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보기에서 2번은 공대생, 1번은 비(非)공대생의 시각을 각각 대표한다. 두 관점을 고루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삼성그룹(이하 '삼성')이 나섰다. 삼성은 올해 상·하반기 공채에서 인문학부(과) 출신 대졸자 200명을 뽑아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양성할 예정이다〈아래 참조〉. 삼성 측이 추천한 융합형 인재 모델 2인과의 만남은 지난 5일 이뤄졌다. '자녀를 어떻게 키울까?' 늘 생각하는 부모들도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인문학, 다양한 시각 제시에 도움

인터뷰 참가자(사진 왼쪽부터) △이인호(37) 삼성SDS 경영지원ISE그룹 책임ㅣ고려대 한문학과 졸업,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전용 소프트웨어 관리·갱신 담당 △김우목(38)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 책임연구원ㅣ영남대 영어영문학과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소프트웨어대학원 졸업, 전자기기 탑재용 운영체계 개발 담당.

이인호 책임이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길로 들어선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는 입사 당시인 10년 전만 해도 평범한 한문학 전공생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과학을 싫어했고 영문 자판 암기는 일찌감치 포기했을 정도로 컴퓨터에 무심했다. “제가 입사한 해에도 인문학 전공자를 따로 뽑는 채용 전형이 있었어요. IT 산업이 막 뜨던 시절이라 ‘관련 마케팅 일이나 배워볼까?’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다가 지금 부서에 정착했죠. 업무에 본격적으로 투입된 후에야 제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달았습니다.”

김우목 책임연구원은 게임을 통해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입문했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에 빠져 살았어요. 중학생 땐 간단한 프로그램을 손수 제작할 수 있을 정도였죠. 영문학을 학부 전공으로 택한 건 소설을 좋아하는 누나의 영향이 컸어요. 그 덕에 ‘생태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글, 중앙북스)를 읽은, 몇 안 되는 공학도가 됐죠.”

학부 시절 전공이 현재 직무에 도움이 될까? 두 사람 다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김 연구원에 따르면 인문학 전공자의 장점은 '다양성' 측면에서 십분 발휘된다. "사내 소프트웨어 공학자 대다수가 자연·공학계열 출신이에요. 그들은 가치관이 형성되는 고교·대학 시절 내내 동일한 과정을 밟아 왔기 때문에 사고 방식 역시 엇비슷해요. 그 사이에서 인문학도가 '다른 목소리'를 낸다면 문제 해결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창의적 결과물을 내놓기도 훨씬 쉽죠."

◇시작은 '한 우물 깊이 파기'서부터

"자네, 쓸 줄 아는 랭귀지(language)가 뭔가?" "영어와 중국어 약간 할 줄 압니다." "……" 이인호 책임이 입사 초기 상사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상사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란 뜻으로 말한 랭귀지를 사전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인 데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컴퓨터공학에 익숙지 않았던 그는 이후 부서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남보다 곱절로 노력했다.

이 책임은 ‘융합형 인재의 첫째 조건’으로 성실성을 꼽았다. “처음엔 업무 요청이 들어와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았어요. 퇴근 무렵 일 끝낸 선배를 붙잡고 질문을 퍼부었죠. 문제가 해결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 과정을 메모해뒀고요.” 어떤 지식이든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그는 “사회에 나와보니 자신을 ‘문과(혹은 이과) 체질’로 한정 짓는 행동이 역량 계발엔 오히려 방해가 되더라”고 귀띔했다.

김 연구원은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게 융합형 교육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 분야를 오래 공부하면 자연스레 다른 분야 지식도 접하게 돼요. 저 역시 ‘프로그래밍을 원서로 공부하기 위해’ 영어 공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요. 배경이 다양한 또래를 사귀는 것도 좋습니다. 철학을 전공한 스티브 잡스(1955~2011)가 휴렛패커드(HP) 기술자 스티브 워즈니악(63)을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애플은 없었을 거예요.”

바뀌는 대기업 채용 트렌드 들여다보니

2013년은 채용 시장 내 지각 변동이 유난히 두드러지는 한 해다. 삼성은 올해 인문학부(과) 졸업생 200명을 채용, 이들을 SCSA(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 6개월 교육 프로그램에 투입해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양성한다. 삼성 인사팀 관계자는 새로운 채용제 도입 배경에 대해 "인간 중심 기술 구현 시대에 걸맞은 융합형 인재의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은 '바이킹챌린지' 전형을 통해 오디션과 미션 수행 평가 점수만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포스코는 지원 서류 제출 시 학점·대학·사진을 요구하지 않는 '탈(脫)스펙' 전형을 시행한다. 진동철 SK 인재육성위원회 프로젝트리더는 "다변화된 시장에 적응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기존 인재상을 충족시키는 사원과 바이킹챌린지 전형 합격생처럼 특이한 경력을 지닌 사원 둘 다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