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쓸일이 별로 없어 다 죽어가던 단어가 엉뚱하게 새 뜻을 갖게 되면서 '핫'한 단어로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팬 문화에서 즐겨쓰이는 단어, 조공이 바로 그 중 하나다.

최근 팬들은 스타에게 조공을 바친다는 말로, 스타에 대한 맹세와 애정을 듬뿍 표현하고 있다. 방송국 스케줄이 있을 때 쉬는 시간에 먹을 수 있도록 도시락과 간식을 선물로 주는 것에도, 생일이나 데뷔 기념일에 맞춰 주는 선물에도 조공이라는 타이틀을 붙인다.

조공은 원래 매우 치욕적인 뜻을 담았던 단어다. 종주국에게, 우리나라 역사로 보자면 주로 청나라에 우리의 예물과 사람들을 갖다바치며 복종을 맹세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조공을 바친다는 것은, 스스로 종속이 돼있음을 인정하는, 가장 극명한 수직구조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요즘의 조공은 스타를 향한 팬들의 애정이 다소 귀엽고 과장되게 표현한 말이지만, 그 어원은 결코 귀여워질 수 없는 단어였던 것이다. 아무리 원래 뜻이 많이 희석됐다고 해도, 스타와 팬의 관계를 종속, 비종속 관계로 본다는 기본 바탕은 영 께림칙하다. 최근에는 스타들도 스스럼 없이 조공을 '인증'하고, 팬들을 위한 선물에는 '역조공'이라는 말을 붙이며 '종주국'의 위상을 입증한다. 하긴, '~느님'이라는 별명도 흔해진 마당에, 조공 정도는 당연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연예계에서는 엄친아, 엄친딸이 되기도 쉬워졌다. 부모님이 고위층이거나 부자이기만 하면 엄친아, 엄친딸 타이틀을 쉽게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엄친아, 엄친딸은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효심도 지극해서 항상 '나'와 비교당하는 엄마 친구의 자녀들을 일컫는 말이었던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예인이 TV에 나와 '우리 집 좀 사는 집이에요' 하는 순간 엄친아 글자가 커다랗게 자막에 떡 붙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 프로그램 PD 엄마의 친구들은 다 부자들인가보다.

이렇게 많아져버린 엄친아가 '~느님'이 되고, 조공을 받는 시대에서 '일반인'은 점차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일반인은 특별한 지위나 신분을 갖지 아니하는 보통 사람으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를 뜻하지만 어느 순간 이들은 찌질하고 푸대접 받는 사람들이 돼버렸다. 그들은 연예인과 같은 '우월한 유전자'를 갖지 못하고 태어나, 연예인보다 비싼 밥값이나 병원비를 내는 사람들이다.

연예인들이 지인에 대한 설명으로 일반인이라는 단어 하나만 쓰거나, 대중을 일반인 무리로 표현하는 무심한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 무의식에 깔린 '연예인/일반인' 이분법 구도가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물론 스타들이 모두 특권의식을 가진 건 아니지만, 몇년만에 지하철을 타보고 인증씩이나 하려하거나 연예인 DC를 당연하게 여기는 등 가끔씩 터져나오는 잡음들만 봐도 그들의 무의식에 깔린 '연예인/일반인' 구도가 꽤 선명함을 알 수 있다.

연예인과 유명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물론 대단하다. 이들을 동경하는 대중 및 팬들의 심리도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이로 인해 변해버린 몇몇 '귀여운' 단어들이, 오히려 그 종속/비종속, 일반/특별 구도를 더 강화시키는 등 무의식 중에 부작용을 낳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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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선물을 받고 인증샷을 남기며 감사를 표한 스타들. 기사 내용과는 관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