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전선하 기자] 배우 김성령은 SBS 드라마 ‘야왕’(극본 이희명, 연출 조영광)에서 재벌가 장녀 백도경 캐릭터를 만나 세련된 모습으로 매회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액세서리와 우아한 옷차림, 기품 있는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김성령은 럭셔리룩으로 재벌녀 캐릭터의 외형을 완벽히 소화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김성령의 존재감이 ‘야왕’에서 확실할 수 있었던 건 이 같은 외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연기한 백도경 캐릭터는 복수 난타전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던 ‘야왕’에서 납득할 만한 감정선을 가진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 권상우·수애라는 주연 배우에 비해 출연 분량은 적었지만 김성령이 시청자의 잔상에 오래 남을 수 있던 건 이 같은 이해 가능한 배역을 만난 행운과 이를 공감가게 연기한 그의 표현력 때문일 것이다.

◆ 멜로보다 여자 대 여자로 붙는 신이 더 끌려

“칭찬이요? 정말 감사하죠. 하지만 연기자로서는 아쉬움을 많이 느껴요. 남들은 못 보는 배우 본인만 아는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시청자들께서 도경이를 이해하셨다면 모성애를 중심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로 그려졌기 때문일 거예요. 주다해(수애 분)를 못살게 굴어도 ‘엄마라면 그럴 수 있어’ 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도경은 ‘야왕’에서 남몰래 낳은 아들 도훈(정윤호 분)을 동생으로 부르며 지극정성을 바쳤다. 그러다 보니 아들의 마음을 빼앗아간 다해와 격렬하게 부딪쳐 따귀세례를 퍼부은 것만 여러 번이었다.

“도경은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약점이 있는 상황에서 다해의 등장을 통해 본능적으로 도훈의 위기를 알아채 이를 보호한 캐릭터예요. 처음엔 다해가 일을 잘해서 예뻐하다가 아들이랑 잘 지내는 걸 알고 돌변했죠. 솔직히 다해를 너무 미워하는 건 아닌가 걱정될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아들 연기를 한 윤호한테 ‘엄마랑 여자친구 만난 적이 있냐’ 라고 물으니까 ‘있다’면서 무척 질투하는 반응을 보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말이 공감된 게 저도 초등학교 3학년, 6학년 된 아들이 있기 때문에 알거든요. 제가 삐치면 아들이 와서 애교 부리며 풀어주는데 나중에 이걸 자기 여자친구한테 할 걸 생각하면 솔직히 ‘잘 키워 남 주는구나’ 싶어요(웃음).”

도훈을 사이에 두고 독설을 주고받은 주다해 역의 수애와는 연기 호흡이 좋았다. 두 사람 모두 탄탄한 내공을 갖췄기에 연기하는데도, 또 이를 보는 시청자에게도 긴장감 넘치는 기싸움이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수애 씨는 집중력이 좋은 배우라서 함께 연기할 때 그런 점이 상대역에게도 도움을 주더라고요. 리액션이 굉장히 디테일하고 풍부한 배우로 오래 갈 친구구나 싶은 생각을 했어요. 우리 둘이 도훈이 때문에 수차례 대거리를 했는데 서로의 연기에 집중하고 상대방의 호흡을 받아주면서 좋은 장면이 나왔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의 불꽃같은 신경전이 펼쳐진 명장면으로는 도훈이 죽은 뒤 극도의 분노감에 사로잡힌 도경이 다해를 잡아놓고 석유를 뿌리며 불태워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당시 김성령은 자식을 잃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도경의 깊은 상처를 일그러진 얼굴로 드러내며 집중력 있는 연기로 시청자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 바 있다.

“남다른 아들을 잃었는데 도경의 심정은 그야말로 다해를 찢어죽이고 싶을 정도죠. 다해에게 석유를 뿌리고 라이터를 던지려는 순간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와서 결국 멈추게 되는데, 그 장면을 어떻게 해서든 풍부하게 만들려고 고심했던 기억이 나요.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도록 해야 했는데 휴대전화가 어디에 있다 받아야 이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멈추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죠.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그 장면을 훨씬 더 디테일하고 감정이 응축된 신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도 있어요. 극중에서 도경이 하류(권상우 분)와 달달한 멜로신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저는 그보단 여자들끼리 격렬하게 맞붙는 이런 신이 훨씬 더 좋더라고요.”

