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든 고무 오리

"조류독감(AI)이 너무 강력했나."

지난 2일부터 홍콩 빅토리아 항구를 장식했던 높이 16.5미터짜리 대형 고무 오리의 갑작스런 '죽음'에 홍콩과 중국 여론이 들썩이고 있다. 이 초대형 오리는 원래 네덜란드 설치 예술가 플로렌테인 호프만의 작품. 2007년 제작돼 총 9개국 13개 도시를 돌고 있는 중이다. 홍콩으로 와서 다음달 9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던 이 오리가 15일 갑자기 쪼그라들자 실망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가디언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이 보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고무 오리 전시를 기획한 워터프론트 쇼핑몰 하버시티는 지난 14일 밤 페이스북을 통해 비보를 전했다. "특별 공지입니다. 고무 오리에게 휴식이 좀 필요합니다. 빨리 몸 상태를 체크할게요. 금방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15일 낮 고무 오리에서 바람이 빠지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목격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전하며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중국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에는 "조류독감(AI)이 너무 강력했나", "아시아 물이 너무 더러웠던 모양이다"는 등의 게시물이 올라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너무 오래 떠 있었다"며 "일주일 연속으로 일하면서 과로사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올라왔다. WSJ는 "전시 주관사가 최근 오리가 계속해서 강한 물결에 노출돼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지난 2일 고무 오리가 작은 끌배에 이끌려 빅토리아 항구에 등장할 때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펼쳐졌다.

오리는 홍콩 경찰 악대와 함께 30분가량 항구를 돌며 행진을 벌였고, 오리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축하 공연을 선보였다. 이 일대에 교통 대란이 벌어진 것은 물론이다. 1880년 이래 빅토리아 항구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 온 유람선 '스타 페리'호는 이 오리 옆에 정박했다.

전시가 진행된 약 2주 사이 수십만 명이 빅토리아 항구를 찾아 오리를 감상했다. 고무 오리 이벤트를 활용한 호텔과 레스토랑의 특별 패키지도 나왔다. 마르코폴로 호텔은 '고무 오리 패키지'란 이름으로, 고무 오리가 잘 보이는 방에 여러 고무 오리 기념품을 함께 증정해 하루에 300달러의 숙박료를 받는 상품을 내놨다. 한 레스토랑은 고무 오리 모양 요리를 만들어 팔고, 1000조각의 노란 빵으로 오리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고 WSJ는 전했다.

산업 효과도 컸다. 홍콩의 고무 오리 제작업체 이데바(Edeva)는 연간 100만개의 고무 오리를 만드는데, 이달 2일 이후 고무 오리와 관련한 문의가 60% 늘었다고 WSJ는 전했다.

세계 장난감 제조의 심장으로 불리는 홍콩은 고무 오리와의 특별한 추억으로 유명한 도시다. 1992년 홍콩에서 1만개의 고무 오리를 싣고 출항한 한 화물선이 풍랑을 만나 태평양 한가운데에 오리를 빠뜨렸다. 이 장난감 오리들은 10년 이상 바다를 떠돌며 알래스카 등지에서 발견돼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WSJ는 전했다.

오리가 언제쯤 제 모습을 되찾을지는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 WSJ는 "홍콩 주민들은 내달 9일 오리와의 작별을 위해 미리 갖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