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본 기사는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KBS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를 보면 ‘미필적고의’라는 코너가 있다. 개그맨 박성광은 피자배달원, 세탁소 직원, 대리운전수 등 주마다 직업을 바꿔 재벌집을 방문하는데, 그 집안에는 무슨 우환이 그리 많은지 피치 못할(?) 이런저런 상황에 밀려 만원에서 3만원쯤 하는 요금을 매번 받을 듯 말 듯하다가 결국 받지 못하고 돌아선다.
영화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서도 장고(제이미 폭스)는 조력자 닥터 킹(크리스토프 왈츠)과 함께 노예로 팔려간 아내 ‘힐디(케리 워싱턴)’를 구하려고 미시시피에서 4번째로 큰 농장, 캔디랜드를 찾아간다.
힐디를 12,000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에 사서 소유권을 가져오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거래를 확정하는 의미로 ‘악수(!)’를 하기까지 영화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피소드와 대사를 ‘콸콸’ 쏟아낸다.
영화를 보며 장고가 아내 힐디를 구할 듯 말 듯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 순간에 떠오른 건 엉뚱하게도 ‘개그콘서트’의 ‘미필적고의’에서 3만원도 안 되는 요금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땀 범벅의 박성광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신작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1966년 이탈리아 영화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두 영화 사이에 연관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제목만 비슷할 뿐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그냥 쿠엔틴 타란티노 식의 서부극이라고 보는 편이 적당할 듯하다.
예의 서부극처럼 이 영화도 미국의 흑인 노예시대를 배경으로 했으며 복수의 테마를 갖고 있다.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출을 맡은 만큼 역시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스타일(장르를 안 가리는 음악 선곡, 스크린을 꽉 채우는 자막, 등장인물들의 긴 대화 시퀀스, 피 칠갑 등)로 범벅이 돼 있다. 따라서 평범한 서부극은 아닐 터.
하지만 스토리 자체는 그다지 뜻밖이 아니다. 서부극에서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흑인 노예 시대라는 미국의 ‘흑역사’를 조롱하였고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아내를 구하고 통쾌하게 악인을 싹쓸이한 후 유유히 사라진다.
이 영화의 백미는 남부 최고의 총잡이 흑인 장고가 빼어난 솜씨로 백인 악당(흑인 악당 한명도 포함해서)들을 총알로 난도질하는 ‘피칠갑’ 액션신이 아니다. 그건 영화의 흐름상 당연히 들어가야 했고.
가장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아내 ‘힐디’를 갖고 12,000달러짜리 거래를 하는 장면. ‘무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흑인 시종 스티븐(사무엘 L. 잭슨)이 한 편, 장고와 닥터 킹이 다른 한 편. 이렇게 양 편은 힐디를 사이에 두고 온갖 거짓말과 허세, 가식과 폼을 동원해서 무척 기나 긴 흥정을 한다.
늙은 여우 스티븐은 장고 일당의 실체를 대번에 꿰뚫고 이를 캔디에게 고해바치고, 낯선 손님들에게 허세부리는 맛에 희희낙낙하던 캔디는 어마어마하게 분노, 닥터킹과 장고에게 굴욕을 선사하며 300달러에 구매한 힐디를 만2천달러에 판다(아, 이 철없는 악인이여). 영화 내내 그렇게 침착하던 닥터킹은 새파랗게 어린 놈에게 굴욕을 당한 뒤 그 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냥 캔디와 함께 허무하게 저 세상으로 굿바이.
캔디의 대저택 응접실에서 펼쳐지는 이 ‘매매’ 시퀀스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전작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평화롭고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을 뜬금없이 방문, 유태인 도망자를 색출하는 독일 장교와 집주인의 대화 장면만큼이나 진땀 나는 순간이었다.
지루하리만치 이어지는 무수한 영화 속 대화 장면들은 배우들의 뜨거운 연기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대사빨’ 덕분에 지겨워도 긴장감은 최고조. 이 영화의 가장 볼 만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좀 붙여,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캔디와 닥터킹이 노예 매매 서류에 사인을 하고 그대로 힐디를 데리고 저택을 떠난 후 영화가 끝났더라면 어떠했을까.
러닝타임도 2시간에 얼추 맞출 수 있었겠고, 매번 돈 못 받는 개그맨 박성광의 한도 좀 풀렸을까? 무엇보다 희대의, 서부극 변종이 탄생하는 순간이 되지 않았을지.