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질에서 봉투 접기, 그리고 타이어 정돈. 이 단어들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면은 방송 '생활의 달인'이다. 생계를 위한 단순반복의 묘기 대행진이자 평범한 사람의 노동현장이다. 살기 위해 쏟았을 땀을 생각하면 경건해진다. 그런데 묘기 외에 달인의 또 다른 공통점은 표정이 밝다는 사실이다. 바로 진짜 을의 표정이다.
강의를 하다 보면 다양한 수강생을 만난다. 처음 대면하는 순간, 평소 짓는 표정이 얼굴에 나타난다. 그런데 개중에는 '못'이 꼭 하나쯤 있다. 얼굴이란 못이다. 무뚝뚝하고, 구겨진 인상이다. 말을 하면 부딪쳐 튕겨 나올 듯한 얼굴. 가끔은 강사를 괴롭게 하는 그 얼굴의 근육을 잡아당겨 펴주고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을로 생존할 수 없는 표정이기에 그렇다.
이번에 논란이 된 사건의 회사 임원과 여승무원이 처음 대면했을 때 표정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임원은 인자했을까. 여승무원은 친절했을까. 만약 고객을 대하는 여승무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면, 어이없게도 사건의 주범은 표정일 수도 있겠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말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식으로 말하자면, 표정 하나에서 우리는 상대에 대한 호감을 결정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굴 표정이 떨떠름하고 무뚝뚝하다. 살기 팍팍하니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표정에서 한 사람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 이 과장법이 거슬린다면,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친절하지 않은 표정으로는 을로 생존하기 어렵다.' 을이 가져야 할 자세의 기본은 오픈 마인드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보며 드는 의문 중의 하나는 고객을 대할 때 강조하는 '서빙(serving) 마인드'가 정작 기업 내부에는 부재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대기업이나 공직을 나와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일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갑 마인드' 때문이다. 갑으로 산 사람들, 을로 제대로 살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나오면 가장 문제가 되는 요인이다. 돈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허리를 숙이고 웃는 표정을 짓는 일이다. 바로 서빙 마인드다.
을에게 필요한 또 다른 조건은 혁신 마인드다. 사실 직장인은 모두 을이다. 맡은 업무가 갑 쪽이든 을 쪽이든 을의 신분에는 변함이 없다. '육일약국 갑시다'의 저자 김성호 대표에게 들은 말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거지 훈련을 하는 이가 있고, CEO훈련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거지 훈련은 이런 것입니다. 급여를 100만원 받는다고 합시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이들이 받는 급여의 10만원쯤은 남의 몫입니다. 쉽게 말해 동냥을 해서 받은 돈입니다. 그렇게 거지 짓을 몇 년 하면, 진짜 거지가 돼버립니다. 그런 사람은 직장을 나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늘 '일신(日新)'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참고로 작가 김훈의 좌우명은 '필(必)일신'이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필자는 이 단어를 벤치마킹해 늘 '필(筆)일신'하고 있다. 전문 기술이 있는 '생활의 달인'은 번듯한 직장인보다 더 오래 생존한다. 그들은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퇴직 후에도 현역으로 근무할 수 있다. 여기, 을로 생존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팁이 있다. 앞으로 사람을 만날 때나 회의를 할 때(특히 강의를 들을 때!), 말하는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라. 공감의 표시다. 가끔 맞장구를 쳐라. 말로 추임새를 넣는 행위는 호감의 표현이다. 종종 메모를 해라. 이는 존경의 신호이자 미래의 자산을 축적하는 일이다.
을로 살고 있을 때 진짜 을로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 웃는 표정을 지으려면 얼마나 어색한가. 미리 웃어라. 웃는 표정 하나 짓는 일, 적어도 3년은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