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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발명 이전에 태어나 인간의 달 착륙 다음 해까지 장수한 사람. 그 긴 생애를 통해 네 번 결혼하고 틈틈이 혼외정사를 즐긴 바람둥이. 하원의원직에 세 번 출마하여 모두 낙선했으나 귀족 신분으로 상원의원직을 세습한 영국의 백작.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한 번씩 대학에서 면직된 교수. 반전운동으로 두 차례 투옥되었던 평화주의자. 케임브리지 대학의 비밀 클럽 '사도들'의 회원. 대안학교 교장. 노벨문학상 수상자. 사회비평가. 반핵운동의 기수. 비트겐슈타인의 스승. 촘스키의 정신적 멘토.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이 모든 표현의 주인공이다.

오늘날 철학자들의 세계에서 러셀이라는 이름은 칸트가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고 평가한 학문인 논리학의 역사를 다시 쓴 논리학자이자 영국 경험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분석철학의 패러다임을 제공한 철학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것은 러셀에 대한 학문적 평가로는 정확한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파란만장했던 삶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위의 표현 없이 러셀이 진정 누구였는지를 아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는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 인류 고통에 대한 연민이라는 세 가지 열정에 따라 살았다는 러셀 자신의 고백에 의해 잘 뒷받침된다.

사랑에 대한 갈망은 네 번의 결혼과 자유분방한 연애 행각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때 러셀은 두 번째 부인 도라 블랙과 결혼 관계하에서 자신의 애인, 도라의 애인, 자신과 도라의 두 자녀, 그리고 도라가 애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와 함께 한집에서 살기도 했다. 이는 오늘날 기준에서 볼 때도 결코 평범하지 않지만, 러셀의 신념대로라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그에게 개인의 행복은 다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한 것이었고, 사회 제도나 타인의 이목은 행복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이런 신념을 담은 '결혼과 도덕'은 뉴욕시립대학에 임용된 러셀이 부도덕하고 음탕한 호색한으로 낙인찍혀 부임도 하기 전에 면직되는 데 영향을 줬다. 그러나 10년 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대표작으로 언급된 것도 '결혼과 도덕'이었다.

지식 탐구에 대한 러셀의 열정은 언제나 확실한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신의 존재와 제도화된 종교에 회의적이었던 그는 확실한 지식에 대해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이성적으로 접근했다. 이는 결국 새로운 논리학의 체계를 발전시켜서 논리학으로 수학을 설명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러한 방법을 바탕으로 세계에 대한 확실한 지식에 도달하려는 시도로 구체화되었다. 이런 작업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1914년까지 러셀이 이루어낸 업적에서 확인된다.

많은 젊은이가 희생되고 세상이 파괴되는 끔찍한 전쟁은 러셀이 논리학과 같은 추상적인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물론 전쟁 이전에도 러셀은 상아탑에 안주하는 지식인은 아니었다. 평생 사회주의의 이상을 지녔던 그는 대학 졸업 후 독일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썼고, 노동당원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07년에는 하원의원직에 도전할 정도로 사회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다가 전쟁을 겪으면서 현실 세상의 고통이 책상 앞에 앉아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러셀의 삶을 지배한 세 번째 열정인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전쟁을 거치면서 현실 참여와 실천으로 구현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면직당한 후 그는 군 징집 반대운동을 벌였고, 이는 정부에 의한 감시와 투옥으로 귀결됐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억압에 굴하지 않고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저하지도 않았다. 러셀은 특히 2차 대전 이후 강대국의 핵무장을 매우 우려했는데, 애초의 중립적 시각에서 벗어나 미국을 세계 평화를 가로막는 제국주의라고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또 영국의 핵무장에 반대해 시민불복종운동으로 저항하다 89세의 나이에 투옥되기도 했다.

러셀은 자신의 삶을 지배한 세 가지 열정을 솔직하게 행동으로 옮겼고, 그 결과 위대한 지성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단순하지만 매우 강렬했던 이 열정을 따른 자신의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자평하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겠다"고 말했다. 옳다고 배운 것을 신념에 따라 행동에 옮기는 것. 오늘날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덕목은 우리가 러셀로부터 배워야 할 제1의 가치다.

[버트런드 러셀을 더 알고 싶다면…]

에세이 작가로서 만나는 '행복의 정복', 현실의 고민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러셀이 상당한 분량의 글을 쓰지 않고 지나간 날이 혹여 단 하루라도 있었을까. 러셀은 무척 많은 글을 쏟아낸 문장가이자 다작의 작가였다.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만 100권 가까이 된다. 게다가 그가 글로 담아낸 주제는 전문성을 띤 것부터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div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padding: 0 5px 0 0;"> <a href="http://www.yes24.com/24/goods/1447038?CategoryNumber=001001017001007001&pid=106710" target="_blank" title="새창열기"><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buy_0528.gif" width="60" height="20" border="0" alt="구매하기"></a></span><

에세이 작가로서 러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행복의 정복'(사회평론)을 읽는 것부터 출발해도 좋을 것이다. 사회, 정치, 종교, 교육 등 현실 사회의 문제에 대한 러셀의 생각에 관심이 있다면,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비아북)가 훌륭한 선택이다.

'철학의 문제들'(이학사)은 형이상학과 지식의 문제에 대해 러셀이 가졌던 물음과 해답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명료한 문체를 통해 전문적인 철학자로서의 러셀을 만날 수 있는 텍스트다. 필자의 졸저 '버트런드 러셀의 삶과 철학'(서광사)은 대학 교양 수준에서 이해 가능하도록 러셀의 생애와 철학을 소개하는 해설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