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내항 전경. 130년전의 개항장으로 주변에 개항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설물들이 많이 있다.

올해는 '인천(仁川)'이라는 이름이 역사에 등장한 지 600년 되는 해이다. 이른바 정명(定名) 600주년이다.

인천은 서기 1413년, 조선 태종 13년 전국의 행정기구를 새롭게 정비할 때 생긴 이름이다. 그 직전까지 인천은 인주(仁州)라 불렸다.

이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또 각 도의 단부(單府) 고을을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감무(監務)를 현감(縣監)으로 고치고, 무릇 군현(郡縣)의 이름 가운데 주(州)자를 띤 것은 모두 산(山)자, 천(川)자로 고쳤으니, 영주(寧州)를 영산(寧山)으로 고치고, 금주(衿州)를 금천(衿川)으로 고친 것이 그 예이다"

인천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한 '인주(仁州)'는 말 그대로 '어진 고을'이라는 뜻이다. 이는 이곳 인주 이씨 집안에서 고려 인종의 어머니 순덕왕후를 비롯해 모두 7대에 걸쳐 12명의 왕비가 나왔기 때문에 조정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인주라 불리기 전에는 '경원군(慶源郡)'이라 불렸는데, '경사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이 역시 왕비들의 고향이기에 붙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주에 대해서는 인종 임금이 태어난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해석도 있는데 어느쪽이 맞는지 확실한 근거가 없어서 판단하기 어렵다. 국어학적 입장에서는 인천을 '바닷가(물가)에 있는 큰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인주는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미추홀이라고도 함)현으로 신라 경덕왕이 이름을 소성(邵城)이라 고쳐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현종 9년에 수주(樹州) 임내(任內)에 소속하였다가 숙종 때에 이르러 황비(皇妃) 인예태후 이씨의 내향(內鄕)이므로 올려 경원군으로 삼았다. 인종 때 황비 순덕왕후 이씨의 내향이므로 지금 이름으로 고쳐 지주사(知州事)로 삼았으며, 공양왕 2년에 올려 경원부(慶源府)로 삼았다"

이런 기록들을 살펴볼 때 인천은 미추홀(매소홀)→소성→경원군→인주→경원부→인주→인천의 단계를 거쳐 생긴 이름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