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소도시의 한 남자 중학교. 지난 4일 신학기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하루에도 2~3차례씩 학생끼리 싸우는 폭력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싸움은 대부분 1학년 교실에서 일어난다.

이 학교 교사 A(37)씨는 "1교시가 끝나면 1학년 1반 교실에서 '코피 터진 애가 있다'고 교무실에 신고하고, 1시간 후엔 1학년 3반 교실에서 '싸움 붙었다'고 아이들이 교무실로 달려올 정도로 정신없이 서로들 때린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싸우는 표면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저 XX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 "괜히 센 척하면서 나댄다" "날 무시한다"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중학교 신입생 3월 신학기에 학교 폭력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때가 학생들 간 '서열'을 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각기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만큼 폭력을 일삼는 학생들 사이에 아직 서열이 정해지지 않았고, 서열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사소한 일에도 욕을 하고 주먹을 날리며 싸우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한번 밀리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내내 무시당하고 심부름까지 해야 한다. 중2~3학년 때는 이미 서열이 정해졌고, 고등학교는 입시 공부를 시작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심각하지 않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학교폭력예방센터 김건찬 사무총장은 "'서열 정하기' '기싸움' 때문에 1년간 학교 폭력 상담 의뢰 건수의 40~50%가 3~5월에 들어올 정도로 학교 폭력은 신학기에 집중된다"면서 "올해도 예외가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교(全校) 단위의 서열은 '일진회(一陣會·학교 폭력 조직)' 멤버끼리 정한다. 보통 일진회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단위를 벗어나 활동하기 때문에 중학교에 올라와도 누가 일진인지, 누가 서열에서 위인지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진 간 서열이 애매한 경우 선배들이 "서열 정하라"고 싸움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선배 일진이 후배 일진을 길들이는 '물갈이' '신고식'도 신학기에 벌어진다.

일진 다음으로 싸움을 잘하는 학생들은 이진·삼진 그룹을 형성한다. 이진·삼진 그룹은 그룹끼리, 또는 그룹 내 학생끼리 신학기에 서열 싸움을 한다고 학교 관계자들은 말한다.

정세영 서울 상봉중 교사는 "3월 14일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이진·삼진 그룹 아이들이 아무 그룹에도 안 속한 약한 애들에게 돈을 걷어 일진 그룹에 갖다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고 말했다.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일반 학생들도 일종의 '기싸움'으로 사소한 일에도 욕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매년 반복되는 '중1 신학기 학교 폭력'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김건찬 사무총장은 "학교장부터 교사, 학부모 모두가 학교 폭력이 언제 발생하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잘 알고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진회(一陣會)

싸움을 잘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초·중·고 교내 폭력 집단. 1980년대까지는 학교 폭력 조직을 흔히 ‘서클’이라고 불렀지만 1990년대 들어 학생들 사이에서 ‘일진(一陣)’이란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본 고교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폭력 용어가 만화책 등을 통해 국내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