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동안 서울대의 국내 학술지 논문 게재 건수와 단행본 출간 건수가 10% 이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내부에서는 "국제 논문 실적만 강조하는 사이 서울대가 국내 학계에서 제 역할을 못 하는 것 아니냐"는 자성론도 나온다.
10일 서울대 2012년 운영성과 자체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학술지에 게재된 서울대 논문 건수는 14.8% 감소(2011년 2045건→2012년 1742건)했다. 2009년(2259건)보다 22.9% 줄어든 수치다. 교수 업적의 결실로 불리는 단행본 출간 건수 역시 1년 새 14.1%(2011년 735건→2012년 631건) 감소했다. 반면 국제 학술지 논문인 SCI(과학기술논문색인)급 논문 실적은 크게 향상됐다. 2009년 5304건이던 서울대 SCI급 논문 게재 건수는 작년 7057건으로 33.1% 늘어났다.
서울대는 SCI급 논문 게재 건수가 늘어나고 국내 학술지 논문 게재 건수가 줄어든 것에 대해 '국제화 효과'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그동안 세계 수준 대학을 목표로 국제화를 강조하다 보니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논문이 늘었고, 상대적으로 국내 학계 비중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자연계열의 한 교수는 "기술이라는 게 언어와 상관없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이니 세계적으로 인정받을수록 좋은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의 의견은 좀 다르다. 사회대 양승목 학장은 "최근 학교에서 SCI를 강조하다 보니 교수들이 국제 논문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한국 풍토에 최적화된 담론이 적극적으로 형성돼야 한국이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서울대가 기여할 수 있는데, 최근 추세는 이에 역행한다"고 말했다. 사회대 A교수는 "미국에서는 정년보장을 받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단행본을 출간하면서 담론을 주도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단행본보다 20쪽짜리 국제 논문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했다. 사회대 B교수는 "SCI급 논문 1편이 국내 학술 논문 5편만큼 인정받는데 누가 국내 학술 논문을 쓰겠느냐"고 했다. 경영대 C교수는 "최근 기업 CEO에게 '서울대 교수들은 대체 뭐 하는 거냐. 지금 한국 기업들이 처한 문제를 타개할 생각은 않고 영어 논문만 잔뜩 쏟아내서야 되겠느냐'는 질타도 들었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SCI급 논문을 중시하는 현상은 정부의 재정 지원 사업 대부분이 SCI 논문 업적을 중심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면서 "SCI가 '대세'가 되다 보니 경영대·사회대에서도 SCI급 논문을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근식 교수는 "국제 논문에 무조건 국내 논문보다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것 대신, 뛰어난 국내 논문은 국제 논문 이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