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년 만에 발표한 가왕의 정규 19집. 뭔가 위대한 결과물이 탄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은 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바운스’ 열풍,
10대들이 더 좋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는 수줍은 고백. ‘바운스’는 풋내 나는 20대 청춘이 아닌 63세 가왕 조용필이 부르는 러브송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장의 언밸런스한 노래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세련된 음악성을 갖춰 완벽하다는 것이 대중과 전문가의 공통된 평가와 반응이다. 봄에 어울리는 경쾌한 멜로디에 중독성 있는 가사까지, 대중성도 제대로 갖췄다.
'바운스' 음원이 공개된 것은 지난 4월 16일. 공개 하루 만에 엠넷, 네이버뮤직 등 국내 주요 음원차트 9개를 '올 킬'시키고 말았다. 그저 가왕의 이름값이라고 보기엔 이 행보가 음악적으로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 10~30대 위주의 음원 사이트에서, 별다른 홍보나 마케팅 없이 음악성 하나만으로 스스로 돌풍을 만들어버린 결과라는 것. 이유는 간단하다. '바운스'라는 음악이 젊은 세대의 입맛에도 꼭 맞았다는 말이다.
기존의 팬덤이 아닌, 조용필이 누군지 모르는 세대의 반응은 놀라운 수준이다. 데뷔 45년 차 가수에 대한 편견이나 존경심이 제로인 그들이 '바운스'라는 노래 자체에 공감을 하고 있다.
아이돌 가수들이 주도해온 음원차트에서 60세가 넘은 가수의 신곡이 1위를 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중요한 터닝포인트라는 거대한 해석까지 붙는다. 가요 관계자들도, 조용필 본인도 이 정도의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45년 음악인생에서 음원차트 1위라는 기록은 처음 있는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앨범 전체를 공개한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선공개곡이라는 점이다. ‘바운스’는 음악성과 대중성이 조화를 잘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렉트릭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앞세우고 드럼으로 뒤를 받치는 전형적인 록 편곡으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30여 개의 코러스 트랙과 일렉트릭 기타가 합류하는 후렴구의 중독성이 대단하다. 아직 진짜 카드는 꺼내놓지도 않은 상태지만 이 곡 하나로 사람들은 이미
스타들의 극찬 릴레이
대중뿐 아니라 후배 뮤지션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아이돌 후배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빅뱅의 태양은 ‘바운스’의 미리듣기 음원이 공개된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와우 조용필 선배님! 미리듣기 음원이 이렇게 좋을 수가. 심장이 bounce~ bounce~ 두근대 들킬까 겁나”라며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샤이니의 종현은 노래를 듣고 있는 화면 인증샷과 함께 “말이 필요 없지요. 들어보세요. 존경해요 선생님!!”이라며, 2AM의 진운은 “조용필 선생님 새 앨범 들어보세요. 아니 그냥 들으세요ㅜㅜㅜ”라며 자신들의 SNS에 ‘바운스’의 감동을 전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팬들에게 주목도를 높였고, 10대들이 움직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중견 뮤지션들은, 특히 조용필과 마찬가지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후배들은 아티스트로서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된 듯한 반응이 많았다. 윤종신은 “형님께서 오셨습니다”라는 멘트로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김동률은 “조용필? 선배의 이 한 곡이 음악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맘으로 벅차 할 것이라 생각된다”며 음악적인 존경심을 드러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아 새 앨범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이문세는 한 인터뷰에서 ‘바운스’는 충격이었다. 형님이 다시 20대로 돌아가신 듯하다. 아티스트의 나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조용필 선배가 증명했다. 그 연륜에서 2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힘, 에너지가 세상이 감탄하고 존경할 만한 최고의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 한창 새 앨범 작업 중인 그는 “조용필 선배의 음악을 듣고 앨범 작업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후배로서 선배를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렇게 조용필은 대중과 후배 뮤지션들까지 모두를 아우르며 흡수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4.24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멘트도 눈에 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30년 전 조용필 형님의 ‘못찾겠다 꾀꼬리’ LP판을 샀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신곡 ‘바운스’가 각종 음원차트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소식에 뿌듯합니다”라며 “저랑 띠 동갑인 용필이 형님, 여전히 달리시는데. 우리 50대는 청춘, 같이 달립시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도전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이번 앨범을 논할 때 파격을 놓칠 수 없다. 도전이라는 단어와 변화라는 단어도 중요한 키워드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충분한 자리, 조용필은 가왕이라는 타이틀과는 별도로 스스로 혁신적으로 변했다. 싱어송라이터인 그는 이번 앨범 10곡 중 9곡을 다른 사람의 곡으로 채웠다.
