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야구에선 투수가 던진 공에 타자가 맞는 것을 'hit by pitched ball'이라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를 잠시 중단하는 것은 'The ball is dead(공이 멈춘다)'라고 표현한다. 일본은 그걸 직역해 타자가 맞는 공을 사구(死球)라고 불렀다. 우리도 오랫동안 '데드 볼'이라고 하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몸에 맞는 공'으로 바로잡았다.
▶1920년 메이저리그에서 타자가 공에 맞아 처음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뉴욕 양키스 투수가 던진 공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레이 채프먼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는 뇌수술을 받았지만 이튿날 세상을 떴다. 그때만 해도 투수가 대놓고 공에 침이나 바셀린을 바르는 '스핏볼'을 자주 던졌다. 공이 보통 직구보다 회전을 잘 먹어 똑바로 가다 갑자기 떨어졌다. 이게 컨트롤이 잘 안 돼 타자를 맞히기 일쑤였다. 타자가 헬멧도 안 쓰던 시절이었다. 채프먼을 쓰러뜨린 스핏볼은 이내 금지됐다.
▶투수들은 가끔 일부러 타자를 겨냥해 공을 던진다. 그래 놓고 대개 "고의가 아니다"고 발뺌한다. 지난해 필라델피아 필리스 고참 투수는 상대 신인 타자를 맞힌 뒤 "일부러 그랬다"고 했다. 다섯 경기 출전 정지를 당한 그는 "옛날엔 빅 리그(메이저리그)에 온 신인을 몸에 맞는 공으로 환영했다"고 해명했다. 언론에선 턱수염을 잔뜩 기른 타자가 투수의 공격 본능을 자극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4월 초 개막한 메이저리그에서 신시내티 레즈 1번 타자 추신수가 스무 경기에 나와 열 차례나 공에 맞았다. 웬만한 팀 전체가 공 맞는 횟수와 맞먹는다. 추신수는 신시내티 선수가 한 달 사이 공에 아홉 번 맞았던 기록을 110년 만에 깼다. 올해 추신수는 바깥쪽 공을 잘 밀어쳐 타율 3할이 넘고 볼넷도 잘 고른다. 몸에 맞는 공까지 많아서 출루율 5할로 메이저리그 선두를 달린다.
▶추신수는 2년 전 공에 맞아 왼손 엄지 뼈를 다쳤다. 그 뒤로 몸쪽 공을 겁내 헛스윙이 잦았다. 투수들이 그 약점을 노려 몸 가까이 공을 던져댔다. 이번 시즌 추신수는 오히려 홈 플레이트에 바짝 붙는다. 몸쪽으로 던질 테면 던져보라는 식이다. 그는 몸쪽 공의 공포를 이기려고 심리 치료까지 받았다. 도루를 잘하면 '발야구', 볼넷을 잘 고르면 '눈야구'라고 한다. 추신수 덕분에 '몸야구'라는 말도 생길 듯하다. 재치 있는 톱타자 '추 추 트레인'이 배짱까지 키우는 '마인드 컨트롤 야구'로 몸값을 쑥쑥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