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일본 시사주간지의 청탁을 받아 베트남 난민 보트피플 취재를 위해 나가사키현 고토(五島)열도에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고토열도는 일본의 서쪽 맨 끝자락에 위치한 섬들로, 나가사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40분간 가야 한다. 인구 7만여명에 140여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베트남 난민 수십여 명이 보트를 타고 일본 영토에 상륙, 일본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갑자기 국적 불명, 성명 불명의 사람들이 외딴섬에 집단으로 몰려들자, 이섬 저섬 주민들이 이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고 급기야 일본 정부마저 이들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를 두고 우왕좌왕했다. 나중에 이들이 베트남 난민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일본 언론들이 인도주의를 표방하며 보트피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필자는 기자 신분으로 도쿄에서 나가사키를 거쳐 고토열도에 들어갔다."한국이 어딘데?""코리아? 코리아가 뭐야?""그 나라는 뭘 먹고살아?"지금은 고토열도의 주민들 의식이 어느 정도 변했는지 알 수 없지만, 무작정 찾아간 민박집 주인은 필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일순 난감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표현하기 힘든 불쾌감으로 다가왔다.하지만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말을 하는 민박집 주인 부부의 나이가 70대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태어나서 나가사키항 외에는 바깥세상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일본이 과거 한국을 장기간 지배한 사실조차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것은 일본이 다른 나라를 '조금' 침략했다는 정도였다. 어느 나라를 침략했는지 구체적인 국명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취재하는 일주일 동안 필자가 가르쳐준 한국에 대한 지식이 아마도 외국에 대한 그들의 모든 지식인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섬 외의 소식에는 신기하리만치 무지했고 또 무관심했다. 때문에 베트남 난민들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그들은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도쿄로 돌아가보자. 1987년 6월, 방을 얻기 위해 도쿄 시내 수십여 군데를 돌아다녔다. 소위 시타마치(서민촌)라고 하는 동네에서부터 부촌이라고 일컫는 세타가야(世田谷)구의 어느 동네까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조센징와 다메!(조선인은 안 돼)"라는 단 한마디의 말이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따로 없었다. 왜 조선인을 거부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묻는 필자에게 돌아온 건 "그냥" "무조건 싫어"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세타가야구에서 몇 대에 걸쳐 농사를 지었다는, 세타가야구 토박이 집주인을 만나 방을 얻을 수가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집주인은 그 지역에서 소문난 땅부자이지만, 재력에 비해 지역 유지들로부터 차별과 무시를 받고 있었다. 식자층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인을 비롯한 타국의 유학생들에게는 한없이 친절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임대를 주고 있는 아파트에는 유독 한국 유학생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렇듯 조선인(한국인)을 거부하는 이도, 기꺼이 방을 빌려주는 집주인들도 모두 60대 후반 혹은 70·80대 노인들이었다. 이들은 또한 '전쟁세대'이기도 했다.
필자는 현재 20년 넘게 일본에서 살고 있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황금기와 '잃어버린 20년'을 직접 지켜보며 일본의 언론계에서 일을 했다. 1980년대 일본의 취재 현장에서 마주친 일본 젊은이들은 어느 분야에서든지 의욕이 넘쳐흘렀다. 거침이 없었고 실력 또한 특출했다. 그들은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으며 자신감이 충만했고 도전정신이 강했다. 자신들의 머릿속에 '실패'라는 단어는 없는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면서도 여유로움에서 오는 배려인지는 몰라도 제3자에게 참으로 친절했다. 상점을 가도, 택시를 타도, 주소지 하나만 내밀면 군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시간이 얼마만큼 소요가 되더라도 목적지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주었다. 적어도 1980~1990년대까지는 그랬다.
이들에 대해 일본 사회는 전후세대인 '단카이(團塊)세대'(1947~1949년생)라고 불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일본 열도에 이변이 일어났다. 전국 어디를 가도 한국 대표 축구를 상징하는 빨간 티셔츠와 일본을 상징하는 파란 티셔츠가 넘쳐흘렀다.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과 일본이 경기를 할 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한국인만 보면 서로 얼싸안고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 간바레 코리아!"를 외쳤다. 이들에게는 한·일 간 뒤틀린 과거 역사 문제는 자신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 세대인 어른들 문제였다.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팩트'였다.
그리고 2012년, 일본의 10대들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췄다. 일본에서는 '강남스타일'이 전혀 안 떴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해 7월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 올라왔을 때, 세계적으로 뜨기도 전에 그 누구보다도 먼저 재미 있는 노래라고 알아차린 것은 바로 일본의 중·고교 댄스부였다. 이 같은 '강남 바람'은 다른 나라들처럼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일본스럽게' 조용히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일본 열도를 서서히 삼켰다. 일본 10대들치고, 또한 중·고교 댄스부치고 이 노래에 따라 춤을 추지 않은 학생은 거의 없다. 흥겨운 춤사위에 서툰, 평소 몸짓 표현에 서툰 보수적인 어른들이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은 '2012년 일본 유튜브 조회 수 1위'가 바로 일본 노래가 아닌 '강남스타일'이었음이 그대로 증명해준다.
