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중이던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참혹하게 훼손했던 '오원춘 사건'이 1일로 만 1년을 맞았다. 범행이 일어났던 경기도 수원시 오원춘 집 인근은 아직도 '악몽' 속에 휩싸여 있다. 해만 지면 인적이 끊기고 사람들이 떠나간 빈집들은 비행 청소년들의 소굴이 됐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더 많이 설치하고 순찰 강화에 나섰지만, 주민들은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지난 28일 오후 7시 오원춘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집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원춘이 살던 방 창문은 합판으로 막혀 있었고, 현관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엄마가 중학생 누나한테 '절대 밤에 나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학교 선생님들도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해요." 초등학생 김모(10)군과 채모(10)군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인 뒤 급히 골목으로 사라졌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엄모(66)씨는 "사건 이전엔 밤 11시가 넘어서도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오후 8시만 되면 인적이 없다"며 "장사하기 정말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경찰은 11개였던 CCTV를 21개로 늘렸다. 어두운 골목을 최대한 없애보려고 구석구석에 조명도 달았다. 하지만 주민 이모(여·33)씨는 "CCTV 몇 개 더 단다고 치안 상황이 달라지겠느냐"며 "사람들이 동네를 떠나면서 예전보다 더 음산한 동네가 돼 버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민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일 1만6312명이었던 이 지역 주민은 1년여 만에 1만5832명(3월 28일 기준)으로 500여명가량 줄었다.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소를 운영하는 주민 박모(52)씨는 "그 사건 뒤 이 지역에서 나가는 사람은 있어도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며 "부동산 시세만 따진다면 이 지역의 지난 1년은 악몽"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떠난 빈집을 차지한 비행 청소년들 때문에 주민들은 더 불안해하고 있다. 중학생 이모(14)군은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빈집에서 무서운 형들이 튀어나와 돈을 빼앗는다"며 "그 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밖에선 모를 것이라는 걸 동네 아이들은 다 알기 때문에 절대 깊은 골목으로는 안 들어간다"고 말했다.
오원춘 사건 당시 112 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적 공분(公憤)을 샀던 경찰은 사건 이후 대대적인 112 신고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112 신고 접수 요원을 2154명에서 3002명으로 늘리고, 신고 접수 요원 자격도 형사·교통 등 외근 경력 3년 이상으로 강화했다. 이전에는 112 긴급 신고가 접수되면 종합상황실 근무자만 신고 내용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관도 순찰차 내비게이션을 통해 신고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응태세는 미흡하다. 지난해 서울경찰청에 걸려온 신고 전화 715만3478건 중 28.3%는 '통화 중'으로 연결됐다. 오원춘 집 인근 주민 김모(41)씨는 "112 신고 체계가 좋아졌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이 지역 경찰들은 "사건 이후 치안을 강화하기 위해 애썼지만, 부족한 경찰 인력과 예산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주거지가 오밀조밀 밀집해 있고, 뜨내기 일용직 근로자나 조선족 등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 보니 '위험 요소'를 미리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수원시처럼 전출입이 많은 지역은 전문가들이 강력범죄가 많은 대표적인 곳으로 꼽는 지역이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는 "경기 수원·안산·경북 구미 등 치안이 불안한 지역의 특징은 인구 전출입이 많다는 것"이라며 "지역사회의 응집성·접착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범죄가 빈발한다"고 말했다.
오원춘 집 근처만 문제가 아니다. 수원 지역의 대표적인 '범죄 사각지대'로 꼽히는 수원역 인근 지역은 '경찰도 들어가기 어려운 동네'다. 수원에서 2010년 발생한 살인·강도·방화·성폭행 등 강력범죄는 모두 778건으로, 인근 도시(115~567건)보다 훨씬 많다.
특히 수원역 뒤편 일대 유흥가와 주거 밀집 지역은 대표적인 위험 지역이지만 대책을 세우기도 어렵다. 최근까지 수원에서 근무했던 한 경찰관은 "사람들이 커튼도 꽁꽁 치고 문도 이중 삼중으로 잠가놓기 때문에 골목에서 사건이 발생해도 목격자가 단 한 명도 없다"며 "경찰도 칼 맞을까 봐 낮에도 못 들어가는 동네"라고 전했다. 주민 김모(39)씨는 "술 마시고 싸우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지만 경찰조차 방치해놓고 있으니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