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 정유진 기자] 미국에서 지난 3월 22일 개봉해 애니메이션계의 ‘아바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크루즈 패밀리’에는 두 명의 감독(크리스 샌더스, 커크 드 미코) 외에도 또 다른 공로자가 있다. 애니메이션 ‘슈렉’, ‘쿵푸팬더’ 시리즈와 ‘드래곤 길들이기’의 촬영 및 레이아웃 감독을 담당했던 한국인 전용덕 촬영감독이다.
전용덕 촬영감독은 3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크루즈 패밀리’의 색다른 촬영기법과 꿈의 공장 드림웍스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애니메이터로서 느끼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풀어 놨다. 16년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활동했던 만큼 그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 현실에 대해 조심스럽게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의견과 대안을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창의성이나 능력, 애니메이션 기술력이 할리우드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창의적인 작품들이 할리우드에서 나오고 한국에서 못 나오느냐고 묻는다면 투자를 한 후 4년 이상의 오랜 시간 동안 결과를 지켜봐줄 수 있는 인내심과 끈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본다. 제작 기간만 봤을 때 한국에서는 1년 반 만에도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반면 미국에서는 최소 4년은 걸린다”
전 감독이 애니메이션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것은 ‘공감’이었다. 그는 “애니메이션이 실패한다면 이유는 딱 하나다. 관객들이 공감을 못하면 실패한다”며 오랜 기간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테스트를 하는 미국식 시스템에 대해 소개했다.
“(할리우드에서는) 3-4년 동안 계속 테스트 스크리닝을 한다. 이 부분을 관객이 공감 못 한다고 하면 그 부분의 유머를 빼는 등 수정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애니메니션이 (흥행에)실패할 확률이 굉장히 적다. 제작기간을 길게 잡아 성공할 요소만 남긴다. 한국에도 관객들의 공감을 높일 시스템이 생기면 글로벌한 작품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전 감독은 자신이 담당한 애니메이션들에 동양적 혹은 한국적 요소를 접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애니메이터로도 유명하다. ‘쿵푸펜더’에서는 동양적인 여백의 미를 살리는 데 일조했고, ‘슈렉’에서는 한국의 부채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영화에도 한국적인 요소가 있냐는 질문에 “알다시피 한국 문화를 넣을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는 영화다”며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자신이 시도했던 바를 알렸다.
“영화 속 가부장 제도가 한국 정서랑 굉장히 맞았다. 사실 아이디어 회의 때 짚신을 넣으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주인공이 신발을 신고 걸어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닷가에서 나온 물건들을 주제로 잡게 되는 바람에 짚신이 탈락했다. 영화에선 물고기와 불가사리, 수세미로 신발을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16년 간 미국에서 살았지만, 그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을 놓지 않았다. 특히 한국 영화의 세계적인 성공과 감독들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서는 “이런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한국 애니메이션도 나올 것”라며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지금도 한국 영화가 성공하는 것에 자부심 느낀다. 특히 박찬욱 감독님의 ‘올드보이’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회사의 많은 분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었느냐며 나에게 다른 작품 뭐 있냐고 물어봐서 인터넷에 검색해서 알려주고는 했다. 그 때 이후로 한국 영화에 대한 시각이 확 변하게 된 것 같다. 한국에서 글로벌한 작품이 탄생해서 한국 영화가 인정을 받은 만큼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도 최대한 빨리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이런 스토리 능력이 있는데 틀만 다른 애니메이션은 왜 못할까. 언젠가는 애니메이션에서도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가 나왔을 때 드림웍스에서 자체 상영을 했었다. 그 때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재미없다,라는 반응과 비주얼적으로 저렇게 환상적으로 만들 수 있구나, 우리는 왜 감각적으로 못 할까, 라는 반응이었다”며 한국 애니메이션 기술에 대한 드림웍스의 관심에 대해 귀띔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소재의 선택에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변명이 아닐까”라며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에 대해 역설했다.
“미국은 역사가 200년 밖에 안됐다. 한국에 비하면 코흘리개 같은 나라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드는 작품들을 보면 세계를 휩쓸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소재 이용에 거침없는 것이다. (미국에는) 작품에 유용하면 무조건 개발해서 세계인들이 공감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있다. 한국은 미국보다 역사도 오래되고, 전설도 많은데. 개발해 낼 수 있는 인력이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걸 개발하는 인재를 키웠으면 좋겠다. 제작에만 신경 쓰지 말고, 연출자나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확장 많이 됐으면 좋겠다. 봉급도 많이 주고”
전 감독은 최근 본 한국 영화가 ‘광해’와 ‘7번방의 선물’이라 전했다.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본 ‘7번방의 선물’은 너무 울어서 승무원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고.
"'7번방의 선물'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대박이 날 것 같다. 코미디적인 요소를 많이 넣으면 될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저런 스토리면 세계적으로도 먹어 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전용덕 촬영감독의 꿈은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그는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며 돌아오기 전에 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한 감독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내가 잘 하는 분야가 뭔지 제대로 목표의식을 갖고 시작하되, 그것을 정하기 전에는 많은 경험을 쌓아 스토리텔링 능력을 기르라'며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전했다.
한편 ‘크루즈 패밀리’는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평생 마을 밖을 떠나 본 적이 없는 겁쟁이 가족이 신세계를 발견한 후 벌이는 모험을 그린 작품.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뮬란’의 스토리 각색을 담당하고, ‘릴로와 스티치’, ‘드래곤 길들이기’의 각본과 연출을 모두 담당하며 드림웍스의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크리스 샌더스 감독과 워너 브라더스, 유니버셜 스튜디오, 디즈니, 20세기 폭스 등 세계 유수 영화사에서 제작 및 각본을 맡았던 커크 드 미코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이번 영화에 사용된 촬영 기법의 핵심은 ‘다큐멘터리 기법’이다. 현장감과 생동감, 사실감을 전하기 위해 인간의 시각과 가장 비슷한 35-55mm의 표준 렌즈를 사용했으며, 단 한 컷도 정지된 화면 없이 핸드핼드 카메라의 흔들리는 느낌을 살렸다. 조명 역시 HDR로 실제 하늘을 촬영한 것을 컴퓨터 세트에 불러들여 조명 소스로 사용했다. 때문에 조명이 내려오고 반사되는 느낌이 실제와 같이 재연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