도쿄 고탄다(五反田)에 있는 남녀공학 사립 고등학교. 이 학교의 동아리(일본에서는 부(部) 활동이라고 부른다) 중에 댄스부는 아주 유명하다. 학교 내 활동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공연을 펼치기 때문이다. 작년 7월 말, 이 학교의 댄스부 팀장은 타 학교에 있는 친구로부터 유튜브에 들어가 '강남스타일'이란 노래를 들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 팀장은 자신이 이끌고 있는 댄스부의 테마곡을 바로 '강남스타일'로 바꾸었다. 춤도 '강남스타일'로 바꾸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강남스타일'은 중·고교 캠퍼스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일본 중·고교의 '부 활동'은 한국의 동아리 활동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이를 두고 일본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어느 한국인 학부모는 "일본 중고생들의 부 활동은 꼭 목숨 걸고 하는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 열정과 적극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신의 적성과 특기에 맞는 부를 선택, 졸업할 때까지 활동을 하는데, 학생들은 수업 외에 모든 에너지를 이 부 활동에 쏟아붓는다.
대내외적으로 유명한 부 활동의 경우,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연습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고교생의 경우,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할 때 바로 이 부활동을 경유해서 가는 학생들도 많다. 그만큼 대학에서도 고등학교의 부 활동에 대해 그 실력을 인정해준다. 비록 학기 초에는 '취미'로 시작하지만 3년 후 졸업할 즈음에는 음악이든 스포츠든 자신의 '특기'가 될 정도로 일정 수준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등학교에서도 교육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준다.
이처럼 열정적인 이들 10대의 특징은 '과거'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현재와 미래만 바라볼 뿐이다. 일본 사회는 이 같은 젊은이들을 가리켜 '버블세대'(버블경제 시기에 태어난 젊은이들)라고 부른다. 이렇듯 일본에는 '전쟁세대' '전후세대(단카이세대)' '버블세대'가 있다. 이들 3세대는 서로 성향이나 색깔이 전혀 다르다. 의식구조는 더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때문에 이 3세대가 한 가족인 경우, 때로는 낯선 타인보다도 더 거리가 먼 관계인 가족도 적지 않다.
부모가 자식 집에 가면서 반드시 예약(일본에서는 이것이 예의이고 상식이다)을 해야 하고, 숙식도 근처 호텔에서 해결한다. 이에 대해 부모나 자식 그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일본을 구성하고 있는 이 삼색(三色) 세대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 쟁 세 대
일본 사회에서 '전쟁세대'는 그야말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다. 왜냐하면 고령 차원을 넘어 '초고령'에 접어든 세대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글에서 일본의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23.3%라고 소개한 바 있다. 그중 100세 이상의 초고령자는 5만1376명에 이른다. 23.3%의 고령자 중 상당수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직접 경험했고 또한 1970~1980년대 일본의 황금기를 만끽한 세대다. 이들의 특징은 '과거에 묶여 산다'는 것이다. 늘 과거의 영화로웠던 대일본제국을 꿈꾼다. 비록 육신은 쇠퇴해가고 있지만 이들의 의식구조만큼은 젊은이들의 에너지보다 더 살아 꿈틀거린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결코 반갑지 않지만, 사실은 현재의 일본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전쟁세대라는 점이다. 이 전쟁세대의 특징은 정신력이 대단히 강하다는 것이다. '하면 된다'는 신조를 마음에 담고 산다. 실제로 그들은 실천도 해봤다. 자신들의 과욕 때문에 태평양전쟁에서 처절한 패배를 당했지만, 그 폐허 속에서도 경제대국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세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이들은 또다시 제2의 일본 부활을 꿈꾸는 것이다.
전쟁세대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사고방식과 행동패턴,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못마땅해한다. 역사의식이 없는 것도 그렇고, 어떤 일이든 한 우물을 파지 않는 것도 불만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日本)이 '닛폰(一本)'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재팬(Japan)'으로 굳어질까봐 그게 걱정이다.
실제로 전쟁세대인 나카소네 야스히로(94)·모리 요시로(74) 전 총리 같은 원로 정치인들은 지금도 노구를 이끌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요즘 젊은이는 '닛폰정신'이 없다"고 개탄한다. 그래서 우익사관적인 정신무장을 시켜야 한다고 일갈한다. 바로 이 같은 우익 성향의 전쟁세대 정치인들의 뜻을 받들어 행동화하고 있는 이들이, 정계에서는 아베정부, 사회에서는 최근 혐한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극우단체들이다.
하지만 이들 전쟁세대의 우익사관적 활동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왜냐하면 전쟁세대 대부분이 초고령자인 데다 일부 우익단체를 제외하면 추종자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의 가치관과 역사관이 기본적으로 잘못돼 있을 뿐만 아니라, 첨단 과학 시대인 글로벌 세대에 전혀 설득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전쟁세대가 사망할 즈음이면 우익 성향의 일본 정치도 많이 퇴색할 것이라고 보는 일본인들이 많다.
