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선미경 기자] 국내 드라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뭘까. 알고 보니 남녀주인공은 배다른 남매였고, 여자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는 원수 같은 집안의 자식이다. 존재조차 몰랐던 쌍둥이 언니가 갑자기 나타나는가 하면, 성공을 위해 모질게 버렸던 딸이 어느새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소위 막장이라 불리는 자극적인 내용의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에도, 가족애를 강조한 휴먼드라마에도, 정통멜로와 로맨틱코미디에도 꼭 있는 것은 '출생의 비밀'이다.
KBS 2TV 주말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MBC 주말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과 '백년의 유산', 그리고 SBS 주말드라마 '원더풀 마마'와 '출생의 비밀'까지 비중이 크든 작든 남녀주인공의 출생에 관한 비밀이 드라마계를 이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MBC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와 SBS 수목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 그리고 KBS 2TV TV소설 '삼생이'에도 출생의 비밀이 등장한다. 따지고 보면 현재 방송 중인 지상파 3사 드라마 중 반 정도가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쓰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다 다르지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형식은 '예전에 어디서 본 것 같은'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출생의 비밀을 푸는 방식은 드라마마다 다르다. 가족애를 보여주기도 하고, 막장이라 불리는 얽히고설킨 전개를 더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또 극에 양념 치듯 사용하거나 반전 카드로 출생의 비밀을 꺼내기도 한다. '최고다 이순신'이나 '출생의 비밀'은 드라마의 큰 줄기에 출생에 대한 비밀을 심어놨고, '남자가 사랑할 때'와 '내 연애의 모든 것', '백년의 유산'은 반전으로 출생의 비밀 카드를 썼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 자체가 너무나 진부한 소재가 돼버렸기 때문에 반전 카드로 쓰였다고 해도 예전만큼 큰 힘을 갖진 못한다. 이미 출생의 비밀 설정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시청자는 조금만 기미가 보이면 의심하고, 결국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을 때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아무리 특별한 소재의 드라마였다고 해도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진부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특히 주말드라마는 더 심하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송됐던 MBC 주말드라마 '메이퀸'과 SBS 주말드라마 '다섯 손가락'에도 출생의 비밀이 존재했고, 공교롭게도 현재 방송 중인 지상파 3사 주말드라마에는 모두 '출생의 비밀' 코드가 들어있다. 누구는 아이를 바꿔치기 했고 누구는 아이를 빼앗았으며, 또 누구는 존재조차도 몰랐던 쌍둥이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마치 주말드라마를 풀어갈 소재가 이것밖에 없는 듯 각 작품마다 출생의 비밀 코드를 하나씩 심어놓고, 알려줄듯 말듯 시청자들과 줄다리기를 한다. 시청자들도 당연하게 주말드라마에는 언젠가 밝혀질 출생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 방송 관계자는 "주말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은 식상한 소재지만 시청률에는 좋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고다 이순신'은 출생에 대한 비밀이 본격적으로 밝혀지며 시청률이 올랐고, '백년의 유산'도 양춘희(전인화 분)와 이세윤(이정진 분)의 관계가 밝혀지며 더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