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원으로부터 소주를 한 잔씩 받아 마시고/ 무수한 폭탄주 공격을 거치고도 살아남았다/ 그때는 그도 나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없다/ 따뜻하고 유쾌한 추억 몇 장과/ 세상에서 가장 큰 무덤을 남기고."(시 '박영석 대장' 중에서)

산문집 '술통'으로도 기억되는 시인 장승욱(1961~2012·사진)은 글만큼 술을 사랑했다. 병상에서 시 '박영석 대장'을 쓸 때 그는 한 달 뒤 자신이 맞게 될 황망한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동기들은 백방으로 수소문해 장승욱이 남긴 시를 그러모았고 생전에 그가 일했던 출판사가 시집을 발간했다. 유고 시집의 제목은 '장승욱 시'(지식을만드는지식)다. 장승욱이 '술통'을 내며 쓴 자기소개를 옮기면 '우신고등학교와 연세대 국문과를 마치고 조선일보, SBS에서 기자로 일하며 먹고살았다. 이후로는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 솔직히 말하면 백수로 산 날이 훨씬 많다.'

6일 오후 7시 연세대 한경관에서는 저자가 없는 가운데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국어사전을 베고 잠들다'는 책을 낼 만큼 우리말 전문가였던 장승욱이 남긴 시 '이사할 때 보니'의 전문은 이렇다. "사전만 쉰세 권/ 할 말 없다/ 할 줄 아는 말 물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