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우리나라에서 치르는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이 취소된 데 이어, 6월에는 SAT 생물 시험 및 일부 수험생의 응시가 취소됐다.
SAT를 출제·관리하는 기관인 미국 ETS의 레이 니코시아(Nicosia·사진) 시험윤리실 대표는 본지와 단독 이메일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한국에서 SAT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시험장을 유지할 계획이지만, 시험문제가 유출됐다는 증거가 나오면 개별 시험은 또 취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몇 차례 반복됐듯 앞으로도 갑작스럽게 시험이 취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뉴욕타임스지는 ETS의 최고 보안 책임자인 그를 가리켜 "ETS의 우두머리 경찰(top cop)"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왜 일이 계속 커지나
이번 SAT 파동은 지난 2월 한국 검찰이 서울 시내 SAT 학원 8곳을 급습해 시험문제 꾸러미를 압수하면서 시작됐다. 한국 수능과 미국 SAT가 너무도 달라 사태는 점점 커졌다. 한국 수능은 매년 새롭게 문제를 내고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EBS 강사가 문제풀이를 해준다. 반면 SAT는 수많은 문항을 문제은행에 넣어 놓고 시험 때마다 돌려가면서 낸다. 그러니 시험 끝나고 무슨 문제가 나왔다고 얘기하는 건 엄밀히 말해 불법이다.
이에 대해 니코시아 대표는 "학생들이 SAT 시험을 친 뒤 일반적인 얘기 정도를 나누는 건 우리도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얘기다. 니코시아 대표는 "학생들이 문제 내용·에세이 주제·시험 장소 등 구체적 내용을 구두·이메일·텍스트 메시지 등 어떤 방식으로건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전부 부정"이라고 말했다. SAT 치르기 전에 학생들이 서명하는 '동의서'에 이 같은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원 산업이 문제
니코시아 대표는 또 "이번 사태의 핵심엔 한국 학생들이 아니라 한국 학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학원들 때문에 5~6월 한국에서 치러질 SAT를 잇달아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칼리지보드(SAT 시험을 주관하는 미국 민간기관)가 허가하지 않은 시험 자료를 보유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는 전부 불법"이라고 했다. 한국 학원가에 도는 이른바 '기출문제'는 대부분 불법이란 뜻이다.
이어 니코시아 대표는 "한국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학원의 영향에 노출되는데, 학원들은 돈벌이를 위해 불법으로 SAT 문제를 빼돌려 축적해왔다. 한국 검찰이 바로 그런 자료를 압수해 우리에게 넘겼다"고 했다. 그 자료를 받아보니 SAT의 신뢰성을 지키려면 한국에서 5월 시험과 6월 생물 시험을 취소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이 끝이 아니다
문제는 잘못한 사람 몇 명이 죗값을 무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몇몇 한국 학원들의 부정행위로 인해 미국 SAT 시험이 수십년간 구축해온 문제은행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점이다.
가령 이번에 한국 검찰이 압수한 문제 꾸러미가 도대체 어느 정도 분량이고, 이것은 전체 SAT 문제은행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할까? 니코시아 대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보안·정책상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검찰이 넘긴 자료에는 작년부터 올 1월까지의 SAT 시험문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ETS는 기출문제 자체가 부정행위라고 하는데, 이미 그 기출문제를 보고 SAT 시험을 치른 뒤 미국 대학에 합격한 학생도 상당수 있을지 모른다.
이에 대해 니코시아 대표는 "현재로선 증거가 없지만, 시험 점수가 부정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바로 점수를 취소하고 해당 대학에도 통보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부정행위를 주기적으로 조사하며, 부정행위를 가려내는 특허 기술이 여럿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