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최고의 문화 거리로 각광받는 미국 맨해튼의 '미트패킹(Meat Packing)' 지역은 원래 피비린내 진동하는 도축장이 즐비한 곳이었다. 한때 마약·매춘의 슬럼가로 전락했던 이 지역은 그러나 1999년, 사업가 제프리 칼린스키가 오래된 정육점을 패션 편집숍 '제프리뉴욕'으로 개조한 후 최고 디자이너 부티크와 레스토랑이 앞다퉈 들어오는 명소가 됐다.
부부 건축가 임영환(44·홍익대 건축학과 교수)·김선현(41·디림건축 대표)씨가 최근 진행한 서울 금천구 독산동 '정육창고 개조 프로젝트'는 '한국판 맨해튼 미트패킹'이다. 안중근기념관 등을 설계하며 문화부 선정 '젊은 건축가상'(2010)을 받은 두 사람은 서울의 대표적 도축지로 남아 있던 독산동 내 30년 된 낡은 정육창고를 최소한의 '건축적 터치'만으로 완전히 다른 건물로 탈바꿈했다. 건축주는 힙합 뮤지션 '조PD'(본명 조중훈). 그가 설립한 엔터테인먼트회사 '스타덤'의 새 사옥(社屋)이다.
◇죽음의 현장이 꿈의 공장으로
최근 이곳에서 만난 부부 건축가는 "30년 전 죽은 고기를 두고 벌였던 삶의 현장을, 젊은이들이 벌이는 생(生)의 현장으로 탈바꿈해야 했다"며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했다. 처음부터 조PD씨가 '너무 화려한 성형은 싫다'고 개조를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건축가가 제일 먼저 '버린 것'은 건물 옆면·뒷면에 있는 창고형 슬레이트 셔터. 화물 트럭이 오가던 셔터를 전부 없앤 건축가는 단열 처리한 샌드위치 패널로 그 자리를 채워 하나의 단단한 건물로 변화시켰다. 건물 앞면엔 불투명한 흰색 폴리카보네이트 파사드를 달아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느낌을 만들었고, 나머지 외벽은 전부 검은 페인트로만 마감해 과도한 장식을 배제했다.
녹음실·댄스연습실을 제외한 모든 벽체가 '날것'이다. 이 사옥의 시멘트 벽체와 보는 일반적 기준에선 '부서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도적으로 둔 것이었다. 허물어진 벽 중간에 녹슨 철골 프레임이 삐죽이 나오기도 했고, 일부 벽면엔 콘크리트 혼합 자갈도 드러나 있었다. 분전함을 뜯어낸 자리에 드러난 합판 흔적은 건물의 속살마저 보여주는 듯했다. "이 건물의 시간을 소재의 보존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거죠."
◇새것과 오래된 것의 혼재
새 건물의 활력은 일부 구조 변경을 통해 얻었다. 1층 천장 일부(4×6m)를 뚫어 2층과 연결했고, 2층 천장에는 그 2배 크기의 천창(天窓)을 뚫어 자연광이 1층 바닥까지 쏟아지도록 했다. 내부에 벽이 없는 정육창고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 1층 로비에는 시멘트 벽돌을 새로 쌓아 세웠다. 역시 거칠게 마감한 것이다.
"무엇이 새로운지, 무엇이 낡은 건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건물 옆에는 상인들이 여전히 도축 고기를 붙들고 지난(至難)한 삶을 펼치고 있다. 바람을 마주하고 서니 특유의 피비린내도 훑고 지나갔다. 건축주 조PD씨는 "남들처럼 화려한 청담동에 터를 잡고 건물을 짓고 싶지 않았다. 이곳이 아티스트들의 창작 공간으로 발전했으면 한다"고 했고, 두 건축가는 "낙후된 건물의 재생은 도심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인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