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혁 기자

새 정부 들어 지하경제 양성화나 '갑을 관계' 대책이 강구되면서 경제 부처 관료나 기업 관계자, 언론들은 종종 부정적 의미로 '뇌물성 환불'을 지칭하는 말로 '리베이트(rebat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리베이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대표적인 영어 오용(誤用) 사례다. 리베이트란 단지 상품 가격의 일부를 판매 후 돌려주는 것으로 가치중립적 표현이다. 재미 저술가 조화유씨는 리베이트의 정확한 영어 의미가 "상품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나중에 쿠폰을 제출하는 소비자에게 상품 가격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거둔 세금의 일부를 경기부양 차원에서 납세자에게 되돌려주는 것도 리베이트라고 한다"고 했다. 즉 리베이트는 합법적이고 긍정적 의미의 환불이라는 설명이다. 국내 미국 로펌에 근무하는 한 미국 변호사는 "미국 법에서 리베이트가 '뇌물'이란 뜻으로 쓰인 사례를 들어본 바 없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에서 쓰는 뇌물이란 의미의 '리베이트'를 쓰려면 '킥백(kickback)'이라고 해야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더러운 돈이므로 발끝으로 슬쩍 밀어준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메리엄웹스터 영어사전도 킥백에 대해 "금액의 일부를 담합이나 위압에 의해 돌려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리베이트'를 "뇌물이란 뜻으로 흔히 쓴다"고 정의해 놓았다. 국가 기관인 검찰은 '리베이트 합동수사본부'라는 기구까지 만들었다. 외국 사람들이 본다면 대체 무엇을 조사한다는 얘기인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킥백이라는 영어 표현이 낯설다면 '뒷돈', '검은돈' 등 우리말로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

국적 없는 영어 표현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육체적 접촉을 의미하는 '스킨십'도 영어사전에 없는 일본식 단어지만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구직자의 학력과 경력을 뜻하는 '스펙'도 정작 영미권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이다. 현지인들은 기계나 상품의 제원을 가리키는 말로 복수형 'specs'를 쓰지만 학력이나 경력의 의미로 쓰지 않는다.

새로운 현상이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영어를 빌려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정확하게 써야 한다. 한번 잘못된 표현이 자리 잡으면 이를 다시 바로잡기는 매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언론이 앞장서 잘못된 외래어의 오남용을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