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약자(弱者)’라고 보기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이 국제중과 자율형사립고 ‘사회적 배려 대상자’(이하 사배자) 전형으로 합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본지가 10일 한국교총에 의뢰해 전국 초·중·고교 교사 113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다(多)자녀와 한 부모 가정 자녀를 사배자 전형으로 뽑는 것에 대해 80% 안팎의 교사들이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사배자 전형, 취지 안 맞아"
이번 설문조사에서 전체 교사의 84.9%(96명)는 “다자녀 가정 자녀를 사배자 전형으로 뽑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대신 교사들은 “다자녀 가정 자녀도 일반 학생과 똑같이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52.7%)거나 “사배자가 아닌, 다자녀 가정을 위한 별도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34.0%)로 답했다.
한 부모 가정에 대해서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교사의 78.6%(88명)가 “한 부모 자녀를 사배자 전형으로 뽑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으며, 55.4%(62명)는 “한 부모 가정 자녀들도 일반 학생과 똑같이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25.9%(29명)는 “사배자가 아닌, 한 부모 가정을 위한 별도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고교 입시 전문가 A씨는 “그동안 수많은 학부모가 ‘사배자 전형으로 특목고에 지원하고 싶다’고 상담을 요청했는데, 그중에서 정말 어렵게 사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 될까 말까 했다”며 “사회 통념으로 납득이 안 가는 부유층이 사배자 전형으로 입학하는 경우는 없도록 사배자 전형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저소득층, 사배자 전형 꺼려”
2009년 시작된 사배자 전형은 원래 사회적 약자·소외계층에게 수월성(秀越性·엘리트)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자는 목적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교육 기회의 사다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층 자녀들이 이 제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교육과학기술부가 10일 공개한 '2013학년도 자사고·외고·과학고·국제중 신입생 사배자 현황'에 따르면 신입생 중 경제적 배려대상자는 전체 사배자 중 44%였다. 교육 당국은 사배자 정원의 절반 이상을 저소득층 자녀(경제적 배려 대상자)를 뽑도록 권장한다. 하지만 사배자 전형 합격자 가운데 경제적 배려 대상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과학고 32%, 외고·국제고 35%, 국제중 43%, 자사고 51%였다.
한국교총 김동석 정책본부장은 “경제적 배려 대상자들은 수학여행비 등에 부담이 커 (저소득층 자녀들이) 지원을 꺼린다”며 “사배자 전형이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책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
국제중·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 등에서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 등 사회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계층의 자녀를 별도로 선발하는 제도. 빈곤층 등 '경제적 배려 대상자'와 한부모 가정, 다자녀 가정, 다문화 가정, 군인·경찰관·소방공무원 가정 자녀 등 '비(非)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나뉜다. 통상 사배자 전형으로 전체 모집 정원의 20%를 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