전 후 세 대 ( 단 카 이 세 대 )
한마디로 과도기 세대다.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 어렸을 적 일본의 전 국토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허기와 굶주림을 몸소 체험했다. 그런가 하면, 옛날에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안락한 집과 안정적인 직장, 그리고 때맞춰 나오는 보너스로 해외 여행을 즐기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생활을 만끽한 과도기 세대이기도 하다. 침략 세대인 부모 세대와는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주변국들과의 과거 역사문제로부터 책임 회피가 가능한, 여러 면에서 선택의 여지가 많은 세대다.
실제로 그들은 일본의 과거 침략 행위에 대해 너무도 잘 알면서도, 혹은 자신들의 부모가 그 침략 행위에 직접 가담한 적이 있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해왔다. 대부분의 전후세대는 이 같은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본 교육 현장에서 올바른 역사교육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은 이 전후세대가 '애써 모른 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실적인 역사교육을 시킬 경우, 그 여파가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평소 적당히 주장한다. "그래, 과거에 일본이 주변국가들에 못할 짓을 했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저지른 것이 아닌 부모 세대가 벌인 일이다. 그러면 우리들만이라도 주변국들과 사이 좋게 지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우리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있지 않나. 이 점을 당신들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언뜻 보면 아주 좋은 말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 같은 말 외에는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절대로 행동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반성은 행동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전후세대는 말로는 사과하고 반성한다면서도 교과서에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것은 절대로 회피한다. 늘 적당히 말로 넘어가려 하는 세대가 바로 이 단카이(團塊)세대다. 그러면서도 주변에 친구 나라가 많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인간적으로 현혹되기 쉬운 수려한 언어들로 '포장'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가장 경계하고, 또 현실적으로 역사문제에 대해 밀접하게 접근해야 할 일본인이 다름 아닌 이들 단카이세대다.
버 블 세 대
일본 젊은이들은 참 재미있다. 색깔이 다양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을 때도 있다. 한마디로 제어가 불가능한 젊은이들이 많다. 한곳에 매몰돼 모든 것을 올인하는 '오타쿠'가 있는 반면, 어쩌면 저렇게 순한 순둥이가 있을까 감탄하게 되는 순수 절정의 아이들도 있다. 일본 10대의 특징은 무색무취의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의 10대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훨씬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세속적으로 계산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세속적 계산'이라는 것은 주변 환경과 조건, 그리고 가족의 신분과 배경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하지만 일본의 10대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 같은 셈법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 여기에 부모가 개입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거의 없는 편이다.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 유대관계는 그다지 밀접하지 못하다.
우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부모가 아무리 자식일지라도 성인 취급을 한다. 물론 이 같은 인식 저변에는 당연히 책임과 의무까지도 포함된다. 만약 고등학생이 임신을 하거나 임신을 시켰을 때, 딸이든 아들이든 부모가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중절수술을 하든,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을 하든 그것은 온전히 당사자들 몫이다. 한국처럼 부모가 나서서 장래 운운하며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10여년 전, 10대 부부 10여쌍을 취재한 적이 있다. 이들 모두 중·고교 시절에 임신해 학교를 중퇴하고 생업 전선에 나선 어린 커플들이었다. 이들 중 부모가 아이를 봐주는 경우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것도 낮에 일하는 동안 아이를 보육원에 맡겼다가 저녁에 집에 데려와 밥을 챙겨 먹이는 정도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지는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극단적 예가 아니더라도 일본의 10대 혹은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식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거창한 미래를 꿈꾸지도 않는다. 일부 학부모 중에는 한국처럼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이도 없진 않지만, 일본의 대다수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과 실력에 맞춰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 전선에 나선다. 바로 이런 경향 때문에 일본 교육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중·고교 중퇴자들의 급증이다. 이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일본 부모들은 태연자약하다.
한국 같으면 부모가 울며불며 어떡하든 자식을 설득해 학교로 돌려보내지만, 일본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에서 손을 뗀다. 자식 또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만약 한국 부모처럼 자식을 대하다가는 자식으로부터 절연당하기 십상이다. 덕분에 대학 진학률도 48%에 지나지 않는다. 4년제 사립대학은 매년 정원 미달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자유로움' 그 자체다.
전쟁세대의 우익사관적 섬나라 근성도, 과도기 세대인 전후세대의 친미사대주의 사상도 이들에게는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할 뿐이다. 1990년대 한때, '제3국인'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일본 젊은이들이 일본도 미국도 한국도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취사선택하는 제3국인을 지향한다고 해서 한동안 이 말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쏙 들어가버렸다. 그 시기가 묘하게도 우익정치인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할 때부터다. 바로 독도 문제, 교과서 문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사이에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결국 이 같은 현상은 일본의 우익사관 정치인들이 젊은이들의 정신까지도 갉아먹어 가면서 서서히 말살시키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일본의 3세대가 처해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