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은 사냥꾼에 쫓기던 사슴을 구해준 착한 나무꾼 이야기만은 아니다. 여성을 강제로 유인해 살면서 아이까지 낳게 한 나무꾼의 행동은 지금 관점에서 범죄다. 나무꾼 덕에 목숨을 부지한 사슴은 선녀들의 목욕 터를 알려주며 "날개옷을 훔쳐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를 색시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나무꾼은 선녀를 납치하듯 데려왔다. 선녀를 임신시켜 주저앉혔다. 사슴은 "아이 넷을 낳기 전에는 날개옷을 보여주지 말라"고 했다. '양손에 한 명씩 안고 등에 업어도 한 명이 남으니 날개옷이 있어도 나무꾼 곁을 떠나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나무꾼과 사슴이 2013년에 이런 행위를 했다면 선녀의 고소로 '결혼을 위한 약취유인죄'로 구속됐을 것이다.

여성은 덮쳐서 주저앉히면 내 것이 된다는 한국 남성의 인식은 '보쌈' 설화에서도 엿보인다. 1800년대 후반 황해도 연안군에 딸 내외와 함께 사는 송씨 부인이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 송씨와 사위가 성관계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홀아비 김씨는 '사위와 간음할 정도면 성적(性的)으로 문란한 여자'라는 생각에 송씨를 납치했다. 보쌈을 당해 억울했던 송씨는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했고, 결국 목을 매 숨졌다. 조선시대 보쌈은 경제적 이유 등으로 재혼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문화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성을 납치해 함께 하는 납치혼이자 약탈혼이다.

은장도는 '강간을 당할 때 최대한 저항해야 한다'는 통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화다. 이런 통념이 저항하지 않으면 강간이 아니라는 그릇된 인식을 유도했다. 아랑설화에 나오는 밀양부사의 딸 아랑은 자신을 짝사랑하던 남성이 가슴을 만지자 은장도를 꺼내 가슴을 도려냈다. 이를 보고 놀란 남성은 아랑을 죽여버렸다. 현대에는 여성이 저항하지 않더라도 성관계를 거부했다면 성폭행으로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