조용필 음반 사상 첫 피처링 가수도 등장한다. 주인공은 힙합가수 버벌진트다. 앨범 발매와 함께 갖는 기념 쇼케이스는 가수 생활 4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공연 실황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 자우림, 박정현, 국카스텐, 버벌진트, 팬텀, 이디오테잎 등 후배 뮤지션들도 함께할 예정이다. 이것 역시 흔한 일은 아니다.
쇼케이스의 방식 또한 젊은 친구들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한 곡을 먼저 공개하고 앨범을 바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노출하면서 궁금증 유발을 극대화한 다음 마지막에 다 보여주는 식이다. ‘바운스’에 이어 공개된 타이틀곡 ‘헬로’의 뮤직비디오는 얼른 완성본을 보고 싶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이런 가왕의 모든 행보에는 현역 가수들과 제대로 붙어보겠다는 심산이 들어 있다. 이것은 노욕도 아니요, 그저 현재진행형인 가수 활동에 충실한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
최고의 공연
19번째 정규앨범 의 선 공개곡인 ‘바운스’로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가왕 조용필은 차분하게 공연준비를 하고 있다. 4월 23일 쇼케이스가 준비되어 있고 5월 31일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상반기에만 대전, 의정부, 진주, 대구 등을 돌며 전국 콘서트투어를 이어간다.최고의 무대와 음향시설을 고집하는 그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식으로 무대를 꾸며왔다. 음악과 공연에 관한 한 그는 단지 가수가 아니라 감독이다.
새로운 역사를 직접 써버린 가왕의 반응이 궁금하다. 당연한 수순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매체에서 그에게 대화를 시도하지만, 4월 23일 프리미어 쇼케이스 외에는 어떤 행보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소속사를 통해서 ‘바운스’ 열풍에 대한 가왕의 소감은 전해왔다. 들뜨거나 흥분하지 않고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소식. 기뻐한다기보다는 스태프들에게 고생했다, 보람 있었다는 말을 전한다고 한다. 오래도록 음악을 한 전설 같은 존재인지라, 곡 하나에 대한 평가에 일희일비하지는 않는다고. 10년 만에 돌아온 가왕 조용필. 그는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음악 하나를 두고 세대갈등에 대한 담론이 오가고, 문화적인 접점 마련의 필요성이 떠오르고 있지만 조용필은 그저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나는 현재진행형이에요. 한창 음악하고 있는 사람한테 왜 자꾸 40년을 물어봐. 40년은 숫자일 뿐이지.”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데뷔 40주년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이번엔 데뷔 45주년, 그는 여전히 ‘한창 음악 하고 있는 사람’이다.
All about 조용필
월드스타 싸이를 뛰어넘는 가왕 조용필의 뜨겁고 폭발적인 행보. 이 노장의 신드롬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공부를 조금 해두면 도움이 되겠다. 45년이라는 그의 음악 인생을 정리했다.
