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전 세계 패션·디자인계는 한 색채회사의 '발표'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미국의 세계적인 색상회사이자 색채 연구소인 '팬톤(PANTONE)'이 2000년부터 매해 공개하는 '올해의 색(The color of the year)'이다. 지난해 말 팬톤이 2013년의 색으로 선택한 건 에메랄드 그린. 색이 발표되자 인테리어·패션·자동차 업계 등은 에메랄드 그린색 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기도 했다.
팬톤이 올해 설립 50년을 맞았다. 1963년 설립자 로렌스 허버트가 20개 색상에 처음으로 고유의 일련번호를 붙였던 걸 시작으로, 지금은 25만개 디지털 색상을 분류하고 매칭하는 세계적인 전문 회사로 성장했다. 최근 이메일 인터뷰한 론 포트스키(51·Potesky·사진) 팬톤 부사장 겸 글로벌 매니저는 "팬톤의 색은 전 세계 모든 디자이너의 선택 기준"이라며 "색은 인간과 그가 속한 문화를 반영하는 디자인의 총체"라고 했다.
―'올해의 색'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팬톤의 색상 트렌드팀이 '올해의 색'을 정한다. 팬톤과 제휴를 맺은 디자이너들은 전 세계 25개 팀이 넘는데, 이들이 패션·산업·디자인·인테리어·그래픽 분야에서 떠오르는 컬러 트렌드를 관찰하고 여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인 정치·경제적 상황을 측정한다. 예를 들면 올해 에메랄드 그린은 점차 개선되는 글로벌 경제 상황, 환경과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올해는 매우 다른 경제·정치적 흐름이 전개되고 있어 내년의 색을 정하는 게 무척 어려울 것 같다."
―디자인에서 색은 왜 그리 중요한 건가?
"색은 문화적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색에 반응하는 인간의 뇌는 우리가 냄새나 맛에 반응하는 것과 똑같다. 특정한 색에 대한 선호도 우리가 누구인지, 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반영이다. 예를 들면 무채색을 선호하는 도시 사람들은 대체로 동질적인 성향을 보이는 반면, 컬러풀한 도시 사람들은 열정적인 면을 많이 보인다. 반대로 얘기하면 색으로 사람의 심리나 태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가 어려우면 대개 화려한 색이 유행한다고 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비용인데, 실제 사람들은 경기가 어려울 때 밝은 원색 액세서리를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내 외모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방법이다. 또 다른 이유는 '컬러 세러피'의 일종인데, 밝은 색이 신체적·심리적으로 기분을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상당수 패션·디자인 업계가 무채색에 열광하는데, 이유가 뭔가?
"더 많은 사람에게 통하기 때문이다. 검정·흰색·회색 등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군중 속에서 튀지 않으며 다른 색과 매치해도 잘 녹아든다. 섬세해 보이길 원하는 고급 브랜드들엔 매력적인 요소다."
―요즘 색상업계 주된 고민은 뭔가?
"패션·제조업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색상 수요다. 지난 5년간 관찰한 바에 의하면 자동차나 전자제품, 스포츠 의류, 뷰티 등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아주 선명한 네온색, 원색, 메탈색의 조합이 관찰되고 있다. 이건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조합인데, 전에 없던 '비조화의 컬러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현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