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리본 종목에서 검은색 의상을 입고 '백조의 호수' 속 흑조를 연기하는 손연재.

"처음으로 은메달 따낸 건 기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많아요.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국제체조연맹(FIG) 리듬체조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도 손연재(19·연세대)는 만족하지 않았다. "완벽한 연기를 하려면 보완할 점이 많다"며 이탈리아 페사로 월드컵이 끝난 이튿날인 29일 다음 월드컵 개최지인 불가리아로 곧장 향했다.

28일 밤 페사로 월드컵 결선이 TV로 생중계되면서 손연재는 작년 런던올림픽에 이어 다시 한 번 수많은 국내 시청자 앞에 자신의 실력을 선보였다. 이날 중계방송 시청률은 전국 기준 7.3%(닐슨코리아 조사)를 기록했다.

손연재는 리본 결선에서 매끄러운 연기로 17.483점을 받으며 멜리티나 스타니우타(벨라루스·17.850점)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에 맞춰 검은색 의상을 입고 흑조(黑鳥) '오딜'을 연기했다. 1분 30초간 리본 연기의 절정은 한쪽 다리를 들고 제자리에서 도는 '푸에테 피벗(fouette pivot)'이었다.

손연재는 "리본에서 푸에테 회전을 많이 하는 동작이 잘돼 높은 점수가 나왔다"고 했다. 한쪽 다리를 옆으로 뻗은 채 다른 쪽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며 한 바퀴씩 2세트, 한쪽 다리를 접었다 펴면서 두 바퀴씩 6세트, 한 바퀴씩 3세트 등 총 11세트 17바퀴를 회전하는 동작이다. 회전 한 세트가 끝날 때마다 지탱하는 다리의 발꿈치를 땅에 붙였다 뗀다. 난도가 한 바퀴당 0.1점씩 계산돼 총 1.7점을 인정받았다.

이 동작은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인 흑조 오딜의 32회전 푸에테를 응용한 것이다. 발레리나는 맨손으로 돌지만 리듬체조 선수는 손에 든 리본을 쉼 없이 움직이며 회전해야 한다. 올해 채점 규정이 바뀌면서 한쪽 다리를 뻗고 도는 회전 난도가 한 바퀴당 0.2점에서 0.1점으로 낮아졌다. 이 때문에 손연재는 작년보다 회전수를 늘렸다.

균형 감각이 좋은 손연재도 회전수가 늘어나자 훈련 도중 어지럼을 호소했다고 한다. 김지영 대한체조협회 경기위원장은 "중심을 앞쪽으로 잘 잡고 목표점 한 곳만 보면서 돌아야 흐트러지지 않는다"며 "어려서부터 발레를 배운 연재는 기본기가 탄탄해 고난도 회전을 잘한다"고 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개인 종합 5위에 오른 이후 국내는 물론 국제 무대에서도 손연재의 위상이 달라졌다.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문대훈 IB월드와이드 대리는 "이탈리아, 포르투갈 대회에서도 꼬마들이 찾아와 '손(Son)이 나오느냐'고 묻더라"며 "사인을 요청하고 경기 때 환호성을 지르는 팬들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올 시즌 들어 손연재는 전지훈련지인 러시아에서 작년보다 훈련 시간을 더 늘렸다. 지난해 올림픽 이후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한동안 휴식을 취한 그는 이번 시즌을 시작하면서 예전의 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전보다 더 지독한 다이어트를 해왔다. 8월 세계선수권 입상을 목표로 4종목 프로그램을 모두 교체했다.

잠시라도 훈련을 게을리하면 치열한 경쟁에서 금세 뒤처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손연재는 다음 달 4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6월엔 국내 리듬체조 갈라쇼에도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