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가 서늘했던 지난 5일 새벽 2시, 서울 개포동 개포주공아파트.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이 오른팔에 신문을 한 움큼 끼고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다리가 불편한지 걸음을 절뚝거린다. 낡은 5층 아파트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는 왼팔로 난간을 의지하며 매달리듯 계단을 오르내렸다. 68세인 최모씨의 직업은 신문 배달원이다. 조심조심 층계를 밟을 때마다 계단 난간에서 삐걱삐걱 하는 소리가 최씨의 발 끄는 소리와 함께 새벽녘 조용한 층계참에 울렸다. "내가 몸이 불편하니까 다른 할 일이 뭐 있겠나. 슬슬 운동 삼아 할 겸 하고 있는 거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헬기에서 떨어져 다리가 불편한 최씨는 여느 배달원처럼 오토바이를 몰지 못한다. 그의 운송 수단은 바퀴 두 개 달린 빨간 손수레다. 걸음이 느리다 보니 같은 시간에 배달할 수 있는 신문이 적다. 오토바이로 10여초 만에 이동할 거리가 1분도 넘게 걸린다. 최씨가 속한 조선일보 서(西)개포센터에선 최씨가 92부를 돌리고 한 달에 22만원을 번다고 했다.

신문 배달원의 과거… 그리고 현재 - 과거 신문 배달원은 20대 이하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40·50대 이상이 가장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문 배달원의 연령대가 높아졌다. 1958년 장충단 공원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 어린이(왼쪽), 1974년 아침 신문을 배달 중인 신문 배달 소년(가운데), 2013년 신문 배달을 준비 중인 70대 어르신.

한때 고학(苦學) 소년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신문 배달원의 나이가 점점 올라가면서 최씨 같은 '할아버지 배달원'이 늘어나고 있다. 배달 소년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배달 어르신들이 채우는 것이다. 배달 업무를 담당하는 신문 센터 담당자들은 배달 소년은커녕 배달 청년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조선일보 전체 배달원 1만5800명 중 60세 이상은 950명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60대 배달원은 거의 없었고 상당수가 책값이나 학교 기성회비를 벌기 위한 배달 소년들이었다. 서개포센터 박성우 부장은 "이제 배달 소년이란 말은 이 업계에서 쓰이지도 않는다. 우리 센터에 등록된 배달부 약 80명 중에 가장 어린 사람이 서른 살"이라고 말했다. 배달 소년은 왜 사라졌고, 그 자리를 배달 어르신들이 채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자 위한 일은 많지…남자는 실속이 없어"

최씨의 근무 시간은 매일 오전 2~5시, 가장 인적이 드문 시간이다. 나이 든 배달원들은 취객이나 과속차량 같은 새벽의 위험과 자주 맞서야 한다. 최씨는 지난해 여름 신문을 돌리다 탈수 증세로 쓰러졌다. 세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가…. 술 취한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자빠지고 그러더라고. 비 오는 날도 위험하지. 계단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미끄러지거든." 취객들도 문제다. 이들은 종종 배달하려고 분류해둔 신문을 헝클거나 그냥 가져간다. 다짜고짜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할 때도 있다.

배달원 한 명에게 문제가 생기면 임시로 관리 직원이 그 자리를 맡아 신문을 돌린다. 종종 그 '대타(代打)'도 노인이다. 최씨는 지난달 세상을 뜬 같은 센터의 배달원 이흥기씨를 요즘 자주 떠올린다고 했다. 이씨는 새벽 배달을 마치고 '낮일'인 원룸청소를 하러 가던 중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본지 3일자 A11면 참조〉.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성실히 하던 사람이었는데. 목숨이 아까워서…."

"험한 일 하시기 어렵지 않으시냐"고 묻자 최씨는 되물었다. "그럼 다른 일은 뭐가 있지…." 그는 고무 골무가 덧씌워진 면장갑을 낀 손으로 모자를 고쳐 썼다. "남자 오십줄 넘어가면 할 일이 없어. 남자는 실속이 없단 얘기예요. 여자분들은 할 일이 많아졌잖아요. 노인네들 모시는 뭐지…그 간병인 같은 게 더 돈이 되니까 그쪽으로 많이 빠졌어요. 아이를 볼 수도 있고. 그래서인지 점점 여자 배달원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15년째 신문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같은 센터의 김모(67)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취업박람회도 가봤지. 의료기기 판매원 같은 일을 해보려고 이력서 숱하게 내봤지만 나이 많다고 번번이 떨어졌어." 그는 사람 마주칠 일이 없어서 신문 배달이 마음에 든다고도 했다. "아파트 수위 일도 잠깐 해봤지만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하고 온갖 사람들 상대해야 해서 괴롭더라고. 아무도 없는 새벽에 혼자 요령껏 신문 돌리고 집에 딱 들어가서 쉬는 맛도 있어, 하하."

◇'배달 소년의 신화' 역사 속으로

사실 할아버지 배달원들은 신문 센터장들에게 고마운 존재다. 새벽에 잠 안 자면서 신문을 돌리려는 젊은이들이 요즘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르신들이 배달하겠다고 찾아오면 물리칠 이유도, 여유도 없다는 설명이었다. 강남의 한 센터장은 "참을성 없고 술을 자주 마셔 약속을 어기는 젊은 배달원에 비해 아침잠도 없고 성실하게 꾸준히 나오는 어르신들이 낫다"고 말했다. "지금은 20대도 거의 없어요. 고등학생 애들이 가끔 하겠다고 오는데 부모가 다음 날 와서 '됐네요'라면서 휙 데려가요. 그 자리를 어르신들이 채워주니 고맙죠. 이제 어르신들이 없으면 업(業)이 유지가 안 된다니깐요."

신문 배달을 해서 한 푼 두 푼 모으기에 교육비가 급속도로 비싸진 측면도 있다. 지난 10년 동안 대학등록금은 거의 두 배 수준으로 올랐다. 그동안 신문 구독료는 25% 상승했다. 신문 배달비는 구독료와 비례한다. 신문 배달을 해서 받을 수 있는 돈도 많이 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박성우 부장은 "신문 고학을 해서 이제는 공부를 못 한다. 애들한테 들어가는 사교육비 좀 보라"고 말했다. 정주영(전 현대 회장), 김우중(전 대우 회장), 신격호(롯데 회장) 같은 '신문 고학생의 신화'가 나오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신문 배달은 대신 어르신들의 생계나 용돈 벌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전 상이용사인 최씨는 연금을 받는다. 그러나 연금만으로 생활하기에는 빠듯하다. 공휴일(현충일)이었던 6일 새벽에도 어김없이 최씨는 개포주공아파트에 신문을 돌렸다. 손수레를 끌고 214동에서 227동까지 신문을 돌리고 나니 오전 5시.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 준비하고 있다는 '여행 계획'을 설명하며 조금 들뜬 표정을 지었다. "난 어느 날 이거(배달) 딱 끝나면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주문진 가서 고기 사먹고 올 거예요. 부인은 두고, 혼자 훌쩍 내 가고 싶은 데로 떠날 거야. 내가 얼마 남았습니까? (걸어) 다닐 수 있는 게 잘 다녀봐야 2~3년이겠지. 그전까지 신문 배달 열심히 하면서 많이 나다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