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그저 작은 "배나무골 약국"이었다. 1851년 약사 존 키엘은 미국 뉴욕 이스트 빌리지 13번가 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배나무 옆에 자신의 이름을 딴 조그마한 약국을 열었다. 동네 사람들은 곧 이 키엘 약국의 독특함에 매료됐다. 이곳에서 만들어 파는 진통제와 수면제, 허브 로션과 크림은 그 효능 덕에 금세 입소문을 탔고, 키엘 약국은 점차 덩치를 불려나갔다. 그리고 162년이 흐른 지금, 이 약국은 전 세계 44개 나라에 1000여개 매장을 둔 글로벌 회사로 성장했다. 전 세계 화장품 회사들이 '가장 경쟁이 치열한 나라'로 꼽는 한국에서도 키엘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이 회사 전 세계 매출 톱10 매장 중 4개가 우리나라에서 나올 정도다.

작은 약국 하나가 글로벌 화장품 회사가 된 과정엔 어떤 비결이 있을까. 지난 2월 28일 한국을 찾아온 키엘의 CEO 셰릴 비탈리(Vitali·52)는 "듣고, 속삭이고, 웃음을 나누려고 한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무슨 얘기일까. 비탈리는 대뜸 "나무 심는 얘기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비탈리는 광고회사에서 출발해 화장품 업계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03년 로레알 그룹에서 메이블린 마케팅 부사장을, 2008년엔 랑콤 마케팅 부사장을 거쳐 2010년 키엘 글로벌 사장직에 올랐다.

화장품 회사 키엘의 비탈리 사장은 모델처럼 근사한 외모를 자랑했다. 지난 2월 2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매장에 들어선 그는 모터사이클 족이 즐겨 입는 새까만 바이커 재킷에 몸에 착 달라붙는 청바지 차림이었다. “보통 이렇게 입고 다녀요. 직원들하고 농담하는 걸 즐기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참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회사 경영에 도움되는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는 대개 그렇게 쉴 때 나오더라고요.”

―나무라니?

"키엘이 약국일 때부터 그 동네엔 배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1967년쯤 마차에 세게 부딪히고 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당시 동네 주민들이 그 나무가 죽은 걸 보면서 자기 일처럼 가슴 아파했다. 우리는 그 나무를 언젠간 꼭 다시 심고 싶었다. 그러던 2003년 네덜란드에서 같은 배나무 품종을 공수해 원래 나무가 있던 자리에 심었다. 지역 주민들이 정말 기뻐했다. 당시 뉴욕 시장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그 나무를 다시 심은 11월 12일을 아예 '키엘의 날'로 부르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우리에겐 참 중요한 사건이었다. 지역 사람들의 목소리를 열심히 듣는 게 알고 보면 회사에도 이익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익이 된다는 건가.

"당장 매출이 오르거나 하진 않겠지. 하지만 궁극적으로 회사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잠재적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그래서 그 이후로 더욱 다양하게 전 세계 소비자를 향한 캠페인을 벌여왔다. 가령 한국에선 최근 금강송(松)을 보존하고 키우는 사업을 후원한다. 한국의 고궁을 복원할 때 금강송이 많이 필요한데, 점점 그 수가 줄어들어 복원에도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인왕산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오래된 나무 살리기 캠페인'도 벌여왔다."

―TV 광고를 하거나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쓰는 게 더 빠르고 효과적인 홍보 아닌가?

"아니다. '속삭인다'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우린 거액을 쓴 광고보단 입소문의 힘을 믿는다. 162년 동안 키엘이 꾸준하게 지킨 원칙 중 하나가 바로 '유명 모델을 기용한 광고를 하지 않는다'이다. 4대 회사 대표인 제이미 모스가 2000년 1억달러를 받고 로레알에 매각했는데, 이때 모스가 내건 조건 중 하나가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광고 등을 지양한다'는 것이었다. 스타 마케팅으론 고객의 신뢰를 제대로 얻기 어렵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린 고객에게 무료 화장품 샘플을 꾸준히 나눠주는 방식을 택했다. 전 세계에 매년 1억개가 넘는 샘플을 나눠준다. 이게 입소문의 원동력이다. 써본 사람들은 주변에 '키엘을 쓰라'고 전파한다. 30~40년 넘게 사랑받는 장수 제품이 그렇게 나왔다."

―너무 착한 방식 같다.

"좀 느리긴 하다. 하지만 162년이나 된 회사에서 굳이 빠른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바르자마자 며칠 만에 바로 피부 결이 달라진다고 제품을 홍보하는 회사가 참 많다. 물론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효과가 빠르고 좋은 성분을 잔뜩 집어넣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제품은 대개 피부에 자극적이다. 비타민이나 에센셜 오일이 아무리 피부에 좋다지만, 적정량을 넘기면 피부 균형을 깰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린 항상 200명 이상 대상으로 제품 테스트를 하고, 단 한 명이라도 '피부에 안 맞는다'고 하면 제품 개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걸 우리는 '키엘의 독창적인 제조법(Unique recipe)'이라고 부른다."

