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헌 사회부 기자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2001년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영화 ‘친구’ 신드롬을 기억하십니까? 영화의 열풍이 워낙 거세 당시 초·중·고교 남학생들은 쉬는 시간 틈만 나면 교실이나 복도에서 학급 친구들을 장난삼아 때렸고, 맞는 아이들은 ‘마이무따 아이가’를 외쳤지요.

저는 조선일보 사회부 법조팀에서 대검찰청과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을 취재하는 윤주헌 기자 입니다. 잔혹하면서도 리얼했던 영화 ‘친구’는 실제 부산에서 있었던 조직 폭력배간의 갈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현존하는 국내 최대 폭력조직 중 하나인 ‘칠성파’와 ‘신20세기파’가 그 주역들입니다.

이달 22일 대법원은 ‘신20세기파’의 두목인 홍모에게 징역 6년, 다른 조직원 5명에게는 범죄 가담 정도에 따라 각각 징역 1년~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홍씨는 이미 동종전과가 있기 때문에 보석이나 사면을 받아 나오기 힘들어 보입니다. 한 조직의 두목이 6년간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는 건 치명적입니다. ‘신20세기파’가 역사 속으로 사실상 퇴장함으로써 부산 지역 밤의 패권(覇權)을 놓고 목숨 건 ‘혈투(血鬪)’를 벌였던 ‘칠성파’와의 ‘20년 전쟁’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지요. 두 조직간의 ‘20년 전쟁 잔혹사’를 추적해 봤습니다.

‘신20세기파’는 1985년 7월 탄생했습니다. 부산 중구 남포동과 충무동 일대 유흥업소·오락실 밀집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던 안모씨와 정모씨 등이 이권(利權)을 두고 다른 세력들과 싸움을 벌이다 힘을 결집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당시 부산의 밤을 장악한 세력은 ‘칠성파’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20세기파’와 함께 지역 폭력계를 양분(兩分)하다가 70년대 후반 천하통일을 이룬 ‘칠성파’는 20세기파의 후신(後身)으로 풋내기인 ‘신20세기파’가 세력을 급속히 키우자 ‘한번 손봐주겠다’는 생각으로 잔뜩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두 조직이 처음 세게 붙은 것은 1993년 7월, 일본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등과 혈연의식을 갖거나 보석밀매 등의 루트를 뚫는 등 국제화를 꾀하던 칠성파가 부산 일대에서 급성장하던 ‘신20세기파’를 본격 견제한 것이죠.

칠성파 조직원이 신20세기파 간부급 조직원인 정모씨를 부산 중구 길거리에서 회칼로 12곳을 난자해 숨지게 한 것입니다. 영화 ‘친구’의 장동건씨가 한 역할이 바로 정씨입니다. 이때부터 양 조직 간의 ‘20년 전쟁’이 막을 올렸습니다.

신20세기파는 칠성파에 복수를 꿈꿨지만 1990년 시작된 범죄와의 전쟁 여파로 인해 1995년 경찰에 우두머리인 안씨 등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검거되며 와해(瓦解) 위기에 몰립니다. 세력도 위축됐습니다. 이렇게 약 10년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조직원들은 2005년 안씨가 보석(保釋)으로 출소하면서 다시 뭉치게 됩니다.

신20세기파의 재건(再建)을 방관만 할 수 없던 칠성파는 2005년 8월 말, 다시 회칼과 야구방망이를 들고 신20세기파 조직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합니다. 손도 못쓰고 당한 신20세기파 행동대장 방모씨는 이듬해 1월 칠성파 조직원의 장례가 진행 중이던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 영도파와 유태파 등 다른 조직과 연합한 총 60여명을 데리고 몰려가 회칼과 손도끼로 난자(亂刺) 복수극을 벌입니다.

이후 서로 피비린내 나는 복수(復讐)를 꿈꾸던 두 조직은 약 5년 후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정면충돌했습니다. 2010년 12월 신20세기파 조직원들은 동료의 자녀 돌잔치를 마친 뒤 부산진구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여성 접대부들이 2차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자 “돈을 못 내겠다”며 행패를 부렸습니다. 주점업주는 평소 해결사로 고용했던 칠성파 조직원을 불렀는데, 출동한 칠성파 조직원 3명이 신20세기파 조직원 4명에게 현장에서 무지비하게 폭행당했습니다.

이 소식은 양쪽 조직에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부산진구 일대에 두 조직의 조직원들이 집결했습니다. 다음날 오전 7시쯤 신20세기파가 모여있는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던 신20세기파 조직원 2명을 칠성파가 야구방망위와 가위로 온몸을 때리고 찌르는 등 폭행했고, 신20세기파 조직원들은 곧바로 승용차 2대에 나눠타고 회칼과 야구방망이를 들고 칠성파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하지만 결국 칠성파를 발견하지 못해 복수에 실패합니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

두 조직은 2011년 6월 8일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피의 보복전’에 돌입했습니다. 이날 밤 회식을 해 만취(滿醉)한 30대 중반의 칠성파 중간 간부 이모씨 등 3명은 해운대구 우동 한 모텔 앞에서 20대의 젊은 신20세기파 조직원들과 마주쳤습니다. 술에 취한 칠성파가 주먹과 발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고, 이마가 찢어지는 등 피해를 봤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칠성파 조직원들은 신20세기파 3대 두목 홍모씨의 차를 운전하던 이모씨를 길거리에서 폭행해 보복했습니다. 신20세기파 조직원 40여명은 칠성파에게 보복을 하기 위해 그날 저녁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 회칼 등을 갖고 차로 해운대·서면·영도다리 밑 등을 누비며 색출작업을 벌였지만 이번에도 칠성파를 찾는데 실패했습니다.

두 조직간의 잦은 유혈충돌은 부산시민들을 공포 분위기에 떨게 했습니다. 결국 부산 지검 강력부가 작년 1월부터 조폭 수사에 본격 착수했습니다. 작년 4월 검찰이 신20세기파 두목 홍씨를 부산역에서 체포하자, 20대 조직원 5명이 “형님이 감옥에서 고생하는데 밖에서 호강하며 있을 수 없다”며 자수해 왔습니다. 자수한 조직원 상당수는 고교시절 야구, 레슬링, 유도, 복싱, 태권도 등 운동선수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이들을 기소했고 법원 1·2심은 이들에게 모두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번에 대법원이 22일 원심을 확정함으로써 당분간 이들은 국가 공권력의 통제 안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부산의 양대 조폭 중 한 조직이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신20세기파’가 예전의 영화(榮華)를 되찾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칠성파’도 같이 싸웠는데 왜 ‘신20세기파’만 처벌을 받는가”라며 의문을 품는 분이 계실 겁니다.

부산지검 강력부는 올 1월 신20세기파 조직원에게 보복전을 펼친 칠성파 조직원 김모씨 등 15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3명을 불구속 기소해 놓은 상태입니다. 달아난 행동대장 최모씨 등은 추적 중입니다. 조만간 칠성파 조직원들에 대한 법원의 선고도 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세기의 주먹들은 회칼, 각목, 가위 같은 흉기로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활개칠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20세기형 조폭 잔혹사’가 이번 판결로 과연 진짜 막(幕)을 내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