데뷔 그는 원래 기타리스트였다. 미8군에서 비롯된 밤무대가 유행하던 시절, 뮤지션들은 그곳에서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고 그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촌스러운 드라마의 한 장면 같지만, 어느 날 갑자기 보컬이 건강상의 문제로 자리를 비웠고 조용필이 대타로 무대에 올랐다. 그가 불렀던 곡은 앨 그린의 블루스 명곡 ‘Lead me on’. 관객들의 반응은 대박이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보컬리스트의 삶을 시작했다.
1971년 3인조 음악그룹 ‘김트리오’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록 음악으로 전환하였으며 1974년쯤에서야 자신의 이름을 딴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다. 26세가 되던 1975년에 솔로로 전향하여 발표한 트로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처음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정규 1집,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1980년은 지금 돌이켜보면 ‘시작’의 시간이지만, 그 당시에는 ‘다시’의 시간이었다. 그는 미8군 밤무대 시절 대마초를 흡입했던 일로 옥고를 치르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요계를 은퇴할 생각까지 했다. 대마초 파동에 휘말린 것이 1976년, 이후 4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그는 해금조치 이후 지구레코드 전속으로 1979년에 공식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정규 1집 타이틀곡 ‘창밖의 여자’를 발표했다. 이 곡이 수록된 조용필의 정규 1집은 대한민국 최초로 1백만 장 이상 팔린 단일 음반이다. 그 당시 한국 가요계에는 그렇게 음반을 많이 판 가수가 없었다. 그는 단독으로 음악작업을 하면서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였고 1980년대 대중음악의 영웅으로 탄생했다.
1986년, 일본 진출 홀로 한국 가요사의 한 획을 긋던 조용필은 1986년에 일본으로 진출했다. 그 당시 발매한 앨범 이 1백만 장 이상 판매하는 대성과를 거둬 그해 골든디스크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장르를 섭렵한 가수로 통하지만 일본에서 조용필은 엔카의 황제로 불린다.
1994년, 최초의 1천만 장 음반판매 올림픽이 열린 1988년 그는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가 수록된 10집 앨범을 발매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1994년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음반판매량 1천만 장을 기록했다. 일본 음반판매량 역시 공식적으로 6백만 장이 넘어 한류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두 번의 결혼, 그리고 이별 현재 혼자 살고 있는 그는 두 번의 결혼 경험이 있다. 첫 번째 결혼 상대는 1984년 미술교사였던 박지숙.
히트곡 ‘모나리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남양주 광릉수목원 근처에 있는 봉선사에서 기자 몇 명이 보는 앞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유명한 산사 극비결혼 현장이다. 5년 만에 이혼한 그는 1994년 재미교포 안진현과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결혼 9년 차던 2003년, 급성심근경색으로 부인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조용필은 부인 안 씨를 추모하기 위해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바로 ‘진’이다.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 있다.
가왕 현재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 있는 역사, 전설, 가왕, 국민가수 등으로 불리며 한국 대중음악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 다양한 곡들을 직접 작사·작곡하고 다른 작곡가에게 받은 곡일지라도 대부분의 곡을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편곡하였으며 앨범 프로듀싱까지 하여 대한민국 가요계에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을 확립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는 단독 콘서트 활동을 통해 각종 진귀한 기록을 낳고 있으며 한국의 콘서트 문화를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위대한 탄생 가왕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최고의 실력에 있다. 가창력에서부터 작곡, 작사, 무대공연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실력으로 만들어냈다. 록부터 발라드, 포크, 창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하고 다양한 음악을 완성도 높게 창작한 것은 조용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다. 대부분의 곡은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했다. 조용필은 가요계에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을 확립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바운스 열풍’의 주역, 영원한 오빠 조용필 콘서트
음원만 공개했을 뿐인데, ‘바운스’ 열풍이 뜨겁다. “역시 조용필!”이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음악으로 대중의 정서와 공감대를 이루며 함께 호흡해온 가수 조용필. 그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닌 생명력 있는 히트곡을 가장 많이 보유한 가수다. 그런 그가 10년 만의 정규앨범 19집 발매를 기념해 2013 조용필 전국투어 콘서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