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중반까지 어린이 독서 시장을 장악했다가 사라졌던 아동문학 전집이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절판된 아동문학 전집을 찾는 수요가 중고 서점에 몰리면서 30만원대의 높은 가격에도 책을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 계몽사, 동서문화사 등 1970~80년대 아동문학전집 붐을 이끌었던 출판사들도 "내가 읽은 전집을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데 다시 낼 수 없느냐?"는 30~40대의 문의 전화가 수시로 걸려오자 전집을 다시 내거나 복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1980년대에 5만6000원이었던 계몽사 판 '어린이 세계의 명작'(15권) 전질은 최근까지도 인터넷 중고 책 시장에서 30만원대에 거래됐다. 그마저도 구하기가 힘들어 "웃돈을 주고라도 사겠으니 꼭 구해달라"는 문의가 줄을 이었다. '어린이 세계의 동화'(전15권)도 중고 책 전질이 20만~25만원 선에 꾸준히 거래됐다. 절판된 전집을 찾는 구매층은 어린 시절 이 전집을 읽었던 중·장년층이다. 서울 상계동에서 헌책방 '나들이'를 운영하는 고영균씨는 "어릴 때 감명깊게 읽었던 책이라 애들에게도 읽히고 싶다며 찾는 사람들이 많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책을 구해 손님들에게 팔았다"고 했다.
섬세하고 세련된 컬러 일러스트를 못 잊어 중고 전집을 찾는 이들도 많다. 계몽사 '어린이 세계의 명작'을 헌책방에서 구해 소장하고 있는 이지민(34·회사원)씨는 "요즘 그림책에선 이렇게 공들인 일러스트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중고 책은 '나를 위한 선물'로 보관하고, 아이를 낳으면 복간본을 읽히고 싶다"고도 했다. '~읍니다' 등 예전 맞춤법으로 된 전집은 부모가 갖고 자녀들에게는 현재 맞춤법에 따라 복간된 전집을 읽히겠다는 것이다.
시장 반응을 확인한 계몽사는 1980년대 후반 절판했던 '어린이 세계의 동화'를 지난 2월 다시 냈다. 1984년 일본 고단샤(講談社)의 '세계의 메르헨' 시리즈를 번역 출간했던 '어린이 세계의 명작'도 지난해 5월 3000세트 한정판으로 복간했다. 1977년 출간했던 '계몽사 문고'(전 120권)도 올해 내로 복간한다는 계획이다. 시장 반응도 고무적이다. 3000세트 한정 출간한 '어린이 세계의 명작'은 30만원이라는 고가임에도 지금까지 60%가량 팔렸다.
동서문화사도 1980년대 '에이브(ABE) 전집'(전 88권)과 '메르헨 전집'(전 55권)을 올 10월쯤 재출간할 계획.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 시대에 정식 계약하지 않고 출간한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저작권료를 내고 다시 출간하기로 했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요즘 30~40대 부모들은 그 윗세대와는 달리 어린 시절 누린 문화적 혜택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며 그를 자녀와 공유하고 싶어 한다"며 "전집의 호황기에 수준 높은 컬러 그림책과 컬렉션 알찬 아동문학 전집을 접할 수 있었던 첫 세대가 부모 세대가 됐다는 방증"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