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결국 자습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아요. 재수하는 11개월간 하루 공부 시간을 13 내지 14시간으로 유지했거든요. 공부를 쉰 날은 제 생일과 9월 모의평가일 이튿날 이틀뿐이었습니다."
초·중·고교 12년간 학교와 학원에서 짜인 수업 시간표대로 공부했던 학생에게 '독학 재수'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중·하위권은 물론, 상위권 학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이유로 수험생 중 일부는 독학 재수 필패론(必敗論)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해 논술우수자 전형으로 중앙대 유럽문화학부에 합격한 고나윤(20)씨는 "독학으로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과 논술 성적을 충분히 올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재수 기간 내내 그는 집 근처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에 매달렸다. 고 3 때 치른 첫 수능에서 언어 2, 수리 3, 외국어 3, 사회탐구(2개 과목) 4·5등급을 받았던 그는 이듬해 수능에서 영역별 등급을 '언어 2, 수리 1, 외국어 1, 사회탐구 1·3'으로 끌어올렸다. 심지어 3등급이었던 외국어 영역은 만점을 받았다.
◇독학 재수 첫째 원칙은 '시간 관리'
고씨는 독학 재수 성공의 첫 번째 원칙으로 '시간 관리'를 꼽았다. 그는 재수 기간 내내 '오전 6시 30분 기상→ 20분간 산책→ 오전 8시 30분 독서실 도착→ 밤 12시 30분 귀가'의 일정을 지켰다. 점심·저녁 식사는 각각 1시간씩 꼭 집에서 했다. "본인 컨디션에 따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게 독학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학원에 다니면 시간표에 따라 수업이 진행되고 학습 시간도 관리해줘 크게 흔들릴 일이 없다는 게 가장 매력적이죠. 하지만 컨디션에 따라 시간대별로 공부가 잘되는 과목이 있고 아닌 과목이 있는데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맞추다 보니 제 경우 학습 효과는 오히려 떨어지더군요."
그는 "특정 과목에 치우치지 않으려면 과목별 학습 비율을 반드시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씨의 경우, 하루 학습 시간을 14시간으로 정하고 부족한 과목과 시간 투자가 좀 더 필요한 과목을 구분해 '언어:수리:외국어:탐구=3:4:4:3'처럼 공부 비율을 조정했다. 단 '50분 학습, 10분 휴식'처럼 공부 시간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학습 능률이 오를 땐 두세 시간 동안 한 과목을 공부하고 능률이 오르지 않을 땐 짧은 시간 공부한 후 다른 과목으로 넘어갔다. 대신 책상에 초시계를 놓고 학습 시간을 철저하게 기록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올 때도 예외는 없었다.
◇공부 조언 필요할 땐 인강·교사 찾아
독학 재수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부족하거나 모르는 게 있을 때 조언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고씨도 초기엔 이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그는 해결책으로 EBS 인터넷 강의를 택했다. "과목별로 게시판에 질문을 올리면 24시간 이내에 답변이 올라와요. 세세한 설명을 볼 수 있어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도움 받을 수 있습니다."
신문에 실린 대학입시 합격 경험담이나 수기집은 그가 심적으로 지칠 때 멘토 역할을 해줬다. "어머니가 맛있는공부 기사를 오려주시곤 했어요. 주요 사항은 기억하고 공부 관련 팁이나 노하우는 공부할 때 활용했죠." 그는 6·9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시행 모의평가는 개인적으로 입시학원에 신청해 치렀지만 3·4·7·10·11월에 실시하는 전국 시도교육청별 모의평가는 별도로 내려받아 시간을 지켜 풀었다. "상담이 필요할 땐 고 3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수시·정시모집에 지원할 때도 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고씨에 따르면 논술 공부도 충분히 독학이 가능하다. 지원 대학 기출 문제집을 바탕으로 처음 풀 땐 본인이 직접 쓰고 두 번째로 풀 땐 예시 답안의 틀에 맞춰 똑같이 쓸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예시 답안에 제시된 출제 의도에 맞게 썼는지, 키워드를 빼놓진 않았는지 꼼꼼히 살피는 게 중요해요. 예시 답안 외에도 제시문 간 관계 등에 대한 해설도 빼놓으면 안 됩니다."
◇독학, 의지 있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
수능 당일까지 학습 흐름을 유지하려면 공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능을 한 달여 앞두고 공부 시간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해 독서실에서 집으로 장소를 바꾼 고씨는 독서실 학습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독서실 책상을 구입, 집안에 들여놓기도 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재수하는 동안 가장 많이 되뇐 말이에요. 재수했던 고교 동창 모두 종합반 학원에 다니며 절 걱정했어요. 주변에 독학으로 공부한 선배가 없다 보니 '혹시 내가 불확실한 길을 걷는 건 아닐까?' 고민도 했죠. 실제로 같은 학부 동기 100명 중 독학으로 재수한 친구는 3명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독학은 주변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없이 효과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