―회사 직원들이 모두 그런 방식에 동의할까. '답답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하. 거의 없다. 다들 오히려 이 과정을 즐긴다. 이렇게 출시된 제품이 잘됐을 땐 직원들끼리 소박한 축제를 연다. 최근엔 얼굴 잡티를 없애는 미백 제품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신입 사원 중 한 명이 이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까만 초콜릿을 넣어 구운 쿠키와 하얀 초콜릿을 넣어 구운 쿠키를 차례로 만들어 돌렸다. 잡티가 사라져서 얼굴이 하얘지는 과정을 과자로 표현한 거다. 다들 쿠키를 나눠 먹으면서 즐거워했다."

―CEO와 늘 함께 일하는 '크리에이티브 팀'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 회사만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만드는 팀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 그래픽디자이너도 있다. 이들이 다 같이 모여 앉으면, 제품 포장부터 지면 광고 글씨체까지 온갖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이렇게 나온 아이디어는 어떻게 활용하나.

"매장 인테리어에도 적용하고, 새로운 이벤트에도 활용한다. 우리 매장엔 곳곳에 웃음을 터지게 하는 재미 요소가 숨어 있는데, 이 회사가 약국에서 출발했음을 알리기 위해서 전신 해골 모형(Mr.Bones·작은 사진)을 세워 놓는다든지, 예전 회사 대표들이 수집했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나 경비행기를 매장 구석에 전시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남자 고객들이 이런 걸 특히 좋아한다고 들었다. 최근 남성 소비자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에, 이들을 계속 매장으로 유인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세계적인 불황이다. 한국에서 잘나가던 수입 화장품 브랜드 대부분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휘청휘청한다. 업계에선 '그래도 키엘은 괜찮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본에 집중했다. 2000년 한국에 진출할 때 우리는 딱 두 가지 대표 상품 홍보에 치중했다. 울트라 페이셜 크림이라는 수분 크림과 파워풀 스트렝스 라인 리두싱 컨센트레이트라는 기능성 제품이었다. 가격 대비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했다. 매장 직원을 뽑을 때도 신경을 특히 많이 썼다. 좋은 학교를 나오거나 다른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을 뽑기보단 잘 웃고 인상이 따뜻한 사람, 남의 말을 차분하게 들어주는 사람을 골라 채용하려고 애썼다. 매장에 들어오는 순간 반갑게 맞아주고, 고객의 기분을 살필 수 있는 그런 성격의 사람 말이다."

―한국 매장 직원들이 다른 나라보다 더 철저하게 교육을 받는다는 말도 있다.

"한국 고객들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대단히 예민하고 섬세하다. 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매출도 상승한다. 키엘 직원들은 어떤 제품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면 하얀 가운 위에 '엔젤 핀(Angel pin·천사 핀)을 하나 꽂는다. 모든 엔젤 핀엔 별도의 이름이 붙어 있다. 가령 지성 피부를 열심히 공부해서 일정 시험을 통과하면 '오일리 엔젤 핀(Oily angel pin·지성 피부 천사 핀)'을 꽂는 식이다. 그럼 고객이 그 핀을 보고 '아, 이 직원은 지성 피부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구나' 하고 안심하고 말을 걸게 된다. 이 엔젤 핀 제도를 처음 만든 게 바로 한국 직원들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 핀을 가슴에 꽂기 위해 다들 열심히 공부한다고 들었다. 대단하지 않은가?"

―한국에 온 게 다섯 번째라고 들었다.

"서울과 부산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는 걸 참 좋아한다. 내 사무실엔 한국 키엘 직원들이 선물로 준 작은 액자도 있다. 한글로 '쉐릴'이라고 새긴 것이다. 최근엔 한국의 금강송을 찍은 사진도 벽에 걸어 놓았다.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고 상쾌해지는 걸 느낀다."

―직원들을 대할 때 나만의 원칙이 있다면.

"직급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똑같은 마음으로 대한다. 직원들 앞에서 연설할 때도 기왕이면 편한 친구에게 말하듯 하려고 한다. 매년 회사 창립 기념일 때는 전 직원에게 손으로 쓴 카드와 티셔츠를 선물하기도 한다. 출근 복장도 우리 회사는 자유로운 편이다. 다른 회사에선 직급이 높을수록 딱딱한 옷차림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그런 구분이 거의 없다. 나부터도 보통 가죽 재킷과 청바지 차림으로 다닌다. 편하고 젊어 보여서 좋아한다."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첫째가 스무 살이고 둘째가 열여덟 살이다. 워킹맘으로 사는 건 여러모로 힘든 일이지만, 이럴수록 나만의 원칙을 정하려고 했다. 가령 난 아무리 바쁜 순간에도 아이들 전화는 꼭 받으려고 한다. 또 이럴수록 남편을 활용하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나 역시 남편이 없었다면 아이를 이렇게 키워내지 못했을 것 같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