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한 학교매점에서 파는 저질 간식들. 과자는 200~600원. 햄버거는 1000원이다.

‘학교 매점은 저질 식품의 온상’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불량식품도 추억’이라며 학창 시절의 낭만을 덧입혀 불량식품을 미화하기도 한다. 과연 학교 매점의 간식은 저질인가.

주간조선은 실태 파악을 위해 지난 5월 22일 서울시의회 김명신 의원(재정경제위원회), 서울시교육청 학교보건담당 최경훈 주무관과 함께 종로구 3개교와 정동의 이화여고의 학교 매점을 방문했다. 이화여고는 지난해부터 서울시가 추진하는 건강 매점을 운영 중이다. 방문한 학교는 모두 9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으로, 서울시의회 측에서 무작위로 선정했다.

현장조사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세 학교에서 파는 간식은 시중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500~600원짜리 싸구려 과자가 대부분이었다. 제조업체와 판매업체는 하나같이 처음 보는 브랜드였고, 원재료 중 10% 이상이 튀김유인 과자들이 많았다. 맛과 질은 어떨까.

기자는 세 학교에서 공통으로 판매하는 500원짜리 과자들과 1000원짜리 햄버거들을 무더기로 사 와서 10여명의 선후배들과 함께 시식을 했다. “MSG 맛이 너무 강하다” “튀김유가 산화된 냄새가 난다” “포장과 브랜드는 다 다른데 맛이 비슷비슷하다”는 의견이었다.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닌 것 같다” “역해서 두 개 이상 못 먹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50대의 한 선배는 “우리 아들이 먹었다는 1000원짜리 햄버거가 이런 거였냐?”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각 학교의 매점을 들여다보자. 혜화동에 있는 A학교는 그래도 사정이 좀 낫다. 500원짜리 싸구려 과자, 1000~1500원짜리 햄버거와 피자 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오리온, 롯데, 빙그레 등 유명 브랜드 품목도 꽤 있다. 혜화동에 있는 B학교에서는 500~600원짜리 싸구려 과자만 팔았고, 명문고로 꼽히는 청운동의 C고등학교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이 브랜드 없는 싸구려 과자와 1000원대의 햄버거만 있었다.

이날 방문한 세 학교가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2010년 서울시 중학교의 매점 운영 실태를 조사한 김명신 서울시의원은 “다른 학교들도 이들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학교 매점 실태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

학교 주변 200m 이내는 ‘그린 푸드 존’으로 지정해 식품의약품안전처, 시·군·구, 소비자단체 등이 관리하고 있지만 정작 학교 매점 관리는 관리 부처의 분산으로 일선 학교에 맡겨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청소년들이 학교 매점에서 파는 저질 식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매점이 있는 학교는 52% 정도(2010년 기준). 중학교의 35%인 110개교, 고등학교의 66%인 248개교에서 학교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저질 식품이 판치다 보니 관리가 어려워 아예 매점을 운영하지 않는 학교가 많다. 이 경우 허기진 청소년들은 생각하지 않는 행정 편의주의적인 행태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왜 학교 매점이 저질 식품의 온상이 됐을까. 관련가들은 ‘최고가 입찰제’라는 제도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했다. 현재 공립학교의 경우 학교 매점 운영권은 최고 입찰가를 제시한 운영자에게 부여된다. 사립학교의 매점 운영 방식도 공립학교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날 방문한 학교 중에는 연간 6600만원의 입찰가를 학교 측에 낸 매점 운영자도 있었다. 비싼 권리금을 내고 운영권을 따낸 운영자는 안전 먹거리는 뒷전이고 이윤 추구에만 급급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는 일단 사업자가 선정된 이후에는 매점 운영에 일일이 간섭할 명분이 없다. 한 학교의 행정실장은 “매점 운영자에게 브랜드 과자를 팔라고 요구했으나 관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신 의원은 “학교 매점 간식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고가 입찰제 관련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영림중학교 친환경 학교매점 ‘여물점’에서 파는 간식들. 우리밀, 유기농 설탕, 국내산 과일로 만든다. 사진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다행스럽게도 곳곳에서 학교 매점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건강 매점 ‘쉬는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쉬는 시간은 농림축산식품부, 한국과수협회 등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이 신선한 과일을 시중가보다 싸게 사 먹을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건강 매점에 선정되면 서울시와 각 구청이 반반씩 매점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한다. 현재 서울국제고, 이화여고, 성동고, 휘경중 등 49개교에서 건강 매점을 운영 중이며 참여 학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성남시는 학교 매점 협동조합을 추진 중이다. 성남시는 지난 4월 23일 경기도교육청,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학교 매점 협동조합 시범사업’ 협약을 체결했다.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안전하고 친환경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취지의 사업이다. 현재 복정고, 용인 기흥고, 흥덕고, 이천 한국도예고, 고양 덕이고, 동두천 한국문화영상고 등 6곳이 시범 학교로 선정됐다.

전라북도 김승환 교육감 역시 학교 매점 협동조합에 관심을 보였다. 김 교육감은 지난 5월 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협동조합 매점은 이윤 추구를 위해 패스트푸드 등을 파는 여느 학교 매점과 달리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먹거리를 제공해 학생들의 건강을 중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검토해볼 것을 주문했다.

한창 자랄 나이의 청소년들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 독점으로 운영되는 매점에서 골라 먹을 선택의 폭은 좁다. 과일을 팔면 과일을 사 먹고, 저질 과자를 팔면 저질 과자를 사 먹는다. 이날 방문한 세 학교 매점에서는 하나같이 ‘난나나 *’을 베스트셀러 품목으로 꼽았다. 설탕 15%, 수입산 채종유 10% 등이 들어간 500원짜리 옥수수 맛 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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