도경이 그토록 애달아했던 도훈에 대해선 이를 연기한 정윤호가 너무나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줬기에 저절로 몰입이 될 수 있었다.

“윤호가 참 착해요. 아이돌이라 편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일반 그 또래 친구들 보다 훨씬 더 순진하고 마음이 좋은 친구더라고요. 중학생 때부터 가수 준비만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오히려 세상의 때가 안 묻고 굉장히 깍듯해요. 또 본인이 아이돌 스타로 가지고 있는 위치가 있는 만큼 실수하면 안 된다는 마음도 곧아서 준비도 철저했고요. 촬영장에선 윤호가 NG를 내면 10번을 실수해도 다들 ‘괜찮아 괜찮아’ 하곤 했어요. 그 정도로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윤호를 좋아했어요.”

엄마와 아들 역할로 나오기 때문에 친해져야 한다는 마음에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도 연기하는 데 도움을 줬다. 드라마가 종영된 현재 “윤호가 제일 보고 싶다”는 게 김성령의 마음이다.

◆ 도도하다고? 망가지는 역할 대환영

‘야왕’에 앞서 김성령은 지난해 방송된 SBS 드라마 ‘추적자-the chaser’에서도 재벌가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특별히 치장하지 않아도 럭셔리 하고 귀티 나는 외모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미스코리아 이미지 때문인지 화려한 역할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긴 해요. 사실 어릴 때 교복을 입고 다닐 때도 ‘쟤는 부잣집 딸이야’ 하는 이야기를 듣곤 했으니까요. 전문가의 손길로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건데 말이에요.”

스타일리스트에게 공을 돌리지만 김성령이 들이는 노력도 이에 못지 않다. 배우로서 캐릭터를 분석하고 또 이를 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른바 스타일리스트 팀에게 ‘카톡 테러’를 한다는 게 김성령의 말. 캐릭터에 맞을 것 같은 화보나 이미지가 있으면 때를 가리지 않고 아이디어를 쏘아댄다. ‘야왕’에서 백학그룹을 이끄는 당당한 재벌가 자녀 배역이 맞춤옷처럼 느껴졌다면 이는 그렇게 보이기 위해 외모부터 풍기는 이미지까지 공을 들인 김성령의 캐릭터 분석력 때문이다.

"패션 잡지도 안 보고 브랜드 이름도 무식할 정도로 모르는 게 저예요. 듣더라도 그냥 흘려버릴 정도로 트렌드에는 전혀 민감하지 않는 편이죠. 그런 제가 요즘 패셔니스타, 워너비스타로 불리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평소 민낯에 모자도 안 쓰고 다니는 사람인데 '여신', '우월한 미모' 같은 과하게 붙는 수식어가 사실 부담스럽기도 해요."
 
재벌가 자재, 변호사, 여배우 등 타고난 미모 덕분에 주로 도도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강한 역할을 도맡지만 변신에 대한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확실히 보수적이라 아직은 감독님들께서 저를 재벌가 이미지로 사용하고 싶으신 것 같아요. 다만 영화쪽에서는 저의 다른 모습에도 주목을 해주셔서 ‘의뢰인’ 당시 맡은 사무장 캐릭터에서는 민낯에 드라이도 거의 안 한 채 등장했죠. 두꺼운 폴라티를 입고 외투까지 겹쳐 입어 팔뚝이 아주 과하게 나온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도 나이 들었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기분이 오히려 좋았어요. 그런 역할도 꽤 괜찮았으니까요.”

도도한 재벌가 여식의 이미지가 익숙하지만 코믹하고 망가지는 역할이 실은 고프다. 지난해 방송된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의 푼수 여배우 역할을 신나게 촬영했고, 기회가 된다면 이 같은 배역을 더 하고 싶은 게 김성령의 바람이다.

“웃기고 망가지는 캐릭터에 관심이 많아요. 재밌고 왠지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요. 아니면 완전히 반대로 중년의 진한 사랑도 연기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두 배역 모두 더 나이 들면 못 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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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