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파이팅!

세상에 이런 막장 가족이 다 있을까.

5월9일 막을 올리는 코믹 휴먼 드라마물 ‘고령화 가족’은 ‘고령화’보다 ‘막장’이라는 말에 더 어울리는 가족이다.

수년 전 첫 영화의 흥행에 참패하고 아내마저 떠나버린 뒤 재기는 커녕 나이만 열심히 먹은 40세 영화감독 ‘인모’(박해일)는 망연자실해 자살을 기도한다. 그 찰나 69세 ‘엄마’(윤여정)로부터 “닭죽 먹으러 와라”는 전화가 오고, 비바람에 놀란 병아리가 어미닭 품으로 파고들듯 노모 집으로 간다. 그런데 그 집에는 형 ‘한모’(윤제문)가 살고 있다. 45세나 됐지만 어린 애처럼 노모에게 늘 응석을 부리고, 노모가 화장품 방판 일을 해서 버는 돈에서 한 푼, 두 푼 얻어 근근히 사는 백수다. 사실 폭력 전과가 화려한 그이지만 손을 씻고 어미닭 품 속 병아리가 된 지 오래다.

인모와 한모는 만나자마자 으르렁거린다. 인모는 한모를 결코 형 대접해주지 않는다. “형”이라고도 안 부른다. 그저 “너”라고 부르며 벌레 취급한다. 한모 역시 오랜만에 돌아온 인모를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고, 발이 먼저 올라간다. 우여곡절 끝에 세 모자가 살게 되지만, 얼마 안 돼 여동생 ‘미연’(공효진)이 중학생 딸 ‘민경’(진지희)과 합류하면서 판이 훨씬 커져버린다. 남들은 한 번 하기도 힘든 결혼을 두 번하고, 이혼도 두 번하려고 노모 집으로 거처를 옮긴 그녀다. 그나마 카페를 운영해 백수 오빠들과 달리 생활비를 보탠다는 것으로 목에 힘을 주며 오빠들을 개처럼 무시한다. 반말은 기본, 욕도 불사한다. 민경 역시 삼촌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대놓고 욕을 하지는 않지만 표정을 보면 읽힌다.

막장 안 세 남매 사이에는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폭력이 작렬한다. 그러나 배꼽 잡는 폭소가 쏟아질 뿐 기분이 나쁘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가족의 ‘정’이라는 모두가 인정하는 정서가 깔려 있는 덕이다. 자기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다가도 가족이 남과 싸우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함께 맞서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 없이 바친다. 입으로 으르렁대고 눈에서는 레이저가 마구 쏟아지는 그들의 그런 속정과 본심이 보통사람들과 같기에 수긍하고 수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민엄마’ 윤여정이 보여주는, 모든 것을 감내하고 인고하며, 포용하고 보듬는 모습은 다들 그리워하고 기리는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여서 더욱 가슴 찡하고, 푹 빠져들게 만든다.

작가 천명관(49)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라는 듬직한 원작을 토대로 ‘파이란’(2001), ‘역도산’(2004),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무적자’(2010) 등 깊이있고 호소력 있는 전작들로 볼 때 도무지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연출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송해성(49) 감독이 연출했다. 박해일(36) 공효진(33) 윤제문(43) 진지희(14) 윤여정(66) 등 신구 남녀 연기파들이 열연과 호연 그리고 절묘한 앙상블로 스크린 위에 실감을 더했다. ‘막장 가족’의 이야기이면서도 ‘막장 영화’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다.

송 감독은 “살면서 실패를 했을 때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은 결국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가족’, 그 중에서도 ‘엄마’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신을 충전하고 또 다른 시작을 맞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라고 전했다.

특히 “나는 이 영화를 ‘가족 어벤져스’라고 생각하며 찍었다"면서 ”이렇게 대단한 배우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랑스럽고 흐뭇하다. 내가 모자란 부분을 다들 잘 채워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배우들에게 고마움과 만족감을 표시했다. ‘어벤져스’(2012)는 슈퍼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외계에서 온 가공할 적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물이다.

처음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았으나 재수 끝에 ‘15세 관람가’를 따냈다.

송 감독은 “영화에 15세 관람가를 살짝 넘어가는 수위가 있기는 하다”며 “그러나 장면, 장면의 수위보다 전체 내용을 보고 15세 관람가로 판정해준 것 같다. 등급을 받기 위해 공효진씨의 대사를 편집해야 했다. 영화를 위해 희생해 준 효진씨에게 고맙고도 미안하다”고 전했다.

‘15세 관람가’ 등급은 보호자만 동반하면 사실상 모든 연령대가 관람 가능하다.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다만, 극중 한모가 집에 혼자 있는 동안 민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자위행위를 하다가 집에 온 인모에게 들켜 얻어맞으며 “딸딸이도 못 치냐. 민경이를 생각한 것 아니다. 다른 여자를 생각했다”고 변명하는 장면을 볼 때 가족영화는 아닌 듯하다. 인벤트 스톤 제작, CJ엔터테인먼트 배급, 112분, 5월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