Just do it!”을 합쳐“좋아하는 일을 바로 실행에 옮기라(Just do what you love)”고 말했다.

"작년 12월 26일 바닷가 커피숍에 앉아있는데 '코끼리 집'이라는 카페에 앉아 냅킨에 '해리 포터' 시리즈를 구상한 조앤 롤링이 떠올랐어요. 저도 그녀처럼 냅킨에 생각을 끼적이기 시작했지요. '영어 대문자 A를 세 개 쌓으면 전체 이미지도 A가 되겠지? 그건 피라미드꼴인데, 기초가 탄탄한 피라미드는 성공과 성취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될 테고…. 가만, 성공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Accomplishment이니까 성공할 수 있는 요소들을 기억하기 좋게 영어 단어로 압축·정리하면 누구나 재밌게 읽지 않을까?' 이렇게요."

단숨에 집필에 들어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0시간씩 딱 1주일간 400여쪽 분량의 글을 썼다. 10년 전 첫 책을 냈던 출판사와 또 손을 잡았다. 이번 책을 그는 "20년간 외화 번역가로, 10년간 작가로 축적한 내 삶을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최고의 식스팩(six pack·복근)으로 무장한 아홉 번째 책"이라고 정리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엔딩 크레딧에서 '번역 이미도'라는 자막이 드물어지자 '이제 이미도는 한물간 거냐' '먹고살기 위해 집필로 방향을 튼 거냐' 말이 많았어요. 정작 저는 영화 번역을 오래 하다 보니 입양아를 키우는 것 같았어요. 제 아이를 낳고 싶었어요. 그래서 창작을 했어요."

영화 번역을 예전엔 한 달에 두 번꼴로 했지만 요즘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하고 있다. "번역과 집필, 강연을 다 하고 싶어 시간을 적절히 안배하는 중"이라 했다. 그는 "그간 우리나라에선 번역가의 이름이 과하게 노출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번역가는 보조 작업자일 뿐 1차 창작자는 아니거든요. 크레딧에 이름을 넣더라도 맨 끝에 넣는 게 당연하고요. 제 이름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진 이유이지만 그게 원칙이라 서운하진 않습니다."

그의 이름 '미도(美道)'는 미군 통역관이자 사서였던 아버지가 아름다운 길을 가라는 뜻에서 지어줬다. 아버지는 그의 첫 영어 선생님이자 그가 영화와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 "독립하는 과정에서 제게 재미있는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책이고 영화였어요. 특히 이병주(1921~1992)의 소설은 제가 실수해서 놓친 게 아니라면 100종이 넘는 작품을 다 읽었어요."

그는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책과 영화에 더 빠져든 건지도 모르겠다"며 "특히 세계 최고의 창조 집단인 월트 디즈니, 스티브 잡스가 세운 픽사,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세운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을 대부분 다 번역해온 나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상상력을 즐기고 배울 수 있었던 엄청난 행운아"라고 했다. 그는 "배에 있는 식스팩은 딱딱하지만 뇌에 있는 식스팩은 똑똑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